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국가와 사회의 바깥에서 에고이즘을 보다

김원영이 읽은, 책 『꽃은 향기로워도』 ①

2020-10-07     원영

지난 2010년 극단 타이헨 한국공연을 위해 한국에 온 김만리 씨. 사진 비마이너DB

김만리가 일본 오사카에서 조선의 명창 김홍주의 막내딸로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11명의 형제자매 가운데 유일하게 김만리의 아버지만이 다르다는 사실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머니 김홍주의 조선(국)적을 이어받았으나 그가 출생한 1953년 조선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다. 김만리에게는 처음부터 ‘가부장’(아버지-국가)이 없었던 셈이다.

세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병원생활을 할 때 김만리를 돌본 것은 언니였다. 집으로 돌아오자 언니와 오빠, 어머니 김홍주가 꾸려가는 가족의 일상과 조선의 예술가를 찾아오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예인들의 세계가 있었다. 동시에 그곳은 옛 식민지의 국민이 예술적 재능을 팔아 요정을 운영하며 생존하는, 날것의 현실이기도 했다. 국가(아버지)가 부재해도 어린 시절의 김만리에게는 예술과 돌봄과 역사가 뒤섞인 울타리로서의 사회가 존재했다. 하지만 1961년 장애인시설에 입소하자 어머니와 언니, 오빠들과도 멀어졌고, 위태롭던 ‘사회’마저 사라졌다.

김만리가 기억하는 1960년대 일본 장애인시설의 풍경은 끔찍하다. 겨울에도 난방이 되지 않고, 와상장애인은 욕창이 생긴 몸에 구더기가 끓다가 사망한다. 국가-법-사회-가족의 한계인 이 장소에서 김만리는 “인간의 에고이즘”을 봤다고 회고한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시설 직원조차 상처 입은 중증장애인을 방치하고, 옷을 갈아입느라 몇 시간이 걸리는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자원봉사자들 역시 장애인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보다는 그저 “젊은 비장애인들이 연애상대를 찾는” 기회나 엿보는 것 같다. 인간은 한계지점에 이르면 결국 자기중심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10대의 김만리는 그것(에고이즘)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부정적 본질에 맞서려 할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 부정적인 면이 가급적 발휘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 선택지에서는, 이를테면 시설에서 장애인 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훌륭한 교육과 치료기회를 제공하자는 주장 등이 나올 수 있다. 더 구조적인 분석과 급진성이 더해지면 시설이라는 ‘사회형식’을 아예 배제하자는 입장으로 나갈 수도 있다.

다른 선택지는, 인간의 에고이즘에 그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에고이즘은 우리의 본질이므로 ‘사랑과 정의’, 훌륭한 ‘문명’ 따위가 그것을 완전히 재구성할 수 없다. 인간의 본질은 언제나 새로운 한계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이 길은 냉소적이고 가혹해 보이지만 국가-법-사회의 바깥에 늘 존재했던 젊은 시절 김만리는 이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재일 조선인의 처지는 일본의 법률로는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다”, 144면).

책『꽃은 향기로워도』(김만리 지음, 도서출판 품) 표지. 사진 도서출판 품

장애인운동에 참여하면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아 비로소 자립생활에 성공하지만, 결국 장애인 운동판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 김만리가 활동보조인과 다투는 장면은 ‘에고이즘’에 대면한 국가-법-사회 없는 자의 의식을 생생히 보여준다. 스낵바에서 술을 마시다 밤이 늦자 자원봉사로 온 활동보조인은 그곳이 싫다며 먼저 집에 가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김만리는 (활동보조를 둘러싸고 여러 갈등이 누적되어 있었기도 했다) 그녀의 뺨을 친다. 이것은 심지어 경제적 대가도 받지 않고 온 활동보조인에 대한 착취와 폭력이 아닌가? 김만리는 말한다.

“이 경우에 보조인이 정말 가고 싶다면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술을 마시고 싶기 때문에 남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 순간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이의 욕구가 이기는 거다. 장애인이니 비장애인이니 그런 건 관계없다. (…) 그동안 내가 해왔던 운동과는 차원이 다른 발상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위치는 아무 관계없다. 사람은 체계적인 가치관에 따라 활동하지 않는다. 그 순간의 실감이나 충동이 더 크다. 이건 커다란 발견이었다.”(148면)

김만리는 1971년 특수학교 고등부 진학이 좌절되고 재가장애인으로 지낼 때 장애인운동단체 푸른잔디회를 만났다. “우리는 비장애인 문명을 부정한다”는 행동강령을 만든 바로 그 뇌성마비(CP) 장애인들의 운동단체 푸른잔디회는 CP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고, CP에게는 언어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CP의 언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CP에게서 “비장애아가 태어나는 것이 가장 불행하다”(129면)고도 했다. 국가와 사회 바깥에서 살았던 김만리는 “사랑과 정의”를 부정하는 이 급진적인 운동단체에 매료되어 열심히 활동하지만, 그 안에서도 결국 ‘에고이즘’을 확인하고 말았다. 위선적인 문명과 정의를 부정한 곳에서도 비장애인 활동보조인은 김만리를 혼자 두고 때때로 약속을 어겼고, CP장애인 활동가들은 김만리가 언어장애가 없는(즉 ‘비장애인의 언어를 쓰는’) 존재라서 그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가-아버지-법의 바깥에서 냉혹한 에고이즘에 맞서야 하지만 여전히 ‘문명’(언어)을 지녔다며 배척당한 존재. 그러나 정작 그 ‘문명어’(일본어)의 정체성은 지니지 못했던 존재. 결국 푸른잔디회 멤버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곳에서 전수받은 ‘길거리에서 죽을 각오로 살아가는’ 정신으로 무장하고 인간의 에고이즘에 맞서던 김만리는, 이제 스스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길을 선택한다. 무대였다.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비마이너 출범부터 함께 했지만 1년에 글 두 개 쓰는 게으른 칼럼니스트.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을 썼다. 법, 장애, 예술에 관심을 두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