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을 통해 재구성되는 ‘장애가 있는 몸’의 서사

공연예술 통해 몸의 통제권 회복… 긍정적 인식의 단초가 돼

2016-11-11     강혜민 기자

장애가 있는 몸은 공연을 통해 어떤 경험을 하며 그것은 장애인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11일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열린 한국장애학회 2016추계학술대회에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문영민 씨는 공연예술 활동 과정에서 일어나는 장애인의 장애정체성에 대한 변화를 몸에 대한 인식 변화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이를 위해 문 씨는 ‘내러티브로서의 장애정체성’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문 씨는 “‘내러티브로서의 장애정체성’이란 단순히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인정하는 것 그 이상”이라면서 “이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이며, 자신에게 중요한 내러티브에 의미를 부여하여 자기 삶을 정합적으로 이해하고,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자기 이해의 폭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축된 것이기에 다른 맥락은 다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게 된다.
 

무대는 이러한 장애인에게 ‘몸’에 대한 내러티브를 재구성하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공연예술은 몸을 매개체로 활용하는데, 이때 배우는 공연을 위해 ‘매력적인 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무대 공간에서 자기 몸을 통제해야 하기에 몸에 대한 탐구는 필수적이다. 몸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맞닿는다. 그러나 장애인의 몸은 또 다른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혹시 이러한 노력이 의료적 모델로의 회귀 혹은 강요된 사회적 몸-프로젝트는 아닌가?’
 

이에 대해 문 씨는 “장애인 공연예술 작품은 장애인의 몸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양한 몸의 차이를 무대 위에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이는 강요된 것이라기보다 자아표현의 수단으로 이를 통해 오히려 몸의 통제권을 찾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몸의 통제권을 일부 회복하는 것은 장애인 자신에겐 몸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단초가 된다.
 

내적 변화만이 아니라, 무대 위에 섰을 때 외적인 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상호작용이다.
 

문 씨는 “일상에선 원치 않는 시선을 받게 되는데 무대 위에선 자기가 원하는 순간에 관객에게 몸을 보여줄 수 있다”면서 “통제할 수 없는 일상에서 시선을 받는 게 억압적 사회 메커니즘이라면 무대 위에서 몸을 보여주는 건 저항이 될 수도 있고, 장애를 재의미화하는 상호작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언어장애가 있는 배우의 경우, 일상에서라면 ‘언어장애가 있어서 그러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무대 위에선 무대장치라고 생각하고 관객과 같은 속도를 공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을 굳이 ‘장애인/장애예술가’라고 정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해당한다고 문 씨는 말했다. 무대 위에선 장애가 있는 몸 자체가 가장 주요한 도구로 활용되기에 배우는 관객 앞에 몸을 가장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 씨는 “‘나는 장애인이 아니야’라고 하더라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인식하게 될 수밖에 없다”면서 “만약 자기가 자기 몸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관객 앞에 ‘매력적인 몸’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되물었다. 평소엔 손상 혹은 장애가 있는 자기 몸을 부정하게 되더라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로 장애정체성을 정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는 연극을 통해 장애인 간에도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장애정체성에 있어 내 장애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장애를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면서 “장애인이라고 해서 다른 장애유형의 특성이나 특징을 다 알거나 이해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비장애인의 눈’으로 상대방을 보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2014년 극단 애인은 뇌병변장애인 배우 두 사람이 나오는 ‘너는나다’라는 공연을 올렸다. 이를 통해 김 대표는 “나의 언어와 상대방의 언어는 얼마나 다른지, 저 사람의 행동을 내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호흡을 맞춰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됐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