[편집자 주] 16일 오전 8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4호선 삼각지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무정차 통과’ 조치를 규탄했습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정차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발언문을 낭독했습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발언문 전문을 게재합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는 16일 기자회견에서 무정차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발언문을 낭독했다. 사진 복건우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는 16일 기자회견에서 무정차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발언문을 낭독했다. 사진 복건우

‘노들장애학궁리소’와 ‘읽기의 집’에서 활동하는 고병권입니다. 오늘 저는 ‘지하철의 무정차’라고 하는 끔찍한 폭력을 규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한 달에 한 번, 신문에 칼럼을 씁니다. 지난주 출근길 지하철 탑승 투쟁 중에 있었던 삭발 결의식에 대해 썼습니다. 우리 모두 잘 알듯이 출근길 지하철 투쟁은 두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삭발식이 열리고 그다음에 단체 탑승 행동을 합니다.

언론은 두 번째 장면만을 주목합니다. 출근길 대란, 열차 연착, 열차 안에서의 다툼 같은 게 사람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라고 보는 거지요. 그런데 이번 시위가 왜 일어났는지, 이번 시위의 이유를 말해주는 것은 첫 번째 장면입니다. 매일 아침 한두 분이 나와서 삭발하기 전 발언을 했습니다. 왜 자신이 이번 시위에 나섰는지. 5분, 10분, 정말 짧은 시간인데 거기에 자신의 수십 년 생애를 담아냈습니다. 삭발자가 웃으며 말하는 날에도 듣는 사람들은 눈물을 훔쳐야 했습니다. 삭발식이 끝나면 삭발자를 따라 줄지어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이것이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였고, 무려 141차례나 이것을 반복했습니다. 이 소중한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 칼럼을 썼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서울시는 무정차보다 장애인 권리 보장하라’고 적힌 스티커를 서울시청 외벽에 붙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서울시는 무정차보다 장애인 권리 보장하라’고 적힌 스티커를 서울시청 외벽에 붙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그런데 신문사에 원고를 보낸 날, 서울시가 장애인이 시위를 벌이는 역에서는 지하철 무정차를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순간,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칼럼 주제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니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손을 들어도 버스도, 택시도 서지 않았던 세월, 탈 수 있는 대중교통을 가져보지 못한 세월을 숱하게 보냈고, 아직도 곳곳이 그런 상황인 나라에서, 장애인들 앞에서 대중교통을 세우지 않겠다는 말을, 그것도 공공기관이 서슴지 않고 내뱉다니요. ‘무정차’라고 하는 세 글자는 그동안 이 나라에서 장애인이 평생 당해온 차별과 폭력을 압축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당국에서 장애인을 협박하며 쓰고 있습니다.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조선일보 기사에 “서울시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한 공무원의 아이디어를 접수한 국회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더군요. 전언에 따르면 대통령실 공무원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저를 정말로 부들부들하게 만든 것은 ‘아이디어’라는 말이었습니다. 무정차가 아이디어랍니다.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는 거죠. 도대체 뭐가 기발하다는 거죠? 장애인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기막힌 방법을 찾았다는 건가요? 지난 1년간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싸워온 장애인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골탕 먹일 방법을 찾았다는 건가요? 아니면 정부가 손쓰지 않고 시민을 갈라쳐서 싸움 붙이는 방법을 찾았다는 건가요? 뭐가 아이디어입니까, 뭐가 기발합니까. 이게 공무원 머릿속에서 나왔다고요?

저는 공무원의 머릿속에서 ‘무정차’를 떠올린 것의 정체, 그 생각을 듣고 ‘아이디어’라고 환호한 사람들, 정말로 ‘묘수’라고 손뼉 쳤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의 정체, 또 그것을 듣고 그렇게 하라고 했던 서울시장의 머릿속에 있는 것의 정체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무정차라는 말속에서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을 머릿속 그 괴물 말입니다. 그 괴물이 바로 우리를, 우리 장애인을 바깥에 못 나가게 집에 가두거나, 시설에 내던진 그 괴물 아닙니까. 그 괴물 이 바로 우리를, 우리 장애인을 학교나 일터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만든 그 괴물 아닙니까. 그 괴물이 바로 우리를, 우리 장애인을 짐짝이라고 부르고, 출근길 방해하지 말라고 욕설을 퍼붓는 그 괴물 아닙니까.

B1버스가 장애인을 버려둔 채 비장애인 승객만 싣고 떠나려고 하자, 이형숙 대표가 버스 차체 밑으로 기어들어가 출발을 저지시켰다. 사진 강혜민
지난해 3월, 계단버스인 B1버스가 장애인을 버려둔 채 비장애인 승객만 싣고 떠나려고 하자, 이형숙 회장이 버스 차체 밑으로 기어들어가 출발을 저지시켰다. 사진 강혜민

수십 년이 지나도 우리 장애인이 기다리는 차들은 좀처럼 오지 않고 우리가 타야만 하는 차들은 좀처럼 우리 앞에 서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지 않는 버스, 서지 않는 택시, 서지 않는 열차 앞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입니다. 다시 생각해보건대, 지난 141차례 매일 아침 삭발자의 이야기는 모두 서지 않은 열차, 장애인 앞에서 무정차 했던 열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첫번째 삭발자였던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님. 삭발하시며 말했죠. 지하철 타며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시민 여러분, 불편을 끼쳐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마치 타지 말아야 할 사람이 탄 것처럼 말이죠. “장애인으로 살면서 항상 무엇이 미안한지, 무엇이 죄송한지, 입에 껌딱지처럼 달고” 사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열차를 타는 일, 장애인도 열차를 타야 한다고 말하는 일이 ‘죄송하다’고 말하는 일이어야 하는 사회인 겁니다.

작년에 신문에서 읽은 이형숙 회장님과 따님인 은별 씨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김포로 이사한 후 귀가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추운 겨울날, 장애인이 탈 수 없는 ‘계단버스’가 계속 지나갔습니다. 은별 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수다를 떨었다고. 장애인이 감수해야 할 당연한 불편함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엄마가 조용히 말했답니다. “한 시간째다. 계단 있는 버스여서 타지 못하고 그냥 보낸 게.” 평생을 그렇게 보낸 버스가 그날도 그렇게 지나간 겁니다.

지난달 25일, 송현우 활동가가 삭발 후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건너편에 비장애인 승객들이 좌석에 앉아 있다. 사진 하민지
지난달 25일, 송현우 활동가가 삭발 후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건너편에 비장애인 승객들이 좌석에 앉아 있다. 사진 하민지

장애인이 탈 수 없는 버스, 장애인 앞을 지나쳐가는 버스는 버스모양만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이 사회 전체가 이런 버스입니다. 얼마 전 삭발을 했던 이천이삭장애인자립생활 센터의 송현우 활동가님의 말에서도 그 계단버스를 보았습니다. 학창 시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체육 시간에도, 체험학습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장애인이니까, 걷지 못하니까, 뛰지 못하니까, 너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너는 교실에 남아 교실을 지켜.” 그렇게 그를 교실에 혼자 남겨둔 채로 체험학습도, 체육 시간도 계속 무정차 통과해 버렸습니다.

너는 장애인이니까 집에 남아 있어. 너는 장애인이니까 시설에 남아 있어. 너는 장애인이니까, 너는 걷지 못하니까, 너는 듣지 못하니까, 너는 말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이제는 훈계하듯이 말합니다. 너는 장애인인 주제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니까, 너는 장애인인 주제에 출근하려고 드니까, 이제부터는 너를 태우지 않을 거야, 너는 승강장에 그대로 있어.

우리는 이형숙 회장님이 기다린 버스 승강장에서, 송현우 활동가님이 남아 있던 교실에서, 그리고 엊그제 무정차한 이 승강장에서 너무 오래 기다려온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노력한다’는 말뿐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장애인이 탈 버스는, 열차는 오지 않는데, 기다리면 그 버스, 그 열차가 올 거라는 말을 수십 년을 들었습니다. 지하철 이동권 시위가 본격화된 2002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와 리프트가 장착된 특별교통수단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22년인 지금도 우리는 2004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5년 박원순 시장은 “2022년까지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2022년이 지금 끝나가고 있습니다.

더 거슬러 가 볼까요. 40년 전 김순석 열사가 ‘서울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쓰고 음독 자결하던 날. 그 유서의 공식 수신인이었던 염보현 당시 서울시장은 “조간신문에 눈물겹도록 기막힌 이야기가 씌어있었다”며 “교통 건설 보사국 등 관련 부서 간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 횡단보도나 건축물에 장애자의 편의를 도울 수 있는 시설을 단계적으로 갖추도록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합니다. 40년 전의 충분한 대책이 시행되기를 우리는 40년이 지나도록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시간이 가고 하루가 가고 1년이 가서, 4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기다리다가 인생이 다 끝날 지경입니다.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다고 하니, 더 기다리지 않으면 아예 무정차 하겠다고 협박합니다.

지난 4월, 3호선 경복궁역 지하철 안. 비장애인 활동가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고 적힌 대형 피켓을 들고 있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 활동가들이 일렬로 들어오고 있다. 그의 옆으로 승객들이 앉아 있다. 사진 강혜민
지난 4월, 3호선 경복궁역 지하철 안. 비장애인 활동가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고 적힌 대형 피켓을 들고 있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 활동가들이 일렬로 들어오고 있다. 그의 옆으로 승객들이 앉아 있다. 사진 강혜민

열차가 인류사에 처음 출현한 이래로 세상의 진보를 믿었던 사람들은 곧잘 역사를 열차에 비유해왔습니다. 우리는 삼각지역을 거쳐 숙대입구역으로, 그리고 서울역으로 열차가 나아가듯 인류는 진보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의 이전 역에서는 남성의 권리만 보장받았지만 다음 역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고, 이전 역에서는 인권이 사실상 백인만의 권리였지만 다음 역에서는 유색인의 권리이기도 할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역사가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역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차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더 보편적인 권리로 사회 진보의 열차가 나아가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일을 보니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혐오는 더욱 악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 기차의 통제실에서는 수십 년째 장애인이 열차를 타지 못하고 있음을 알리는 대신, 장애인 탓에 열차가 운행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 열차의 기관실, 이 열차의 머릿속에는 ‘무정차’라는 말이 기막힌 아이디어라며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21년의 투쟁으로 우리의 열차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 그것은 이 열차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장애인 중심주의의 레일 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를 태우지 않는 기차, 우리 앞에서 정차하지 않은 기차가 우리를 우리가 원하는 역까지 데려다 줄 리 없습니다. 이 열차가 달리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한 세기 전, 발터 벤야민이라는 비평가가 말했습니다. 혁명은 기관차가 아니라고. 혁명은 이 열차를 타고 있는 인류를 위한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라고. 이 열차를 세워야 합니다. 비상 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계단버스를 막아야 저상버스가 들어오고, 무정차 열차를 막아야 정차하는 열차가 들어옵니다. 그제야 우리의 기다림이 끝날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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