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박멸하려는 파시즘, "사회 구성원 공존 위협해"

▲성소수자·언론단체들이 조우석 이사의 혐오발언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29일 개최했다.

“동성애자는 더러운 좌파”
“좌빨과 동성애자의 더러운 커넥션”

지난 8일 조우석 한국방송공사(KBS) 이사가 한 토론회에서 성소수자와 진보운동을 매도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또한 성소수자 활동가들 개인의 신상을 공개하고 이들에게 모욕적인 말도 했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해 소수자의 이익도 충실히 반영해야 할 공영방송의 이사로서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이사회 내부와 시민사회로부터 제기되곤 했으나, 현재까지 조 이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10개 성소수자·언론단체는 조 이사 혐오발언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는 긴급 토론회를 29일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에서 열었다. 이들 단체는 조 이사가 한 혐오발언의 의미를 짚고, 책임을 묻기 위한 시민사회 공동 대응을 주문했다.

혐오발언 노출 당사자들 “나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조우석 이사가 직접 실명을 거론했던 당사자들은 혐오발언에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이 발언이 자신들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우려했다.

정욜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는 조 이사가 “애인이 에이즈 환자”라고 한 발언을 두고 “만연한 에이즈 혐오나 공포를 개인 활동가의 사실적 경험을 들어 극대화하고, 더럽다는 표현으로 혐오 표현의 정점을 찍으려 했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정욜 활동가는 “혐오세력들이 공격하기 적합한 이력이 있고, 공개된 성소수자 활동가에 대한 공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을 해외토픽으로 접한다. (혐오)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나, 당하고 나니 별로 좋지는 않다.”라며 “혐오발언은 우스우면서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공개적 장소에서 활동가에 대한 폭언, 린치가 우려된다.”라고 토로했다.

정욜 활동가는 “혐오발언을 확산시키는 태도는 한 개인의 객기는 아니며, 앞으로 혐오발언의 화살이 다른 곳으로 겨냥될 것으로 본다. 혐오는 침묵을 강요하고, 혐오당하는 존재에 더러움을 덧씌운다.”라고 밝혔다.

소위 “좌빨과 동성애자의 더러운 커넥션”으로 지목된 곽이경 민주노총 대외협력부장도 “나는 ‘더러운 좌파’로 분리수거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나를 위축시키는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곽 대외협력부장은 “실제로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혐오범죄가 일어나는 수순”이라며 “목소리 큰 분들이 ‘누구는 욕해도 된다’, ‘누구는 죽어도 된다’고 한다. 세월호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그렇고 성소수자도 비슷하게 당한다. 그리고 누군가 때려도 된다고 여기는 어버이연합, 서북청년단을 정부가 묵인하는 시대가 오는구나 생각한다.”라고 우려했다.

또한 곽 대외협력부장은 “우리의 다양한 사상과 실천의 스펙트럼을 무시하고 ‘종북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려 하는 수많은 고민을 심각하게 모욕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조 이사 혐오발언의 표적이 된 정욜 활동가(왼쪽)와 곽이경 대외협력부장(오른쪽).

동성애 박멸하려는 ‘파시즘’, 사회 구성원 평화적 공존 위협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조우석 이사의 혐오발언이 성소수자를 국가 전복세력으로 보는 데에서 나왔다고 지적한다. 조 이사는 보수 인터넷 언론 미디어펜 9월 6일 칼럼 ‘동성애, 국가해체 노린 좌파의 최종병기’ 등을 비롯한 다수 글에서 동성애가 교회와 군대를 파괴함으로써 소위 ‘종북 좌파’와 마찬가지로 국가를 위협하는 세력임을 밝히고 있다.

전 대표는 이러한 시각이 ‘동성애-좌파’와 ‘국가-사회-가정’을 갈라 전자로부터 후자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을 낳았다면서 “이는 파시즘의 전쟁애와 직통하는 언설”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최근 논란이 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을 함께 고려할 때, “두 우익의 공영방송 내 배치와 파시즘적 화술은 우연의 일치이거나 지극히 사적인 언행은 아닐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소수자나 진보 운동 진영 등 특정 사회 구성원을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을 두고 이주영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구성원의 평화적 공존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위원은 “한 사회가 소수자 집단에 대한 증오선동을 방임할 때, 그 소수자 집단 구성원들이 법의 평등한 보호에 대한 믿음을 잃고 공동체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강화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 전문위원은 “증오선동은 청중들 사이에서 동조를 유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서히 소수자 집단에 대한 편견,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키워 이들에 대한 반감과 공격의 지반을 형성한다”라며 “이러한 현상이 누적될 때 시민사회 담론 형성의 왜곡, 다원주의 및 민주적 가치의 약화, 공존의 위기 등 함께 사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공동체 전체의 해악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 모독으로 물의를 빚은 조우석 이사. (정규재 TV 화면 캡쳐)

무분별한 혐오발언 제동 거는 시민단체 공동대응 해야

이에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조우석 이사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터져 나오는 혐오발언에 제동을 걸기 위한 공동대응을 주문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세월호 사건 당시 유가족이 배·보상을 원한다는 카카오톡 유언비어,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의 교통사고 막말 등 악의적인 발화가 공공연하게 이뤄졌던 사건에 비춰볼 때, “함부로 입을 놀리더라도 특별한 제재를 받지 않다보니, 누군가를 모욕하고 유언비어를 해도 된다는 학습효과가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상임활동가는 “이 문제는 (혐오발언이) 이주민, 사회 저항세력, 장애인, 사회적 약자,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할 것”이라며 “이번 조 이사 발언을 으레 있었던 일로 치부하기보다, 그가 말에 책임지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우선 “조 이사의 혐오발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응징해야 한다. 언론단체, 성소수자 단체가 힘 모아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고소·고발, 퇴진운동을 해서라도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김 사무국장은 조 이사에게 책임을 물은 이후에 “(유엔의 인권옹호자 선언은) 인권옹호자의 주장과 활동이 보장받아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앞으로 혐오발언이 인권옹호자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을 드러내야 한다”라며 “(혐오발언이) 너무 뻔하고 가치가 없으니 거기에 대응하면 동급으로 보일까봐 자존심 상할 수 있지만, 여러 단체들이 공동 규탄에 나설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성소수자·언론단체들은 조 이사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하고 있으며,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공동 대응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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