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 가고 싶은데, 휠체어석 있나요?

콘서트 티켓은 구했는데 휠체어석 여부 알 수 없어 안절부절 무의(Muui), 서울 내 대형공연장 21곳 조사… ‘절반만 휠체어석 있어’

2018-02-27     강혜민 기자
인터넷 예매사이트 메인 화면 갈무리
장애인 이동권 콘텐츠 제작 협동조합 ‘무의(Muui)’ 이사장으로 있는 홍윤희 씨의 딸은 아이돌 ‘뉴이스트W’의 팬이다. 작년에만 공연을 5번 다녀왔다. 3월 중순에 열리는 단독콘서트도 가고 싶었던 딸은 자신의 트위터에 “뉴이스트W 콘서트에 휠체어석 배치해주세요”라고 올렸다. 이 트윗은 1500번이 넘게 리트윗되고, 수많은 팬들이 “단콘(단독콘서트)에서 꼭 만나요!”라고 응원하며 지지했다.

홍 씨의 딸은 어렵게 티켓을 구했으나 여전히 공연장에 휠체어석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홍 씨는 27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기획사는 일반좌석 예매하면 이후 휠체어석을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일반좌석 구입 후 휠체어석 자리가 어디냐고 문의하니 ‘현장에 와봐야 안다’고 답했다”면서 “보통은 내가 어디 앉는지 알고서 가는데 내가 어디 앉는지 왜 알 수가 없느냐고 하자, 같은 대답만 들었다”고 답답함을 토했다. 뉴이스트W 공연이 열리는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은 지하 2층, 지상 3층의 건물로 수용인원만 5천 석에 달하는 대형 공연장이다.

이를 알아보기까지의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티켓 예매사이트에선 휠체어석을 별도로 판매하지 않아 이를 알아보는데에도 시간을 써야 했다. 결국엔 티켓사이트를 통해 기획사에 문의할 수 있었고, ‘휠체어석은 니즈(needs)가 있는 분들에게 전화예매를 받기로 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에 대해 홍 씨는 “그러면 티켓 사이트에 그렇게라도 써놔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사건은 또 발생했다.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일본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시상식에 가고 싶은데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지 무의에 문의해온 것이다. 시상식 장소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이었다. 이곳 역시 4500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이다. 무의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 문의했으나 공연기획사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핑퐁게임’ 끝에 ‘휠체어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무의 측은 지인을 통해 미리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부탁했고 ‘다행히’ 약간 걸을 수 있었던 일본 팬은 계단이 많지 않은 곳에 앉아 시상식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무의는 서울과 수도권 내 1천 석 이상의 공연장 21곳에 직접 전화하여 휠체어석 좌석 실태를 확인했다. 무의의 조사에 따르면 휠체어석이 있는 곳은 LG아트센터, 국립극장, 블루스퀘어, 상암월드컵경기장,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성남아트센터 등 11곳뿐이다. 무의는 조사표를 대형 예매사이트 3곳에 게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는 옥션 고객문의 페이지에만 게시되어 있다. 나머지 사이트에선 “검토 후 연락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서울, 수도권 1천석 이상 대형 공연장 휠체어석 및 편의시설 현황 (2018. 2월 11일 기준) (제공 :무의)
홍 씨는 “블루스퀘어나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 상암월드컵경기장 등 최근에 지어졌거나 공공에서 운영하는 곳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휠체어석은 계단 때문에 각 층의 맨 뒤에 있어 관람하기엔 자리가 너무 좋지 않다”면서 “해외와 비교해도 턱없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거리가 멀어 시야 확보가 잘 안 되니 홍 씨의 딸 또한 매번 공연 때마다 쌍안경을 챙겨간다.

홍 씨는 “공연장 설계 때부터 계단 대신 경사로로 설계한다면 휠체어석을 좀 더 다양한 곳에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예매사이트 대부분은 휠체어석 정보조차 제대로 공지하지 않는다. 홍 씨에 따르면 예매사이트는 기획사에서 제공하는 내용을 그대로 게시하기에 예매사이트에 휠체어석 안내가 없는 경우엔 바로 기획사에 문의하는 게 빠르다. 그러나 홍 씨 경험에 따르면 상당수의 기획사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홍 씨는 “특히 여러 아이돌 가수가 나오는 시상식, 합동콘서트의 경우 대형 공연장이라 분명히 휠체어석이 있는데도 다른 문의가 많아서인지 기획사가 아예 전화문의를 받지 않기도 한다. 이럴 때 휠체어 이용 관객은 복장이 터진다”면서 “이런 경우, 기획사가 휠체어석을 마련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제대로 된 안내를 못 받을 가능성이 커서 공연을 아예 포기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휠체어석 운영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면서 “경험상 같은 공연장이라도 휠체어석을 풀기도 하고 안 풀기도 한다. 한마디로 일관성이 없다”고 밝혔다.

최근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첼시가 전용구장 좌석 800개를 허물어 200여 개의 휠체어석을 마련한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홍 씨는 “첼시가 특별히 장애친화가 높아서 그렇다기보다는 영국의 장애인 팬들이 계속해서 프로 구단들을 상대로 장애인석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기 때문”이라면서 “소송을 비롯한 법 규정에 따른 결과물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동등한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맥락에서 넓은 의미로 보자면 이는 명백한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장차법 시행령 15조(문화·예술활동의 차별금지)의 취지는 별도의 장애인석을 마련하라는 게 아니라 ‘모든 관람석’에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라는 거다. 왜냐면 별도의 좌석 마련 자체가 장애인을 분리하는 것인데 이는 장애인 차별이기 때문”이라면서 “장애인도 어느 좌석에서든 관람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려우니 별도의 좌석을 마련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는 그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