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장애인위원회, 장애인 정책 컨트롤타워 될 수 있나?
장애인 종합 정책 수립, 부처 감독, 전달체계 통합 등 역할 제시 형식적·일시적인 위원회 되지 않으려면...실질적 권한, 정부의 의지 필요해
장애인들의 욕구는 소득, 주거, 노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으나, 복지 체계는 여러 부처로 분절돼 당사자들이 통합적인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이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아래 한국장총)은 16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정책토론회를 열고, 장애인 복지 정책을 통괄할 컨트롤타워, 국가장애인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UN ESCAP)은 아태장애인 10년(1993~2002)을 선포하며 장애인 복지정책을 연계·조정하기 위한 국가 기구를 설치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 정책의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전반적인 장애인 복지정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 특수교육, 이동권, 정보 접근권 등 장애인 정책은 각각 고용노동부, 교육부, 국토교통부, 행정자치부 등 여러 부처로 나뉘어 있고, 지자체도 여러 장애인 복지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 부처가 독자적으로 장애인 정책을 진행하면서 장애인 업무의 연계가 이뤄지지 않아 행정적으로 중복과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으며,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받지 못해 불편함을 겪는다는 것이 한국장총의 지적이다.
장애인 정책의 통합, 조정 기능을 보완하고자 중앙정부는 국무총리 산하에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실제로 1년에 1~2회밖에 열리지 않아 형식적인 기구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이날 발제를 맡은 우주형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교수는 형식적인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대체해 상설기구인 국가장애인위원회(가칭)를 설립하자고 주장했다. 국가장애인위원회는 다양한 장애 유형과 생애 주기를 고려한 종합적인 장애인 정책을 수립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나눠진 장애인 복지를 효과적으로 조정하며, 종합적인 장애인 정책을 각 부처가 제대로 시행하는지 감독하고 평가한다. 아울러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복지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전달체계를 구축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우 교수는 국가장애인위원회를 대통령 소속 기구로 설치해 위상을 높이고, 위원회의 사무를 처리할 사무처를 둬 상설 업무를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해 정책에 전문성이 있는 이들로 위원회와 사무처를 꾸려 전문적인 장애인 정책 실행을 담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장애인위원회 운영 인력은 복지부의 장애인 정책 관련 기능을 흡수하거나 관련 부처에서 파견해 충원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날 토론자들도 국가장애인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동의했으나, 기존 국가장애인정책조정위와 같이 형식적 기구에 그치지 않을 방안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승기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과 관련해 규제하고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행정위원회가 필요하다”라며 “슬림화된 조직, 즉 위원장, 사무국, 일반적인 정책 조정 부서만으로는 여러 부처의 의견을 취합하고 역할을 통괄하기 어렵다. 국가장애인위원회에 강력한 조직과 권한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가장애인위원회는 거시적인 틀에서 정책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것을 넘어, 복지 서비스가 어떻게 제공되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지속해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라며 “장애인들에게 복지 서비스가 어떻게 지원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토대로 위원회의 역할이 설정되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은종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직속 행정위원회였으나, 박근혜 정부 때 미래창조과학부 등으로 흡수 통합됐다”라며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정권 바뀔 때마다 폐지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위원회 소속을 어디 둘 것인가보다 독립적인 상설 기구를 설치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 사무국장은 “상당수 위원회가 정당 추천으로 위원이 꾸려져, 위원들의 장애인 감수성이 낮은 경우가 많다. 장애인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다.”라며 “덴마크 국가장애인위원회가 장애인단체와 국가기관이 절반씩 위원들을 추천하는 것을 고려할 때, 국가장애인위원회에서 정당 추천을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홍성대 더불어민주당 복지전문위원은 “박근혜 정부 들어 권한이 강화된 사회보장위원회만 하더라도 사회보장 정책을 발달시킬 임무가 부여됐음에도 오히려 복지를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복지를 확충하고자 하는 의지와 철학이 없으면 위원회가 있어도 유명무실해지거나, 사회보장위원회처럼 설립 목적과 반대로 작동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다만 홍 복지전문위원은 “복지 분야의 여러 위원회는 정부, 특히 복지부 장관이 위원을 추천하다 보니, 위원들의 발언에 한계가 많다”라며 “정부만 위원들을 임명하도록 하기보다 국회도 일정 정도 위원들을 추천해야 정부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은 사무국장과 다른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