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아픈 날에
몸살이 심하다. 말 그대로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몸이 정신과 분리된 상태로 이틀을 보냈다. 마님이 출타 중인지라 한빛이나 나나 절대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지냈는데 주말에 덜컥 몸살이 나니 난감하다. 우선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한빛이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에 대한 생각뿐이다.
내 몸도 건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돌볼 것인지 궁리만 가득하지 몸은 여전히 바닥에 누워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금요일 저녁부터 몸에 이상 조짐이 보이더니 토요일 아침부터는 몸이 완전히 늘어져 생각과 분리된 상태가 되면서 한빛이에게 부탁을 한다.
“한빛, 아빠 아파”
“한빛이가 혼자 잘 놀아주면 좋겠어. 할 수 있지?”
녀석이 알아들었는지 목을 감싸 안으며 “아파~”한다. 그리고 아침을 겨우 챙겨 먹이고 약을 먹이고는 다시 쓰러진다.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몸은 말을 안 듣고 시간은 흘러간다.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고는 밥 먹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하고는 ‘에이 한 끼 굶자’하고 다시 누워버린다. 저녁이 다 돼서야 일어나 저녁을 챙기고 다시 약을 먹이고서 씻기고 어찌 어찌하다 보니 8시를 훌쩍 넘어간다. 집 안의 모든 불을 다 끄고서 자리에 누워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녀석이 까르르 웃어댄다.
일요일 아침.
여전히 몸은 좋지 않지만 어제에 비하면 이제는 좀 살만하다. 밤새 땀을 흘리며 잔 것도 도움이 된 것 같고, 무엇보다 실컷 잠을 자니 피로감도 덜해 그럴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좀 나아지니 눈에 이것저것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침을 챙기고 약도 챙기고서 청소를 한다. 아무리 아파도 청소는 좀 해 놔야 마님이 돌아오면 잘 지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니, 이 정도는 해 둬야겠다는 생각에 삐걱대는 몸을 세워 겨우 청소기 한 번 돌리고는 다시 자리보전하고 눕는다.
한빛이는 심심찮게 들락거리면서 내가 무얼 하는지 체크를 하듯이 한다. 어제도 툭하면 나와서 얼굴 한 번 확인하고 제 할 일을 하는데 마치 간병을 하듯이 정기적으로 와서 안부(?)를 확인한다.
오늘 모든 음식은 배달이다. 점심으로는 통닭을 시켜서 먹는데 이건 정말 너무한 통닭이다. 얼마나 튀겼는지 살이 없고, 튀김옷만 잔뜩이다. 가끔 통닭을 시켜 먹기는 했지만 이런 닭은 처음이다. 처갓집 욕은 다 먹이는 통닭집이다. 둘이 앉아 무만 잔뜩 먹고는 나머지는 ‘살처분’하고 만다. 저녁도 배달음식으로 해결한다.
먹을 것 다 먹었으니 이제 며칠 동안 미룬 한빛이 목욕이다. 머리 안 감은 지 며칠이 되니 냄새도 심하고 녀석도 가려운지 긁적대는 것이 아무리 아파도 오늘을 넘기면 동네 나가지도 못할 것 같다. 시작하기 전에 한빛이에게 부탁을 먼저 한다.
“한빛 아빠 아파요, 한 번에 딱 끝냅시다. 그럴 수 있죠?”
이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효과는 만점이다. 하자는 대로 다 따르면서 말을 척척 들어준다.
그렇게 몸살 때문에 꼼짝도 못한 이틀을 무사하게 보냈다. 전적으로 한빛이의 도움으로 보낸 주말이다. 찬바람이 무릎까지 차고 올라온 몸이 사시나무 떨 듯 시간을 보내고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틀 동안 경기도 없이 지내준 녀석에게 고맙고, 특히 토요일 같은 경우 큰일이라도 났으면 대책이 서지 않았는데 그런 시간을 혼자 잘 보내줘 더없이 고맙기만 하다. 아직도 몸이 욱신거리며 한기를 느끼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어 다행스럽고 사고 없이 보낸 시간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한빛이도 다 컸구나. 아프다니 칭얼대지도 않고 옆에서 잘 지켜주기도 하니 말이다. 말도 어찌나 잘 듣던지…
최석윤의 '늘 푸른 꿈을 가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