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총선-촛불광장 속 소수자의 자리
[2016년 결산 ④] ‘정치’ 그 자체가 이슈였던 한해, 소수자의 자리를 묻는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 자체가 이슈가 된 한 해였다. 2월 테러방지법 제정을 막기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 4월 총선, 그리고 현재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까지.
필리버스터는 정치에 대한 냉소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깨웠다. 이를 바탕으로 4월 총선에서 야당이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는 이변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반기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면서 전국 200만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다. 그 힘은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 가결안을 결정지었다. 무력감과 패배감에 젖어있던 사람들은 ‘움직이면 바뀐다’는 것을 서서히 배워나가는 중이다.
광장에서 사람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국가란 무엇인지,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는데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공화국은 대체 무엇인지 묻고 사유하기 시작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물음을 던지고 사유함은 정치적 행위자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여기서, 그 정치적 행위를 가능케 하는 기본전제조건은 언어다. 그런데 그 사용 언어에서 배제되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지금 광장과 넘쳐나는 언어는 어떤 의미일까.
소수자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선 언어를 가져야 하고, 내가 쓰는 언어와 상대방이 쓰는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농인에겐 ‘수화’가 있지만 언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발달장애인은 이 세계에 통용되는 언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이들은 ‘언어를 사용할 권리’부터 요구해야 했다. ‘정치’ 그 자체가 이슈였던 한해, 농인과 발달장애인 또한 그 정치의 장에 참여하기 위해, ‘권리를 가질 권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었다.
지난 2월 23일,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시작됐을 때, 농인들은 국회 측에 수화통역 제공을 요청했다. 때마침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터였다. 그러나 국회는 “필리버스터는 일반회의에 해당하여 수화지원 대상이 아니”라면서 예산상의 이유로 수화지원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농인계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필리버스터 18번째 토론자인 진선미 의원부터 마침내 수화통역은 제공됐다.
4·13 총선을 앞두고선 발달장애인들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선거공보물과 발달장애인에게 맞는 투표용지 제공을 요구했다. 현재 배포하는 공보물은 발달장애인 입장에선 내용 파악이 어려워 후보들의 공약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투표용지에도 후보 사진을 넣는 등의 방법으로 발달장애인 눈높이에 맞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4년에 한 번 있는 총선, 5년에 한 번 있는 대선에서조차 발달장애인은 자신이 가진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다. 발달장애인에게 선거란 어떤 의미였을까. 이러한 ‘무신경한 관행’은 정치 참여의 장에서, 일상에서 이들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발달장애인 선거권 보장을 위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광장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이러한 시선을 광장에도 돌려보자. 광장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광장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하나의 대의에 동의하는 동일 집단 같으나, 그 집단을 구성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나'들이다. 그래서 그 속성은 균일하지 않다. 하지만 광장은 여전히 일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사회의 기본값(비장애인-남성-성인-이성애자-음성언어-...)을 수용하고 있다. 광장에 참여한 소수자들이 광장 내에서도 일상과 같은 차별을 경험하는 이유다.
지난 10월 29일, 제1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광화문광장에 수화통역이 제공된 것은 2차부터다. 이 역시 주최 측에서 먼저 제공하기보다 농인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수화통역이 제공됐음에도 정작 농인들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수화는 표정과 손짓 하나 모두 언어인데, 화면 크기가 너무 작아 표정과 손짓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언자가 발언하는 중에 영상이 사라지기도 하고, 자막이 뜰 땐 자막이 수화영상 절반을 가리기도 한다. 청인(소리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치면 마이크가 꺼지고, 소리가 끊기는 것과 같다.
농인들은 화면 크기가 더 커야 한다고, 중간에 수화영상이 끊겨선 안 된다고 했지만 여전히 잘 수용되지 않고 있다. ‘이만하면 되지 않느냐’는 청인 중심 시선에서 영상이 송출되는 거다. 청인들은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식하지 못하기에 수화통역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수화를 TV 하단의 동그란 영상 혹은 율동(그마저도 엉터리인 수화) 정도로 여기는 이 사회의 통념이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람들은 광장에서 많은 것을 학습한다. 하지만 수화통역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광장은 농인에게 음소거된 영상과 같다. 광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그 배움에서마저도 배제되는 것이다.
어쩌면 광장은 아직까지는 ‘해방의 공간’이 아닌 일상의 이데올로기가 유지되는 공간에 가깝다. 이는 소수자 입장에선 자신에게 ‘비정상’의 낙인을 찍은 ‘정상 이데올로기’가 작동되는 것이기에, 광장에서도 편견과 때론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
광장이 열리면서 인터넷엔 화장실 안내 표시지도가 공유됐다. 이후 서울시도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했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곳에 왜 장애인화장실은 없는 걸까. 휠체어 탄 이는 광장에 나오리라고 차마 생각지 못한 걸까.
휠체어 탄 이가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으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고원준 씨(가명, 34세) 이야기로 알 수 있다. 그는 지체장애로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 지난 3차 집회 때, 어떤 중년 남성이 그가 촛불 들고 있는 모습을 동의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불쾌함에 그의 지인이 왜 사진을 찍느냐고 중년 남성에게 물으니 “그 모습이 너무 숭고해서 찍었다”는 답을 들었다. 그는 즉시 사진 삭제를 요청했다.
언어는 사회적 인식 습관을 드러낸다.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는 지난 11월 4일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의 정신연령은 17세… 발달장애 수준”이라고 말했다. 광장에서도 박근혜, 최순실 등에 대해 여성 비하 발언과 함께 ‘정신병자’ 등 정신장애인 비하 발언이 쏟아진다. 왜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은 비하의 대상이 되는가. 그러한 ‘수식’은 왜 이토록 자연스러운가.
그 광장엔 발달장애인도 있고, 정신장애인도 있다. 그 말을 하는 바로 당신 곁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올바른 말을 쓰자’며 강요할 순 없다. 다만 그러한 언어가 누구(대부분 사회적 소수자다)를 배제하는지, 고민할 순 없을까. 그게 광장을 넓히고 더 많은 이들을 참여하게 만들 것이다.
사람들은 박근혜 퇴진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그린다. 그 세계에 이 사회 소수자들―농인, 휠체어 탄 장애인,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에이즈 감염인 등―의 자리도 있는가. 그 세계는 이들도 원하는 모습인가.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사회란 이들에게 지금과 무엇이 다른가.
다가오는 새해, 이 파국 속에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 목소리를 내는 광장의 어느 깃발 아래 이들도 서 있을 것이다. 광장의 시간을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삶에 대한 오늘의 연습이 다른 내일을 가능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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