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리에 도전했던 사람, 수화통역사 김현철 씨 별세

수화통역, 농아인 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29일 세상 떠나

2016-12-01     최한별 기자
어느 날 친구 기복이가 나에게 물었어요.
“철아 자갈 밟는 소리는 어떻게 나노?”
“응? 자갈 밟는 소리?”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자갈 밟는 소리를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만들어낼 재간이 없었거든요.
생각해봐요, 자갈 밟는 소리라니...
전히 대답을 못 하고 있는 나에게 기복이는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왜 말을 못하노? 니는 잘 들리잖아”라고 얘기했어요.

그때부터 세상의 모든 소리는 나에게 ‘도전’이에요.
(故 김현철 씨 페이스북)
故 김현철 수화통역사. ©김현철 페이스북
 
'모든 소리가 도전'이었던, 농인들에게 소리의 세상을 더 잘 전할 수 있길 바랐던 김현철 대한농아인체육연맹 사무국장(향년 41세)이 11월 29일 별세했다.
 
김 씨는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를 졸업하고 나사렛대 국제수화통역학 석사를 졸업했다. 한국농아인협회 강릉지부와 부산지부를 거쳐 중앙회에서 수어정책부 과장으로 근무하다 지난해부터 대한농아인체육연맹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그 밖에도 김 씨는 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 나사렛대 수화통역학과 교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김 씨는 수화통역 실력이 뛰어나 대외적으로 활발한 통역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2월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진행되었을 때, 청각장애인도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수화통역 촉구에 앞장섰다. 농인 부모와 청인 자녀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서 수화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9일 친동생에 의해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경찰이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평소 고인과 친분이 있었던 이미혜 한국복지대학교 수화통역학과 외래교수는 "믿어지지 않고 황망하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현철이는 어디서나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실력도 뛰어나고 워낙 밝은 사람이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그는 "수화통역사 한 명을 키워내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뛰어난 통역사가 세상을 떠나 너무 안타깝다"라며 "현철이는 '내가 일 한 가지를 오래 못 하는 성격인데, 농인과 함께 일하는 것이 제일 오래 몸담은 분야가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농사회와 수화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고 전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김현철 님은 2005년 때 처음 만났다. 자주 연락하고 지내지는 못했지만, 늘 열정적이고 따뜻했던 분"이라며 "이렇게 이별하게 되어 너무 안타깝고 아쉽다"고 전했다.
 
고인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따뜻하고 쾌활한 성품으로 주변에 늘 사람이 많았다. 현재 그의 지인들이 부고를 접하고 김 씨의 페이스북에 150건가량의 추모글을 올리고 있다.
 
빈소는 1일부터 순천 한국병원에 차려지며, 발인은 3일 오전 7시 4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