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 긴급구제 권고하기로 결정

긴급구제 진정한 지 21일만에 상임위에서 결정, 당사자들 안도의 한숨 송용헌 씨, ‘연령제한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 제기 예정

2019-09-25     강혜민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 문제에 대해 긴급구제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 상임위원회 회의 전, 회의실 앞에서 피케팅을 하는 송용헌 씨. 그의 뒤로 “장애인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 피해자를 인권위는 긴급구제하라!”등의 글이 적힌 종이들이 붙어있다. 사진 강혜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활동지원서비스 만 65세 연령제한에 대해 복지부와 지자체에 긴급구제 권고를 하겠다고 결정했다. 중증장애인들이 인권위에 진정한 지 21일 만이다.

25일 오전 9시 30분에 열린 인권위 상임위원회에서 인권위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만 65세가 되는 해에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강제 전환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긴급구제 결정을 내렸다. 상임위원회에는 최영애 인권위원장과 3명의 상임위원(최혜리, 정문자, 이상철)이 참석했다. 이날 상임위에는 공개안건 5건, 비공개안건 2건이 다뤄졌으며 만 65세 연령제한 문제는 비공개 안건으로 논의됐다.

인권위법 제48조(긴급구제 조치의 권고)에 따르면, 위원회는 진정을 접수한 후 조사대상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면 그 진정에 대한 결정 이전에 진정인이나 피해자의 신청에 의하여, 또는 직권으로 피진정인, 그 소속기관 등의 장에게 긴급구제를 권고할 수 있다.

올해로 만 65세를 맞이한 중증장애인 세 명은 지난 4일, 인권위에 긴급구제 진정을 했다. 진정인은 송용헌(54년, 8월 10일생), 김용해(54년, 6월 13일생), 김순옥(54년, 7월 7일생) 씨다. 세 명 모두 중증장애인으로 활동지원서비스가 있어야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만 65세 연령제한으로 ‘죽음’에 내몰린 장애인들, 인권위에 긴급구제 요청)

이들은 추석 전에 인권위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인권위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자, 지난 23일부터 인권위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며 시급함을 촉구했다. 또한 상임위 전날인 24일에는 인권위를 점거하고 1박 농성을 했다. 긴급구제 진정을 한 송용헌 씨도 상임위가 열리는 사무실 앞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인권위 상임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회의실 앞에서 피케팅하는 송용헌 씨. 그의 곁에 활동지원사가 있다. 연령 제한을 의미하는 65가 커다랗게 붙어있다. 사진 강혜민
 

상임위가 열리는 25일 오전, 인권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장연 소속 활동가들은 오전 8시경부터 인권위 정문, 상임위가 열리는 1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 14층 회의실 앞 등에서 피케팅을 했다. 인권위 벽면에는 “65세 얼마 안 남았어요. 도와주세요.”, “65세면 장애인은 무조건 시설에 가란 거냐?”, “탈시설 지지한다면서 활동지원 연령제한 긴급구제 거부하는 인권위는 각성하라”, “65세 이후에도 활동보조 필요하다” 등 당사자들의 절박한 호소를 적은 종이가 가득 붙어 있었다. 이날 오전 14층 회의실 앞에서 피케팅을 하던 송용헌 씨도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버텨야죠. 잘 되겠죠”라며 말을 아꼈다.

이날 인권위의 긴급구제 결정은 11시 15분경 났다. 인권위 긴급구제 결정 소식을 접한 송용헌 씨는 모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송 씨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도 “여러분들 덕이다. 감사하다”며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50여 명의 사람에게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김용해 씨도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국회에서도 개정법이 통과되도록 최대한 노력하자”고 말했다.

인권위 긴급구제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65세 연령제한 피해 당사자 송용헌 씨와 김용해 씨가 모처럼 미소짓고 있다. 사진 강혜민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인권위가 현명한 결정을 해서 다행이다”면서도 “긴급구제에 대해선 환영하지만 완전히 해결된 사안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남은 과제를 잘 풀어나가자고 했다.

앞으로 두 가지 문제가 남았다. 하나는 인권위의 긴급구제 권고를 복지부와 지자체(서울시, 부산시)가 수용할지 여부다. 복지부와 지자체가 이를 수용하지 않더라도 인권위로서는 강제할 방법이 없다. 또한, 인권위법 44조에 따르면 일반 권고의 경우, 권고받은 기관들은 90일 이내에 권고사항의 이행계획을 인권위에 알려야 하나 긴급구제는 그러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설령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에 한해서이기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따라서 또 하나의 남은 과제, 현재 국회에 발의된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 통과가 중요하다. 최 회장은 “활동지원은 중증장애인에게 생존의 문제다. 이 개정안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활동지원 연령제한 문제는 노인장기요양서비스와 직결된 문제여서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활동지원 중단 통고를 받았던 7월부터 두 달간 마음을 졸였던 송용헌 씨는 이날 우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송 씨는 ‘만 65세 연령제한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도 제기할 예정이다. 그의 활동지원서비스가 중단되는 오는 30일 오전 10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활동가들이 인권위 상임위원회 결정 관련해서 25일 오전,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