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진 끄트머리①] 24.6MB에 담긴 존재의 부재
탈시설 운동의 초석을 마련한 마로니에 8인, 고 황정용 님 별세
2019년에도 독자분들에게 장애계 소식을 보다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투쟁현장을 다녔습니다. 분이 넘치게도 ‘사진 끄트머리’라는 이름으로 올 한 해 담은 사진을 독자분들과 함께 톺아보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끄트머리는 사전적으로 끝이 되는 부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일의 실마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다시 ‘실마리’라는 단어를 보면 ‘감겨 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장을 이해하는 단서는 그 중심부가 아니라 헝클어진 실의 끝부분, 그러니까 현장의 가장자리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현장의 과정과 큰 관련 없이 눈길을 끄는 사소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다가갈 때면 간혹 현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에게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고는 했습니다. 이 경험을 발판삼아 보도사진 밖으로 밀려난 사진, 또는 다뤄졌더라도 관심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진을 모아 독자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날을 다시 떠올리며 독자분들의 마음과 현장이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2019년 6월 4일은 ‘석암재단 탈시설 투쟁 10주년’을 맞은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장애계는 여전히 서울시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이 부족하다며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폐쇄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석암투쟁 ‘마로니에 8인’ 가운데 한 분인 고(故) 황정용 님도 함께했습니다.
석암재단 탈시설 투쟁 10주년을 앞두고 마로니에 8인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마로니에 8인 모두를 뵐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특히나 말없이 투쟁현장을 지켜왔다던 고 황정용 님은 현장에서 더욱 알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고 황정용 님이 ‘탈시설 거주시설폐쇄법 제정 촉구 선언문’을 읽기 위해 마이크를 드는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누군지 깨달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날이 고 황정용 님과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선언문 낭독하는 마로니에 8인 가운데 누군가 돌아가실 거라고는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고 황정용 님은 그 날로부터 한 달이 조금 지난 7월 13일 새벽, 자택에서 향년 60세를 일기로 삶을 마쳤습니다.
그제야 살펴본 살아생전의 고 황정용 님의 모습은 겨우 24.6MB(메가바이트) 크기의 사진 한 장뿐이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관성적으로 보도사진에 꼭 들어갈 사진만 찍던 버릇 탓에 현장을 충실히 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사진 끄트머리’ 기획기사를 마련할 수 있던 계기와 닿아있는 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순간을 섣불리 판단하는 오만을 거두고 현장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과 사소해 보이는 순간에 집중하기 시작한 계기 말입니다. ‘매듭달’을 맞아 앞으로 그 순간을 5차례에 걸쳐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 그 여정을 함께해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