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 빌미로 삶의 터전·살림 뺏긴 홈리스들

홈리스행동 “국가가 코로나19와 민원 핑계로 홈리스 퇴거, 살림 빼앗아” 분노 유엔 주거권 보고관 “국가가 코로나19 상황에서 홈리스 주거 문제부터 해결해야”

2020-05-28     허현덕 기자
서울역 모습. 서울역 의자가 ‘접근금지’라고 적힌 테이프로 감겨 있으며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하여 의자사용을 중지합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김윤영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취약계층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자행되고 있는 가운데, 홈리스들도 힘겨운 현실을 알리며, 차별과 폭력을 멈추기를 촉구했다.

현재 홈리스들은 전 국민이 받는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지급에서 배제되고 있고, 공공역사에서의 퇴거, 노숙 물품 철거 등 노골적인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홈리스행동 등 4개 시민사회단체는 27일 성명을 발표하고, 무차별적인 차별과 폭력의 중단을 촉구했다.

- 코로나19 방역 빌미로 삶의 터전·살림 뺏긴 홈리스들

지난 6일 코레일부산·경남 본부는 심야에 부산역 내 대합실을 폐쇄했고, 이러한 조치는 계속 유지될 예정이다. 코레일은 ‘거리홈리스로 인한 민원과 코로나19 방역 강화 필요’에 의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에 홈리스행동은 “코로나19와 민원을 핑계로 홈리스 퇴거라는 숙원사업을 마무리한 것”이라며 “코레일은 사회공헌 전략에 맞춰 홈리스를 이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코레일은 노숙인 문제를 ‘단속’에서 ‘지원’ 체제로 전환하면서 ‘서울역 노숙인 아웃리치 팀’을 운영하더니 2011년에는 돌연 고객 불편과 철도안전법을 이유로 야간에 노숙인들이 잠자는 행위를 금지하는 ‘강제퇴거 조치’를 시행했다. 홈리스행동은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이 부산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라며 “이제는 홈리스가 철도 역사 안에 머물기만 해도 ‘티켓 있느냐?’, ‘기차 탈 거냐?’ 등의 단속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조치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주부터는 용산역 인근 철도부지에 위치한 노숙 텐트촌의 입구가 사전에 어떠한 설명도 없이 널빤지와 철판으로 막히는 일도 생겼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서울역에 노숙 금지를 이유로 구획선을 치고 홈리스의 차단도 막고 있다. 이는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이 나온 뒤 취해진 조치다.

거리에 있는 노숙 물품을 무분별하게 철거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청·철도 역무원과 경찰은 쓰레기차 두 대를 동원해 서울역 광장에 있는 거리홈리스 물품을 철거했다. 행정대집행이라는 명목이었지만, 행정대집행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계고를 해야 하고, 이후 기간을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항의하자 중구청 사회복지과 소속 직원은 ‘민원이 들어오면 2~3일 이내로 처리해야 해서 계고할 시간이 없었다’고 답변했다. 홈리스행동은 “해진 배낭과 구겨진 봉투에 꾸려진 짐이라도 홈리스들의 살림살이의 전부이고, 수많은 노고와 시간을 들여 모은 것”이라며 “쓰레기더미가 아니다”라고 분노했다.

- 유엔 주거권 보고관, “국가가 코로나19 상황에서 홈리스들 주거 문제부터 해결해야”

이런 문제를 예견이나 한 듯, 지난 4월 28일 유엔 주거권 보고관은 ‘코로나19 지침: 홈리스들에 대한 보호’를 발표했다. 내용의 골자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정’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방역 대책이 홈리스에는 맞지 않기에 국가에서 홈리스 주거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 주거권 보고관은 △호텔 모텔 객실을 확보해 거리 홈리스에게 즉시 숙소 제공 △감염병 유행 후 터전으로 복귀 등을 제시했다.

유엔 주거권 보고관은 특히 “코로나19로 통행금지 또는 봉쇄조치를 시행할 때 홈리스들을 범죄자 취급하거나 벌금·처벌을 하지 않도록 하고, 개인 물건 또는 거리 ‘청소’에 대한 불안감을 포함해 소외를 증가시키는 법 집행의 관행을 종료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홈리스의 야영지 강제퇴거 또는 철거를 중단하고 일부 야영지가 쉼터와 같은 숙소보다 더 안전할 수 있음을 인식할 것”을 당부했다.

홈리스행동은 “유엔 주거 보고관의 우려는 홈리스를 대하는 한국 공권력과 고스란히 맞아떨어지고 있다”며 “사적 공간을 한 뼘도 갖지 못한 이들을 상대로 한 폭력과 배제를 즉각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