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걸 의심받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을까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2020-09-23     혜정

질병이 찾아왔을 때, 나는 한 단체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통증을 견디지 못하게 되자 6개월 병가를 냈고, 4개월을 꼬박 침대에서 보냈다. 당시 거주하던 곳은 5층짜리 빌라의 2층이었는데, 계단을 내려가지 못해 애인이 집으로 오기 전에는 외출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 4개월은 지옥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내 울음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 퍼지는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적막이 얼마나 공포스러운가를.

어느 날 아침, 매일 밤 나를 벌떡벌떡 일으키던 손목과 발목의 통증이 현저하게 가라앉았을 때, 다음 날 바로 사무실로 복귀하겠노라는 전화를 했다.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싶었다. 그것은 당시의 내게 절박한 무엇이었다.

내가 진행하던 사업 중에 르포 쓰기 강좌가 있었는데, 나는 내게 찾아온 몇 개월의 일상 변화를 글로 썼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글을 읽었는데, 쓸 때는 의외로 담담한 스스로에 놀라고도, 읽으려니 울음이 구역질처럼 올라와서 도저히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당시 내 상급자는 내 글을 가만히 듣고, 이런 말을 했다.

“그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문고리를 돌릴 수가 없어서 문을 열어놓고 살았다니. 저는 처음에 아프다는 말이 꾀병인 줄 알았거든요.”

그는 그런 말을 마치 농담처럼 꺼내놓았다. 몇몇 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노란색 배경에 파란색 마스크와 알약, 약통, 체온계가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 질병이 거짓이길 가장 바랐던 사람은 나였다

류머티즘이라는 질병은 처음부터 외관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이 질병은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나의 면역세포들이 관절세포를 공격하면서 관절에 계속적으로 염증을 일으킨다. 염증은 관절의 연골을 점차 파괴하고, 그 과정에서 고열과 극심한 통증이 발생한다. 류머티즘이라는 질병에 대한 선입견은 그 질병이 어떤 형태의 것인지도 모르면서 심하게 뒤틀리고 변형된 관절 사진을 통해 그저 무서운 질병이라는 이미지만 사람들에게 남겼다. 나에게 진단명을 전해 들은 나의 동료들도 그랬을 것이다.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나의 질병에 대한 정보와 나의 몸의 상태가 다르고, 그로 인해 나의 질병이 거짓일 수 있다는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것의 이름이 꾀병이건 다른 무엇이건 간에 누구보다 질병이 거짓이길 바랐던 사람은 나였다. 아침마다 거짓말처럼 질병 전의 몸으로 돌아가 있기를 바라면서 눈을 떴으니 말이다. 그러나 통증은 내게만 선명하고 생생한 상흔이었다.

질병 진단을 받을 당시 폭력적으로 대했던 애인과의 끔찍한 관계를 종료하고, 온 생에 지쳐있었을 때 나는 당시 일하던 곳에 퇴직하겠노라 말했다. 이후 2년을 꼬박 쉬면서 하루하루 일상을 유지하고 버티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치료에 쓰는 돈을 제외하고 극단적으로 소비를 하지 않고 살았지만, 간간이 들어오는 아르바이트 수입만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마침 당시 페미니즘 모임에서 만난 한 출판사의 발행인이 편집자 자리를 제안했다. 나는 선뜻 그 일을 하겠노라고 했다. 그 사람은 나의 질병도 질병의 양상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오전 시간을 쓰기 어려워, 정오부터 9시까지 일을 하기로 했다.

- 타인은 알 수 없는 나만의 지옥, 통증 

운동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렇듯 활동가들의 노동권보다는 희생과 열정을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육체적·심적 건강을 잃는다. 그 출판사에서 일하는 나의 상급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운동을 해 온 사람들이었고, 연장근무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주말 근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었고, 질병으로 인해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질병과 통증에 대해, 휴식이 없으면 악화되는 몸의 상태에 대해 수도 없이 설명했는데도, 시간이 지나자 그것들은 점차 잊혔다. 나는 매일같이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으며 집에 도착하면 새벽 1시가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휴식은커녕 잠을 자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런 일정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몸에 타격을 주었다.

어느 토요일, 눈을 뜨자 묵직한 무릎이 느껴졌다. 방 안에서 다리를 절면서 나갈 채비를 했다. 신발을 신고 한쪽 다리를 바닥에 끌면서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출근이 어렵겠다고 직감한 것은 인도에 있는 작은 턱을 마주하면서였다. 그 작은 턱을 내려가면서 통증 때문에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상태로 버스 계단을 오르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 일터에 전화를 했다. 나의 상태를 설명하자 상급자는 흔쾌히 그럼 오늘은 쉬라고 했다. 외출이 불가능하니,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버스정류장 근처의 슈퍼를 들렀다. 통증으로 평소엔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그 슈퍼까지 가는 데 40분이 소요되었다. 그 시간 동안 상급자는 여섯 통의 전화를 했다. 그 여섯 통의 전화마다 내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내 위치를 설명하면서 내가 의심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나는 정말 40분 동안 그 슈퍼에 도달하기 위해 통증이 심한 한쪽 다리를 조금씩 이동시키면서 걸었다. 그는 급기야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픈 거 맞아?”

통증은 타인이 확인할 수 없는 당사자만의 지옥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고, 나는 변형된 내 관절들을 보여주면서 그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킨다.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나의 지옥을 확인시켜야 할 때마다 나는 좀 비참해진다.

검은색 배경에 왼손 손바닥이 보이도록 놓여 있다. 손바닥에는 반창고가 붙여져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 아픈 것을 의심받지 않는 노동환경을 위하여

노동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픈 나의 상태를 충분히 설명하고 그들과 일을 시작하지만, 어느 사이 그런 것들은 잊힌다. 과로가 내 몸에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작용을 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질병이 진행되는지를 설명해도 그때뿐이다. 그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조금 더 악화한 내 신체를 보여주고 확인시켜야 한다.

건강한 신체가 표준으로 여겨지는 이 사회에서, 질병을 가진 몸은 어느 일터에서건 환영받지 못한다. 질병으로 인한 다양한 종류의 곤란들이 일상을 침범하는 것이 질병 10년 차인 내게도 익숙하지 못한데, 타인들은 오죽하랴. 듣고도 잊는다. 그런 어려움들이 일의 진행 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리거나, 업무량에 영향을 줄 때마다 나는 다시 앵무새처럼 나의 질병에 대한 설명을 재차 한다. 일부는 받아들여지지만, 일부는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의심받는다. 일터에서는 내 질병에 대해 매번 설명을 들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질병에 의해 업무에 영향을 받을 때마다 질병의 회복을 위해 애쓰라는 말들이 등장한다.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회복하지 못하는 나의 건강에 대한 소홀, 혹은 나태함 때문이라는 질책으로 쏟아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와 같은 질병을 가졌다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 이유로 나았다는 ‘누군가’가 등장한다. 류머티즘은 현재까지도 치료제가 없다. 그 ‘누군가’들이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지만, 누구나 그러한 운에 닿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늘 고스란히 개인 책임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들이 질책만을 위해 그런 말들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정말로 내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걱정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질병에서 회복되는 것이 불가능의 영역인 이들에게는 그런 말들이 또 하나의 강요로 다가오게 된다. 불가능한 회복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질병을 가진 몸에 맞는 업무의 양과 속도 조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상식적이지 않을까.

속도와 경쟁이 최고의 기준인 이 사회에서 질병을 가지지 않은 ‘건강한 몸’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량과 속도를 도무지 따라갈 수 없거니와, 질병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것이 나태함 때문이라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나는 늘 도태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리고 실제로 도태되었다. 질병을 만나기 전에는 활동가로, 글을 쓰는 노동자로 사는 것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질병인’이 된 이후 활동을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질병을 가진 몸은 한 가지만을 수행하기에도 벅찼다. 글을 쓰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거나 업무를 완료하는 시점이 점차 연장되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느낌이었다. 둘 중 어떤 것도 질병을 가진 몸에 맞는 속도와 업무량이 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결국 둘 중 하나는 말끔히 포기하는 쪽을 택해야 했다. 글을 쓰는 노동자로 살아온 나의 경력은 그렇게 단절되었다. 이 역시도 나의 자의적 선택이 아닌 일종의 사회적 강요였다.

아픈 몸이 노동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거나 불가능한 것들을 강요받으면서 좌절을 느끼지 않도록 우리의 노동환경은 변화해야 한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 2019, 동녘)’라는 책의 제목은 이런 면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질병인들이 질병 이전처럼 노동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환경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일하는 과정에서 질병을 증명하거나 질병 회복이 삶의 목표가 아님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다. 누구든 삶의 어느 시점에서 질병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질병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글쓴이 소개

혜정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