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동, ‘현저히 낮은 근로능력’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나
[교차적 관점으로 시설화 비판하기] 18 탈시설과 중증장애인 노동권
| /기획의도/ 18. 탈시설과 중증장애인 노동권: 정다운(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필자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전문에 따르면, ‘장애’의 개념은 ‘손상’ 그 자체가 아니라 손상을 지닌 사람들의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한다. 탈시설운동은 이처럼 ‘손상’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손상을 지닌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문제 삼았고,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촉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 변화를 만들어왔다.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한다’거나 자립생활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중증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로 탈시설하여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사업주가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아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시킬 수 있다. 중증장애인은 근로능력이 낮기 때문에 최저임금에서 적용 제외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장애’가 손상을 지닌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 간의 상호작용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중증장애인의 노동 능력이 너무 낮다고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현저히 낮은 근로능력’으로 여기는 사회, 즉, 비장애인의 생산성을 기준으로 중증장애인의 생산성을 평가하여 최저임금에서 적용 제외시키는 것을 문제 삼아야 한다.
2017년 11월 21일부터 2018년 2월 13일까지 85일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점거했던 ‘중증장애인 노동권 투쟁’은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어렵게 만드는 ‘환경적인 장벽’에 주목하며 국가의 역할을 정책으로 제안했다. 투쟁 결과로 고용노동부·전문가·장애계가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 개 도입을 위한 TF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개편을 위한 TF, 이렇게 총 2개의 TF를 구성하여 정책과 예산을 협의한 바 있다.
이 중에서도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개편을 위한 TF(아래 최저임금TF)’는 10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고,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는 TF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최저임금 적용제외 장애인 노동자 지원 방안’ 발표를 준비 중이다. 최저임금TF의 취지대로라면 최저임금에서 적용 제외된 장애인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기 위해 최저임금법 제7조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이 담겨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준비한 ‘최저임금 적용제외 장애인 노동자 지원 방안’은 직업재활시설 지원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직업재활시설이란, 보호고용으로서 일반 작업환경에서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특별히 준비된 작업환경에서 직업훈련을 받는 시설을 말한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의 85%가 직업재활시설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직업재활시설을 지원하면 그곳에서 근무하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노동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주지하듯 시설을 지원하는 방안은 시설의 규모만 키울 뿐 시설 안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보호고용→일반고용으로의 전이가 불가능한 근본적인 이유
직업재활시설의 설립 취지는 중증장애인이 보호고용(중증장애인만 일하는 시설)을 통해 직업 훈련을 받고 일반고용(개방된 노동시장)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직업재활시설의 정체성은 주간보호시설인지, 직업훈련소인지, 사업장인지 혼재된 상태로 기능하고 있다. 우선 직업재활시설 안에서 생산성이 가장 낮다고 평가되는 중증장애인들은 당연히 개방된 노동시장으로 전이되기 어렵고, 대부분은 낮 시간 동안 갈 데가 없어서 직업재활시설에 머무르게 된다. 반면, 생산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사람들 역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함에도 직업재활시설에 머무르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다른 중증장애인에 비해 작업속도가 빨라서 대부분의 생산성을 이들이 담보하기에 직업재활시설 측에서 내보내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 직업재활시설에서는 작업속도가 빠를지라도 개방된 노동시장에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 다시 직업재활시설로 돌아오기도 한다.
따라서 장애인 노동자가 보호고용에서 일반고용으로 활발하게 전이되지 않은 이유는 직업재활시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정된 노동 능력 평가에 있다. 현재 직업재활시설들은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져 최저임금을 지급할만한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 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현재 생산성의 기준이 되는 ‘비장애인 기준의 노동’을 새롭게 정의하지 않는다면 중증장애인의 노동은 ‘현저히 낮은 근로능력’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직업재활시설은 이와 같이 ‘현저히 낮은 근로능력’을 지닌 중증장애인을 ‘훈련생’ 또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노동자’ 신분으로 유입하며 규모를 키워왔다. 이러한 보호작업장의 존재는 세계적인 흐름과도 맞지 않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보호작업장(직업재활시설의 일종)은 개방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있다’며, 보호작업장을 더는 지속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재정의한다는 것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중증장애인 구직자 A씨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A씨는 거주시설 내 보호작업장에서 십여 년을 일하다가 자립생활 체험홈에 입주하면서 보호작업장도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직장을 구하기 위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찾아간 A씨는 공단 직원으로부터 “당신 같은 중증장애인이 일할 곳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는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비장애인 중심의 노동만이 유일한 기준일 때, 중증장애인이 일할 곳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최저임금법 제7조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은 최저임금을 받을 만한 노동으로 오직 ‘비장애인의 생산성’만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존재들(특히 중증장애인)의 생산성과 노동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사실, 어떤 노동은 최저임금을 받을 만하고 어떤 노동은 적용 제외해도 괜찮다는 발상 자체가 최저임금제도 도입의 취지, 즉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서 최저임금을 규정하는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비장애인에 미달하는 노동’으로 정의되었던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야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중증장애인이 하고 있는 동료상담, 자조모임, 권익옹호활동, 인권교육활동, 문화예술활동과 같은 활동을 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공공일자리로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다시 정의한다는 것은 ‘노동’이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이윤과 생산성에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의 활동 그 자체를 가치 있게 평가하고 인정하는 투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