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한 대한민국이라는 시장
최인기의 두 개의 시선
휴가 떠날 곳을 찾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그리 멀지 않다. 1호선 전철을 타고 노량진역에 내리면 된다. 출입구를 나오면 멀리 우뚝 솟은 굴뚝, 길게 뻗은 육교가 보일 것이다. 들어오려면 좀 복잡하다. 커다란 콘크리트로 막아놨기 때문이다. 등산한다는 심정으로 오면 어려운 것도 없겠다. 곳곳에 해골과 철거를 알리는 으스스한 낙서가 ‘레트로’ 한 분위기다.
법률에 근거하면 시장개설자와 책임자는 명백히 서울특별시이지만,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마저 외면하는 곳. 6천여 명의 서울시민이 요구한 공청회조차 거부하며,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사항도 무시당하는 곳. 면담을 신청해도 참여와 소통이 불통과 먹통이 되어 돌아오는, 오래전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놓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노량진 구 수산시장이다.
새벽녘 동틀 무렵 오면 운 좋으면 ‘명도집행’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수협에서 고용한 직원과 ‘용역’들이 물밀듯 시장 안으로 밀려들면 장관이겠다. 스릴 있지 않은가? 저들은 시장을 휘젓고 다닐 것이다. 커다란 덩치에 검은 장갑을 끼고 눈만 남긴 채 마스크를 뒤집어쓴 용역들은, 주인이 없어도 물건을 닥치는 대로 끌어내 부순다. 활어 1마리를 수족관에서 번쩍 꺼내 명도집행 완료했다고 서둘러 선언한다. 뒤를 졸졸 ‘집행관’이 따라붙을 것이고, 그 앞을 평균나이 60대 이상인 노인들이 막아설 것이다. ‘10년만 버티면 성공한다’는 신화를 철석같이 믿고 시장에서 오랫동안 가족들 먹여 살려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식과 손주 뻘 되는 용역의 폭력에 썩은 나무처럼 나동그라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여성 상인들은 수치심을 무릅쓰고 웃옷을 벗어 던진 채 온몸으로 저항한다. 가련한 몸이 방패가 되고 나이 든 할머니의 쪼그라든 젖가슴이 무기가 된다. 저들도 인간이라면 이즈음 돌아서지나 않을까, 행여 폭력이 잦아들까 싶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비릿한 눈초리와 차마 입 밖에 꺼낼 수도 없는 욕설이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은 자기네들끼리 시시덕거리다가 자제하라고 마이크를 든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으라고 용역 편에 서서 떠든다. 중단하지 않으면 연행한다고 상인들을 상대로 겁박한다. 그리고 실제 저항하는 여성 상인을 본보기로 연행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곳. 지나가는 강아지도 함부로 걷어차면 처벌받는 세상이지만, 사람이 길거리 개보다도 못한 곳. 노량진 구 수산시장에 가면 볼 수 있다. 이 스펙터클한 대한민국 풍경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간곡히 호소한다. 연대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