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장애인 실업률 절반으로’ 선언...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영국 새 내각, 기존의 노동연계복지제도 변화 꾀하는 ‘그린 보고서’ 발간 “장애인이 고통받는 근본적 문제는 못 건드렸다” 비판 일어

2016-11-14     최한별 기자
노동연계복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모습 (출처: flickr.com)
지난 10월 31일, 영국 노동연금부(Deparment of Work and Pensions) 장관이 '노동 능력 평가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제도의 본질적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 대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다미안 그린(Damian Green) 영국 노동연금부 장관은 지난 10월 31일 "노동, 건강과 장애에 관한 그린 보고서: 삶 개선하기(Work, health and disability green paper: improving lives)"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정부는 모든 이에게 일자리가 있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결의했다. 장애가 있거나 건강 문제로 인해 삶에서 할 수 있는 일-혹은 일터-의 경로에서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그러나 현재 많은 이들이 장애나 건강 악화 등으로 일터에서 밀려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일터에서 적절한 정신적,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영국 내 취업 연령 인구의 3분의 1이 장기적 건강문제로 인해 노동 참여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취업 후 4개월에서 8개월 사이에 일을 그만두는 장애인은 연간 15만 명에 이르며, 매해 약 180만 명이 건강문제 때문에 평균 4주 이상 병가를 내고 있다. 보고서는 '국가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가 건강문제로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로 인해 연간 70억 파운드(한화 약 10조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 등 경제적 비효율을 지적했다,
 
이에, 보고서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일을 하거나 혹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기 위한 실질적 지원이 부족한 현실이고, 이는 변화되어야 한다"라며 "장애인 실업률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보고서에서는 장애인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개인 지원 제도를 강화하고, 많은 비판을 받아왔던 노동능력평가(work capability assessment)를 재검토하며, 고용인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 장애인들이 받는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데비 아브라함스(Debbie Abrahams) 영국 노동당 예비내각 노동연금부 장관은  "보수당 정부가 지난 6년간 부추겨왔던 부정적인 '태도와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린 장관의 말은 터무니없다"라며 "잡센터와 면담 중 심장마비가 온 후에 일자리를 구하는 데 제한을 받은 사람도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냉담한 사회 보장 체계 아래에서 지원을 받으려 애써온 수천 명의 장애인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노동당은 노동능력평가 제도와 보수당의 징벌적 제재 자체를 철폐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표면적인 수정에 그칠 뿐"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 칼럼니스트인 프란시스 라이언(Frances Ryan)은 "그동안 보수 정권이 장애인 실업률을 낮추려 했던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장애인과 만성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연금 제도에서 밀어낸 각종 제재 조치들"이라며 "이는 현대 정치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치명적인 정책이었다"라고 비판했다.
 
라이언은 "물론 취업은 많은 장애인에게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직업을 가지는 것이 '집에 그냥 앉아서 연금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보고서 내용은 마치 파킨슨 증후군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했던 사람에게 대단히 새로운 정보라도 주는듯한 오만한 말로 느껴지는 데다, 가장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라이언은 나아가, "취업 지원 패키지에서도, 장애인이나 만성 환자가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에 집중한다고 했는데, 이는 구조적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보수적 개인주의에 따른 민감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즉, 이러한 발언은 마치 누군가가 일을 하지 못하고 직장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제도는 △건강 상태 변동으로 인해 짧은 기간 동안 일을 하더라도 처벌하지 않는 유연한 연금 평가제도 △장애와 질병을 심도있게 이해한 정책 개발 △고용인들의 '편견과 몰이해'를 없애는 것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노동 시간 탄력제나 재택근무와 같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업무 환경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영국은 장애인이나 만성질환자 등이 노동을 할 능력이 있는지 먼저 평가한 후, 노동 능력이 인정되면 '잡플러스 센터'와 같은 취업 지원 기관을 통해 구직활동을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평가와 과도한 제재 조치로 인해 실제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노동 시장에 노출되어 사망에까지 이르는 사례가 속출하여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왼쪽부터 마크 우드, 데이비드 클랩슨, 재클린 해리스. 이들은 모두 '노동능력평가'에서 '노동 가능'으로 평가받아 구직 활동을 해야 했으나, 장애나 질병 등으로 인해 '구직 매뉴얼'을 제대로 따르지 못해 연금이 끊기는 등 각종 제재를 받다 결국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