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꽃은 향기로워도―‘김만리’로 산다는 것

재일한국인 2세, 중증장애인 예술가 김만리의 삶 엿볼 수 있는 책 출간

2020-08-05     허현덕 기자
책『꽃은 향기로워도―‘김만리’로 산다는 것』표지. 사진 도서출판 품
 

“레오타드(무용수가 착용하는 신축성이 좋은 의복)를 입은 순도 높은 영혼의 몸짓을 인화한 문장, 지금껏 이처럼 혁명적 무용담(舞踊談)은 없었다.”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 추천의 글 중에서)

일본 사회에서 중증장애인, 재일한국인, 장애인인권운동가이자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 『꽃은 향기로워도―‘김만리’로 산다는 것』(김만리 지음, 도서출판 품, 16,000원)이 출간됐다. 이 책은 이미 1996년 치쿠마쇼보 출판사에서 『삶의 시작(「生きることのはじま り)』으로 출간되었고, 24년이 지나 내용을 더해 한국어로 선보이게 됐다.

저자 김만리(金滿里)는 1953년 오사카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났다. 3세 때 소아마비로 중증장애를 얻었고, 만 7세부터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았다. 21세에 그는 활동지원 24시간을 받으며 지역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는데, 일본에서는 중증장애인의 첫 자립으로 기록되고 있다.

자립생활을 시작한 이후 김만리는 ‘푸른 잔디회’ 운동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의 운동은 일본 장애인복지제도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조직의 분열과 해체를 겪으면서 저자는 자신의 경계를 경험하게 된다. 자립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고뇌 끝에 그는 1983년 신체장애인으로 구성한 극단 ‘타이헨(態變)’을 만들었다. 타이헨의 창단공연 제목은 책의 한국어판 제목인 ‘꽃은 향기로워도’다. 진옥섭 이사장은 이 책의 백미로 극단 창단문과 첫 공연의 시놉시스를 꼽았다.

저자의 어머니 김홍주 씨는 조선창극사의 판소리 계보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이기도 하다. 1998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올린 ‘우리 어머니’는 현재까지도 공연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극단 타이헨에서 김만리는 70여 편이 넘는 작품의 대본를 쓰고 연출을 하고, 직접 무대에 서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92년 케냐에서의 첫 번째 해외공연을 시작으로 스위스, 영국, 독일, 한국 등에서 공연을 했고, 2001년부터 ‘김만리 신체예술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무대는 우생사상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여전히 버려지고 가둬지는 생명의 존엄을 예술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한국어 출간 후기’에서 “내가 언어를 쓰지 않고 장애인의 몸으로 표현해 결과적으로 전위예술이 될 수밖에 없는 무대를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세계적으로 다수자인 비장애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우생사상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거기에 철저히 반대하는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 외에는 없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