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주체에 ‘거주시설 운영법인’ 참여 가능해
시설 공간 활용하고 운영지침은 공동생활가정 따라야
사회복지사 1명이 중증발달장애인 4명 돌봐… ‘소규모 시설’ 우려

“처음엔 급한 일로 하루 이틀 긴급돌봄 이용하겠죠. 그러다 일주일 이용하고, 나이 들어 더는 부모에게 여력이 없으면 성인발달장애인 자녀 한 달 맡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시설에서 ‘어머니, 사용할 수 있는 기간(1년 최대 30일)을 다 써서 더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시설 입소를 추천드립니다’ 그러면 부모님들 갈등 되지 않겠습니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경로를 짜는 것이 지금 대구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공공운영을 위해 지역사회 기관들 모아서 설득하고 지원체계 만들 수 있도록 대구시가 적극적으로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조민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장)

올해 4월,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이 시행된다. 그런데 최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안에 따르면, 긴급돌봄센터 운영주체에는 장애인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이 참여할 수 있다. 시설 운영법인은 시설 공간을 활용하거나 시설 기능을 전환해서 긴급돌봄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구장차연)는 2일 오전 11시 30분,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에 긴급돌봄센터 운영에서 거주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외하고, 대구시 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이 공공운영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현재 안대로 갈 경우,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은 장애인거주시설로 입소하는 경로가 될 것이라고 크게 우려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일 오전 11시 30분,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에 대한 공공운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대구장차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일 오전 11시 30분,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에 대한 공공운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대구장차연

- 시설 법인 운영에 시설 공간 사용, 운영지침까지 그룹홈 내용 따른다면?

지난해 11월, 윤석열 정부는 발달장애인 평생돌봄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올해 4월부터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긴급돌봄은 만 6세 이상 만 65세 미만 등록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며, 보호자의 입원, 경조사, 심리적 소진 등 긴급상황이 발생해서 발달장애인 돌봄이 어려운 보호자가 이용할 수 있다.

긴급돌봄센터는 전국에 20개소가 설치된다. 1개소는 2개의 유닛(UNIT)으로 구성된다(남‧여 1유닛씩). 유닛 1개당 이용정원은 4명이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간 운영할 시범사업에 55억 원을 편성했다. 1회 입소 시 1~7일까지 머물 수 있으며, 횟수 제한 없이 1년에 최대 30일까지 이용가능하다.

그런데 문제적인 대목이 있다.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센터를 운영하는 기관에 장애인거주시설 운영법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가 지난 2월 내놓은 ‘2023년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 안내안’에 따르면 이 사업은 ①거주시설 활용형 ②단기거주시설 활용형 ③신규설치형 총 세 가지 안으로 구성된다. 사업 수행기관을 지원하려는 기관은 세 요건 중 하나를 택해서 신청하면 된다.

‘거주시설 활용형’은 기존 시설의 공간을 활용해서 긴급돌봄센터를 설치하거나, 시설 기능을 전환해 운영하는 것이다. ‘단기거주시설 활용형’도 시설 기능을 보강하고,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센터로 특화하거나 시설 기능을 전환해 운영한다. ‘신규설치형’은 사회복지법인과 공공·비영리·민간기관의 전달체계를 활용하고, 전세임대주택 등을 활용하여 긴급돌봄센터를 신규로 설치하는 것이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가 내놓은 ‘2023년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 안내안’.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수행기관에 대한 세 가지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가 내놓은 ‘2023년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 안내안’.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수행기관에 대한 세 가지 모습이 담겨 있다.  

복지부는 긴급돌봄센터 운영 매뉴얼에 없는 내용은 ‘공동생활가정(그룹홈) 운영지침’을 따르도록 했다. 따라서 대구장차연은 지역사회 전세임대주택을 활용하는 신규설치형 또한 운영기준은 공동생활가정을 따르게 되어 “또 다른 시설문화가 생겨날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대구장차연은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은 지역사회 기반의 서비스와 인프라를 새로이 개발하고 확충하는 방향이 아니라, 기존 시설에 대한 재투자와 또 다른 위성시설의 설치·운영을 조장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2008년 한국 정부가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장애인 권리보장 방향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대구장차연은 대구시에 거주시설 활용 형태를 제외하고, 사회서비스원이 공공운영하라고 촉구했다. 코로나19 당시 사회서비스원 중심으로 이뤄진 긴급돌봄 지원사업에 대한 경험을 발전시켜 이를 정식화하고 강화하라는 요구다.

나아가 발달장애인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여 발달장애인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직접 인력을 파견하는 형태의 긴급돌봄서비스를 확충하고, 근본적으로는 주거지원과 활동지원서비스를 포함한 24시간 지원체계를 요구했다. 대구장차연에 따르면 대구시는 다음 주 중으로 시범사업 공모를 낼 예정이다.

- 사회복지사 1명이 중증발달장애인 4명 돌봐야… ‘시설 문제’ 또 반복될 것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은애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회장은 “이 사업은 시설을 체험하는 사업이 될 것”이라면서 “수행기관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은 배제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전 회장은 “이유도 모른 채 낯선 공간에 갑자기 놓였을 때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불안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봤나. 이런 부분을 고려한다면 당사자가 생활하는 집에 인력을 파견하는 모습으로 사업이 나와야 한다”면서 “절대 거주시설 몸집을 키워주는 형태로 가면 안 된다”고 밝혔다.

노금호 사단법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구장차연
노금호 사단법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구장차연

노금호 사단법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사장은 “가족 돌봄에 의지하지 않고 개인별 24시간 지원체계가 촘촘히 지원되고 있다면 긴급돌봄이 필요한 상황은 애초에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24시간 지원체계를 계속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들은 체하지 않고 계속 장애인을 격리하는 정책만 양산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노 이사장은 긴급돌봄센터 인력 배치 구조상 개인별 욕구를 반영한 지원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긴급돌봄센터는 센터장 1인에 상근돌봄인력 10인이 있어야 한다. 센터 1개소는 2개의 유닛(1유닛당 4명)으로 구성된다. 즉, 사회복지사 5명이 1유닛(4명)씩 돌봐야 한다. 그런데 1주일에 24시간 4교대로 근무해야 하니, 결국 사회복지사 1명이 중증발달장애인 4명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 이사장은 “어떤 기관이 일주일간 잠시 긴급지원하는 중증발달장애인의 개인별 욕구에 맞춰 지원할 수 있겠나”면서 “그런 지원이 불가능하니 시설 종사자는 돌봄 효율을 이야기하며 당사자를 때리고 구속하고 강박하며 제대로 된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이게 지금 시설이 가진 근본적 문제다. 이러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 이사장은 “결국 돈 문제”라면서 “중증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지원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그 돈이 아깝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 상황은 중증장애인 삶의 마지막 대안은 시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개탄했다.

박명애 사단법인 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가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을 공공운영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대구장차연
박명애 사단법인 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가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을 공공운영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대구장차연

박명애 사단법인 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는 “정부가 잔머리 쓰며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려고 부모들이 삭발하고 자기 자녀를 죽이면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라며 크게 분노했다.

박 대표는 “한 일주일쯤은 시설에 맡겨도 티가 안 나니 부모는 ‘괜찮은갑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다가 나이 들고 힘이 빠질수록 점점 이렇게 시설에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 것이다. 자식을 시설 안 보내려고 노력한 부모들에게 ‘괜찮으니 한번 맡겨 봐라’ 하는 건가. 우리가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줄 아나”라고 소리쳤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대구장차연은 대구시 장애인복지과와 면담을 했다. 면담에 참여한 전근배 대구장차연 정책국장은 “대구시 또한 장애계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이해하며 공공운영이 가장 좋은 안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좀 더 검토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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