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열린 장애인 국선변호 제도개선 토론회
장추련 “법률지원 현장의 적극적인 대응 필요해”
법조계 “장애 당사자 소통, 필요시 변론 반영해야”

#1 20대 발달장애인 ㄱ(지적장애‧남)씨가 보이스피싱 범행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자신이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인지 모르고 범죄에 가담한 그는 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던 중 국선변호인 선임을 요청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피고인 ㄱ씨의 어머니와 형제에게 사건 진행 상황을 잘 공유해주지 않았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부설 장애인차별상담전화네트워크는 변호인에게 장애와 관련된 추가 지원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변호인은 “무슨 권한으로 물어보느냐, 연락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2 최근 경찰에 성폭행 피해를 진술한 발달장애 학생 ㄴ(지적장애‧여)씨는 해바라기센터(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와 함께 사건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피해자 ㄴ씨의 어머니는 변호인에게 사건 진행 상황과 향후 절차를 물었지만, 변호인은 “조사 잘 받았다”고만 답할 뿐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진술서 열람 요청마저 지연되자 피해자 측은 결국 국선 대신 사선변호인을 선임했다.

장추련에 따르면 이렇게 피의자나 피고인, 피해자로 형사절차를 밟는 정신적 장애인이 연간 1만 명에 이른다. 일례로 2021년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정신적 장애로 분류되는 범죄 사건 피의자 수는 8,850명에 달한다. 그러나 법원통계월보를 보면 같은 해 지적장애인 형사 사건 중 국선변호인 선정 사건 수는 1심 110건, 항소심 14건, 상고심 7건에 그친다. 법률 지식이 부족한 장애인이 재판 과정에서 국선변호인의 법률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 헌법(제12조)과 장애인차별금지법(제26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제12·13조) 등에서 보장하는 장애인의 사법 접근권을 실현하려면 현행 국선변호인 제도를 어떻게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까. 이러한 내용을 담은 ‘실효성 있는 장애인 국선변호 법률지원 제도개선 토론회’가 27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장애인 국선변호를 주제로 처음 열리는 토론회인 만큼 정부와 법조계, 장애계가 두루 참여해 관련 법제부터 현장 실무까지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27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실효성 있는 장애인 국선변호 법률지원 제도개선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선 서혜선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 검사(왼쪽 첫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27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실효성 있는 장애인 국선변호 법률지원 제도개선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선 서혜선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 검사(왼쪽 첫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현행 국선변호인 제도, 장애 특성 얼마나 고려하나

국선변호인 제도는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과 함께 시행되다가, 2006년 3월 형사재판 피고인을 대상으로 한 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도입되며 질적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형사 사건에 마주한 장애인의 헌법상 평등권을 보장하기에는 제도 운영이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장애계로부터 나온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33조를 보면 피고인이 청각·언어장애가 있거나 심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의심될 때 소속 법원이 국선변호인을 직권으로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정신적 장애인이 폭행, 강제추행 등 형사 사건의 피고인으로 출석할 경우 직접 정황을 진술하기 어려운 만큼, 피고인의 장애 정도와 유형을 변호인이 사전에 빠르게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법률지원 현장에서는 발 빠른 대응이 이뤄지지 않아 적극적인 변론 대신 심신미약을 주장하거나 선처를 구하는 식으로 사건을 종결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게 장애계의 주장이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발달장애 특성상 어떤 자극이 발생하면 단편적이고 즉각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 비해 적절한 사과나 대응이 없어 폭행이나 재물손괴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며 “변호인은 장애 당사자의 인지 정도와 행동양식을 빠르게 확인해 장애와 사건의 인과관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애인이 피해자로 국선변호인을 만나는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재 장애인에게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조사 단계부터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국선변호인이 즉각 선임된다. 그러나 피해자는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변호인에게 상세히 안내받지 못하거나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워 상담소를 찾는 경우가 많다. 토론자로 나선 변은희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좋은 변호사를 만나야 한다’는 행운에 기대지 않도록 피해자, 상담소, 변호사 간 파트너십을 구축해 수사 진행 과정에서 긴밀하게 소통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 자료집 중 2021년 6월 이후 성폭력 범죄, 아동학대 범죄, 장애인학대 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 비율을 정리한 표. 2021년과 2022년 장애인학대 범죄 사건 중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 비율은 각각 전체 선정 사건의 0.3%, 0.5%에 그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제공
토론회 자료집 중 2021년 6월 이후 성폭력 범죄, 아동학대 범죄, 장애인학대 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 비율을 정리한 표. 2021년과 2022년 장애인학대 범죄 사건 중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 비율은 각각 전체 선정 사건의 0.3%, 0.5%에 그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제공

장애인학대 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임 비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아래 변협)가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해 장애인학대 범죄 사건 중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 비율은 전체 선정 사건의 0.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나동환 변협 장애인인권소위원회 변호사는 “장애인학대 범죄를 보면 인지에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은데도 국선변호사 선정은 의무가 아닌 임의 조항으로 정해져 있다”며 “형사소송법 제33조에 준해 장애인학대 범죄에도 피해자 국선변호사 선정을 의무화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을 때는 현행법상 국선변호인을 대동할 수 없다. 현재로선 피의자가 구속되거나 재판에 넘겨져야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보니 경찰과 검찰의 수사 단계에서 직접적인 범죄사실에 대한 방어가 어렵다. 그 외 장애인 피의자를 조력하는 법률지원으로는 진술조력인제도(장애인차별금지법), 신뢰관계인동석제도(형사소송법) 등이 있다. 이 중 진술조력인의 경우 발달장애인 의사소통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고, 신뢰관계인은 심리적 안정을 위한 동석자일 뿐 법적 진술을 전문적으로 조력하지는 못한다.

이에 따라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수사 단계에서도 국선변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형사공공변호인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범죄자의 인권을 옹호한다는 비판과 더불어 제도 운영 주체와 감독 권한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 만큼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은 “형사공공변호인제도는 장애인 법률지원을 실질화하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도 “단순히 제도 도입에 그치지 않고 장애인·난민 지원 등 공익 차원의 논의가 충분히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실효성 있는 장애인 국선변호 법률지원 제도개선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선 권형관 인천지방법원 판사(오른쪽 두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27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실효성 있는 장애인 국선변호 법률지원 제도개선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선 권형관 인천지방법원 판사(오른쪽 두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장애인권교육 등 다섯 가지 요구안, 법조계 ‘공감’

국선변호인 제도 운영을 둘러싼 문제 제기와 함께 장애계는 이날 다섯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국선변호인 장애인권교육 실시, 장애 전문 변호사 지정, 장애인 국선변호 가이드라인 제작 및 배포, 국선변호-장애인지원기관 네트워크 구성, 그리고 국선전담변호사 증원 및 보수 현실화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법조계 전문가들도 장애인 법률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방향에 동의했다. 서혜선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 검사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증원과 더불어 장애인권교육 프로그램을 내부적으로 마련하겠다”며 “앞서 지적해 주신 장애인학대 범죄 사건의 경우 신청 자체를 하지 못하는 분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앞으로 제도 개선에 더욱 신경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권형관 인천지방법원 판사는 “앞서 장추련이 제시한 법원 통계만으로 장애인 국선변호인 선정 사건이 적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장애인 법률지원을 강화하려면 국선변호인이 장애 정도와 유형에 적합한 의사소통 방법 및 조력자를 찾아 장애 당사자와 원활히 소통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장애 특성을 변론 내용에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