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차별금지’ 이유로 인권조례 폐지? 인권위 ‘바람직하지 않아’
인권위 ‘성소수자, 인간으로서 존엄성·가치 존중받고 차별 해소되길 기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이른바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지자체 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보수 기독교계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인권위가 8일 밝힌 입장 표명문에 따르면 지난 4월 6일 충청남도의 일부 단체는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가 동성애, 동성결혼을 옹호한다며 조례 폐지를 촉구하는 민원을 제출했다. 이에 충청남도지사는 조례 폐지 여부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을 요청했다. 인권위는 부여군, 계룡시, 보령시, 오산시, 포항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도 유사한 이유로 인권조례 폐지 주장이 제기된 점을 고려해 이번 요청을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검토 결과 인권위는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이유로 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충청남도, 충청남도 의회에 전달했다. 먼저 인권위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차별 금지 조항이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고 규정한 헌법 11조에 합치된다고 보았다. 또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등 다양한 법률에서도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인권위는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을 해선 안 된다는 국제 사회의 원칙을 제시했다. 한국이 1990년 가입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 규약), 1983년 가입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등 인권조약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2015년 한국 정부에 성소수자에 대한 광범위한 차별을 금지하라고 권고했고, 한국 정부 또한 2011년 6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인권,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찬성했다.
아울러 인권위는 동성애가 정신질환의 일부로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인권조례 폐지 측의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가 동성애를 정신질환에서 제외했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성적 지향 그 자체가 정신질환인 것은 아님”이라고 발표한 사실을 그 근거로 들었다.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반대하는 것이 종교적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인권조례나 인권위법 등에 종교 영역에 대한 의사표현을 제한하는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종교적 목적으로 다른 종교의 신앙 대상을 비하했던 종교단체 신도에게 명예훼손죄를 적용했던 대법원 판례(2012도13718)처럼 모멸적인 내용을 담은 종교적 의사표현은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이들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차별과 편견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인권조례는 지역 주민들이 성별, 종교, 장애, 연령,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행정서비스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지자체의 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인권위는 2012년 각 지자체에 인권조례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계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각 지역 학생인권조례, 서울시민인권헌장, 광주인권헌장 등 지자체 인권조례 제정에 반대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