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진 끄트머리③] 바퀴의 권리

장애계가 1842일간 투쟁한 5호선 광화문역, 1동선으로 거듭나다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는 모든 시민의 권리”

2019-12-30     박승원 기자
2019년에도 독자분들에게 장애계 소식을 보다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투쟁현장 등을 다녔습니다. 분이 넘치게도 ‘사진 끄트머리’라는 이름으로 올 한 해 동안 담은 사진을 독자분들과 함께 톺아보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끄트머리는 사전적으로 끝이 되는 부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일의 실마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다시 실마리라는 단어를 보면 ‘감겨 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장을 이해하는 단서는 그 중심부가 아니라 헝클어진 실의 끝부분, 그러니까 현장의 가장자리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현장의 과정과 큰 관련 없이 눈길을 끄는 사소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다가갈 때면 간혹 현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에게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고는 했습니다. 이 경험을 발판삼아 보도사진 밖으로 밀려난 사진 또는 다뤄졌더라도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진을 모아 독자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날을 다시 떠올리며 독자분들의 마음과 현장이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진유경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가 발언하는 모습. 진 활동가에게 업힌 아기가 마이크에 관심을 보이자 진 활동가는 이를 막으며 크게 웃음 지어 보였다. 사진 박승원

9월 3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 드디어 엘리베이터 설치가 완공됐습니다. 그동안 엘리베이터가 없었느냐고요? 있기는 있었는데 모든 층에 엘리베이터가 닿지는 않았습니다. 광화문역은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지하 4층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그동안 엘리베이터는 지상에서 지하 2층까지만 운행되었습니다. 그런 탓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위험천만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야만 했죠.

하지만 장애계의 끈질긴 이동권 투쟁으로 광화문역사도 1동선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됐습니다. 1동선은 지상에서 지하철 승강장까지 하나의 동선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체계를 말합니다. 광화문역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장애계가 1842일동안 농성 투쟁을 한 곳이어서 더욱 의미 있습니다.

이날 장애계와 시민사회 단체는 광화문역에서 엘리베이터 완공을 환영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중에는 진유경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도 함께했습니다. 진 활동가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유아차를 끌고 다닌 지 어느덧 5년째입니다. 그는 “유아차를 끌고 나와보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였다”라면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 바퀴 달린 보조기구를 이용하는 노인, 유아차 모두 바퀴 달린 무언가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동권 보장은 특정 계층에 관한 배려가 아닌 모든 시민의 권리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장애인 활동가들이 지하철 그린라이트 투쟁을 하던 어느 날 누군가 “시민을 볼모로 붙잡으면 어떡해? 내 시간 물어내!”라며 쏘아붙인 걸 기억합니다. 마침 진 활동가의 아이가 마이크에 관심을 보입니다. 아이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