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세광학교 학생회, “특수학교 CCTV설치 반대한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의 첫 공식입장 “우리는 숨바꼭질하는 술래가 아닙니다”
최근 특수교육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특수학교, 특수학급 내 CCTV설치 의무화 법안(이른바 ‘한음이법’)에 대해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한음이법’ 논란은 올해 4월, 한 특수학교 통학버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뒤늦게 병원으로 이송된 장애학생 박한음 군(8세)이 병원에서 68일만에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시작됐다. 사고의 원인으로는 당시 차량에 동승했던 보조교사가 박 군의 심정지를 막기 위한 조치를 적절히 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이달 초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수학교 및 특수학급, 특수학교 통학버스 등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장애인등에대한특수교육법 및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를 묶어 ‘한음이법’으로 불렀다.
그러나 지난 19일,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광주세광학교 학생회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입장을 발표하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8조 폐쇄회로 텔레비전 설치에 관한 개정안 전부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번 논란에 대해 특수교육 당사자들이 처음으로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입장문을 낭독하는 동영상과 함께 게시된 글에서 학생회는 총 9가지 이유를 들어 CCTV설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무엇보다 이번 개정안이 특수교육대상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이는 “특수교육대상자는 의사표현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 것이며, 보호만 받아야 하는 수동적 인간으로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생회는 또 “교실은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 호흡하는 공간이며 친구들과 선생님과 소통하는 자유롭고 편안해야할 공간”이라며 “특수교육대상자의 안전과 교육기관의 보호를 위한다고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교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저희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며,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며,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음이 사건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버스에서 일어난 사고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교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한다는 개정안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특수학교의 전공과에는 고령의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기도 합니다. 저희 학생 중에는 50대, 60대 어른들도 여럿 계신데 이런 성인 학생들은 고려해 보셨나요?”라며 “아무리 영상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안전 확인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저희는 불안하기만 합니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세광학교 학생회의 입장 발표에 앞서 현장 특수교사를 중심으로 이 개정안이 학생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특수학급을 잠재적 범죄의 현장으로 보는 것이라며 온라인 상에서 강한 반발 여론이 제기된 바 있다.
아래는 세광학교 학생회의 입장서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광주세광학교 학생회장 허우령 그리고 부회장인 추교민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고 슬픈 이번 한음이 사건으로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님께서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에 CCTV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 개정안을 저희 시각장애학교 학생회는 논의하였고 아래와 같은 생각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저희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광주세광학교 학생회에서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8조 폐쇄회로 텔레비전 설치”에 관한 개정안 전부를 반대합니다.
개정안 반대 이유
첫째. 교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특수교육대상자인 저희 학생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특수교육대상자는 의사표현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 것이며, 보호만 받아야 하는 수동적 인간으로 만든 개정안으로써 저희 학생회 의원 8명 전원은 이 개정안에 대해 강력히! 반대합니다.
둘째. 교실은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 호흡하는 공간이며 친구들과 선생님과 소통하는 자유롭고 편안해야할 공간입니다. 특수교육대상자의 안전과 교육기관의 보호를 위한다고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교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저희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며,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며, 인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셋째. 장애 학생 즉 특수교육대상자는 비장애 학생들과 같이 교육권과 자유가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에만 CCTV를 설치한다는 것은 장애인이라고 감시하고 차별하는 행위입니다. “왜 저희가 감시받고 차별받아야 하나요? 여기가 병원인가요?”
넷째.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1조 “장애인 및 특별한 교육적 요구가 있는 사람에게 통합된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이들이 자아실현과 사회통합을 하는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저희의 자아실현과 사회통합을 위해 교실에 CCTV를 설치한다는 것은 저희를 배려한 것인가요? 위축되어 있는 친구들에게 더 큰 마음의 짐을 주는 것은 아닌지요? 저희가 통합된 사회로 진출하기 위해 차별받지 않고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감시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섯째. 한음이 사건은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버스에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교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한다는 개정안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섯째. 특수학교의 전공과에는 고령의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기도 합니다. 저희 학생 중에는 50대, 60대 어른들도 여럿 계신데 이런 성인 학생들은 고려해 보셨나요?
일곱째. 특수학교에는 중복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많지만 의사표현이 가능한 친구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의사표현이 안된다고 해서 저희 친구들의 사생활을 CCTV에 담는다는 것은 그 친구들의 인권 또한 무시한 행위이며 이 또한 차별입니다.
여덟째. 아무리 영상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안전 확인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저희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학교폭력, 안전문제를 고려한다면 교실이 아닌 복도나 위험사각지대에 CCTV를 설치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술래가 아닙니다. 저희가 장애를 가졌다고 숨지 않습니다. 혹시 저희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여러분들도 저희를 보지 않고 계셨나요? 저희도 소리칠 수 있고 당당하게 세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희가 도움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고 그래서 저희를 보지 못한 분들께 저희의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저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