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아직도 최저임금 못 받아
평균 월급 37만 원… 직업재활시설에 갇힌 장애인 노동
‘고용하느니 벌금 낸다’ 고용부담금 날로 증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제도화 절실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지원특별법 제정하라”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준비위원장이 “발달장애인도 안정적인 일자리와 월급을 받아야 한다”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준비위원장이 “발달장애인도 안정적인 일자리와 월급을 받아야 한다”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사지마비 최중증장애인이 노동을 한다.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이 노동을 한다. 발달장애인이 노동을 한다. 노동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겨진 사람들이 노동을 한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며, 월급을 받는다.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 이야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020년 7월부터 서울시를 시작으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시행하고 있다. 이 일자리는 경기, 전남, 전북, 춘천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되고 있다.

133주년 세계노동절 당일인 1일 오전 10시 40분에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제도화를 명시한 특별법 발의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국회에서 열렸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시행 3년 만에 이룬 쾌거다. 장애인 노동자 300명은 오후 2시,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에 모여 결의대회를 열고, “특별법 제정해 장애인 노동권 보장하라”라고 외쳤다.

노들장애인야학의 타악기 연주팀 ‘노들쿵쿵차카차카’가 공연 중이다.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준비위원장이 무대 앞에서 춤 추고 있다. 사진 하민지
노들장애인야학의 타악기 연주팀 ‘노들쿵쿵차카차카’가 공연 중이다.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준비위원장이 무대 앞에서 춤 추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 못 받아… 평균 월급 37만 원

전장연은 지난해부터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별도로 ‘장애인 노동절 대회’를 열고 장애인 노동권을 외치고 있다.  중증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노동현실을 알리고 경쟁 중심의 고용시장에서 밀려난 최중증장애인 고용에 대한 정부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장애인 노동절’은 올해로 2회째를 맞았다.

장애인은 최저임금법 7조 1항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된다. 즉, 사용자는 장애인을 노동자로 고용한 후 ‘합법적으로’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근로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장애인 노동자는 지난해 8월 말 기준 6691명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대다수는 직업재활시설이라는 보호고용 영역에서 일하는 중증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은 직업재활시설에서 상자 포장, 휴대전화 부품 조립 등 단순 작업을 한다. 월 평균 임금은 37만 원 안팎으로, 최저임금의 20% 수준이다.

장애인의무고용제도도 있으나 마나다. 지난해 기준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국가와 지자체, 공공기관은 전체 인력의 3.6%, 민간기업은 3.1%다. 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벌금 성격의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내야 하는데, 여러 기업이 낸 고용부담금이 매년 늘고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 △2018년 226억 5800만 원 △2019년 322억 1800만 원 △2020년 327억 4400만 원이다. ‘고용하느니 벌금 낸다’는 식이다.

한 활동가가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적힌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활동가가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적힌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제도화의 시작 “특별법 제정하라”

장애인 노동자는 이 같은 현실에 저항하며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일자리는 ‘생산능력’이 낮다고 낙인찍힌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일자리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는 한국 정부가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을 시민사회에 알리는 노동을 한다.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식개선강사 등 세 가지 직무를 통해 협약이 한국 사회에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게 한다.

그간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서울시를 비롯해 지자체 재량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장애인 노동자는 이 일자리가 법으로 제정돼, 중앙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시행할 수 있도록 요구해 왔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 여러 차례 행진하며 “이것도 노동이다”, “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쳐왔다.

끈질긴 투쟁 끝에,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및 고용 활성화를 위한 공공일자리 지원 특별법(아래 특별법)’이 우원식 의원 대표로 발의됐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는 한목소리로 “특별법을 제정하라”라고 외쳤다.

정규웅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정규웅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정규웅 노동자(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세상 모든 시민은 먹고살 권리가 있는 민중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민중과 대화조차 하지 않아 이렇게 투쟁하기 위해 달려왔다. 아이고…”라며 “지금 필요한 건 권리중심공공일자리다.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 지원을 늘려라! 특별법을 제정하라!”라고 말했다.

신지호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발언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하민지
신지호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발언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하민지

신지호 노동자(에바다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 다들 나처럼 이 일자리에서 함께 일하고, 돈도 벌고, 잘 살면 좋겠다”며 “장애인도 노동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투쟁해서 세상을 바꾸자!”라고 외쳤다.

장애인 노동자 300여 명은 결의대회를 끝낸 후 서울시청에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까지 행진했다. 이후 노동청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열었다.

노들장애인야학 학생인 김장기 씨가 타악기를 연주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하민지
노들장애인야학 학생인 김장기 씨가 타악기를 연주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 지하철행동 지지하는 시민 연대체 결성

한편 이날 결의대회 2부에서는 장애인권리 지하철행동 시민네트워크(준) 출범식이 열렸다.

전장연은 매년 3월 26일 ‘전국장애인대회’를 시작으로,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거쳐 5월 1일 장애인 노동절까지 집중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5월 1일에는 통상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 해단식을 진행하지만, 올해에는 해단하지 않고 장애인의 지하철행동을 지지하는 연대체로 전환했다.

213개 장애인운동단체 및 시민사회단체가 참여 중인 420공투단은 “우리는 해산하지 않고 장애인이 ‘시민권 열차’를 탑승하는 그날까지 함께 행동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출범 배경을 밝혔다. 해당 연대체는 오는 11일 회의를 통해 공식 명칭, 행동, 출범 일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시민 노예주 씨는 이날 출범식에서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시민을 ‘죄 많은 시민’이라 부르고 싶다. 20년을 넘게 기다린 사람들 앞에서 고작 몇 분 늦었다고 욕설과 혐오발언을 일삼는 그들은 정말 ‘선량’하고, ‘무고’하고 ‘죄 없는’ 시민인가?”라며 “모른 채 살아가도 되는 권력 속에서 안전하게 지내온 시민에게 말하고 싶다. 해방을 이야기하는 승강장으로 와달라. 누구도 이 투쟁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세계는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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