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하지만 없었던 책’, 발달장애인 스스로 읽는 책 나왔다

피치마켓, 세 번째 책으로 알퐁스 도데의 ‘어머니’ 펴내

2016-10-05     강혜민 기자
발달장애인 등 느린 학습자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피치마켓이 출간한 책들
피치마켓은 5일 마포구 청소년수련관에서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읽는 책’ 알퐁스 도데의 ‘어머니’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알퐁스 도데의 어머니 각색에 참여한 홍성훈 작가와 함의영 피치마켓 대표이 북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특별한 사람을 위한, 꼭 필요하지만 없었던 책” 발달장애인 등 느린 학습자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피치마켓의 책에 새겨져 있는 문구다. 피치마켓이 세 번째 책으로 알퐁스 도데의 ‘어머니’를 펴내고, 5일 마포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출판기념회에서 함의영 피치마켓 대표는 알퐁스 도데 대표작 ‘별’과 ‘마지막 수업’을 젖혀두고 ‘어머니’를 먼저 출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두 번째 책 나오고 어머니들께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사랑을 글로써 공감해주면 좋겠다, 하면서 연애소설 출판 요청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이해한다면 어머니의 사랑이 우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더불어 함 대표는 알퐁스 도데의 ‘별’과 ‘마지막 수업’도 이미 작업이 끝났으며 곧 출간 예정이라고 알렸다.
 

‘어머니’를 발달장애인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작업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원작 소설은 시점과 시제의 변화가 많아,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발달장애인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섬세한 각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를 담당하는 것은 홍성훈 작가의 몫이었다. 홍 작가는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날 북콘서트에서 뇌병변장애로 언어장애가 있는 홍 작가는 노트북에 타자를 치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했다. 홍 작가가 글자를 입력하면 스크린에 그의 말이 떴다.

알퐁스 도데의 ‘어머니’ 각색에 참여한 홍성훈 작가

함 대표는 홍 작가에게 “발달장애인도 쉽게 읽을 수 있게 글 쓰는 작업이 어떠했느냐”며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한숨….”이라고 적힌 홍 작가의 답변이 스크린에 떴다.
 

좌중은 폭소했다. 함 대표 역시 웃으며 “어떤 부분이 그렇게 어려웠느냐”고 물었다. 홍 작가는 “내가 이제껏 배워온 문학과 많이 달랐다”고 답했다. 그의 말을 들은 함 대표는 “성훈 씨는 문장을 길게 쓰고 수식어를 많이 쓰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처음에 ‘밑줄’을 많이 그었다” 면서 “많은 실험 후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고 지난 시간을 전했다.
 

홍 작가가 함 대표의 말을 받아 이어나갔다. “원작 글은 짧지만 생략과 유추해야 할 부분이 많아 재구성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 마음 같아선 알퐁스 도데를 다시 살려서 다시 쓰라고 하고 싶었다.” 그의 재치에 좌중은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홍 작가는 “이제 와서 말할 수 있는데, 대표님 ‘밑줄’이 무섭다”며 우스갯소리를 섞어 책 한 권을 낳기까지의 마음고생을 토로했다.
 

이어 함 대표가 발달장애인 독서교실을 진행하며 익힌 몇 가지 노하우를 공개했다. 발달장애인에겐 설명도, 질문도 섬세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함 대표의 ‘기술’이다. 예를 들어, 사람 성격을 묘사하는 ‘무뚝뚝하다’와 같은 낯선 단어가 나올 때, 단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부터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중 누가 제일 무뚝뚝해요?”와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이를 생각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다.

함의영 피치마켓 대표

또한, 이번 소설에서처럼 ‘통조림’이라는 음식이 나오면 시중에 파는 통조림 등 최대한 많은 자료를 활용해 이를 설명한다. 소설 배경이 되는 전쟁과 통조림의 관계도 설명하며 통조림이 전쟁 때 왜 꼭 필요한 음식이고 얼마나 귀한 음식인지, 그걸 아낌없이 내주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깊은지 이야기함으로써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시킨다.
 

이번 책은 발달장애인이 읽기 쉽게 이야기를 각색한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뒷부분엔 소설을 한눈에 볼 수 있게끔 만화로 간추려놨다. 발달장애인도 독후감을 쓸 수 있게 발달장애인 눈높이게 맞는 몇 가지 질문도 정리해서 실었다. 함 대표는 “이를 통해 실제 지적장애 1급인 친구도 30분 안에 두 장짜리 독후감을 쓰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림과 함께 ‘부모님은 처음부터 부모님이었을까요?’,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될까요?’와 같은 질문을 통해 소설 주제를 확장하여 생각할 수 있게끔 도왔다.
 

현재 피치마켓은 발달장애인 삽화가 양성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발달장애인 삽화가가 참여한 다음 책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