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인에게는 너무 먼 의료계의 언어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2020-10-14     혜정

류머티즘 관절염에 치료약이 없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질병 진단을 받은 지 6년쯤 되던 해였다. 그때 나는 가끔 의사가 권하던 백만 원짜리 주사약이 내가 선택하지 못하는 선택지일 뿐, 치료약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의사가 저소득층에게 주사약 비용을 지원해주는 한 제약회사의 행사를 알려주었고 우여곡절 끝에 그 주사를 맞게 되었을 때, 나는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이 주사가 치료제가 맞는 거죠?”

의사가 대답했다.

“현재 류머티즘에는 치료제가 없어요. 그러나 이 주사는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다른 약들보다 높아요.”

나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의사는 단 한 번도 내게 그런 설명을 해준 적이 없었고, 치료 주사에 걸었던 한 가닥의 희망이 그날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의료계의 언어는 질병을 앓는 이들에게는 와 닿기 어려운 언어들이다. 사진 픽사베이

의사들은 대개 질병과 약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환자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질문을 싫어하는 의사들도 많다. 질병 n년차의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러한 고민으로 병원을 옮기고 싶어 하는 사연들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치료효과보다 질병으로 인한 호소를 상세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추천을 받는 병원들도 있다. 질문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원천봉쇄하는 의사들에 비해 내 담당의사는 상당히 온화한 타입의 사람이었다.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해주려고 노력했으며, 나의 경제적 사정을 알고 치료제 지원 행사가 있으면 알려주기도 했다. 통증이 극심해질 때마다 응급실로 와서 자신의 이름을 대고 입원을 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택지들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제안에는 비용이 발생하고, 나는 그 비용을 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모든 제안들을 선의로 했을 것이다. 내 가난의 정도와 그가 짐작하는 내 가난의 정도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가 치료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내게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리라. 아마도 이는 의료계의 관행일 것이다. 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는 것이 의사 입장에서는 불필요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리고 의사가 알려준 제약회사의 지원은 금액적인 측면에서 내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 달 100만 원이 넘는 주사비용과 주사를 맞기 위해 필요한 입원 비용은 50여만 원이었던데 비해 지원액은 고작 20여만 원에 불과했다. 그 비용을 지원받기 위해 나는 내 가난을 증명하려고 동사무소며 보건소를 며칠 동안 뛰어다녔다. 결국 그 비싼 약이 치료제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 주사를 맞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주사를 맞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처음 질병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질병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나 역시도 류머티즘에 대한 선입견으로 가득한 정보들을 접했고, 그로 인해 공포가 앞섰다. 그 질병을 인정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대학병원에는 늘 대기자가 많았고, 두 시간을 대기해 5분에서 10분여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 늘 녹초가 되었다. 갈 때마다 그간 지옥 같았던 일상의 통증들과 증상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의사에게 그 짧은 시간 동안 빠짐없이 이야기하려고 노력했지만 의사는 내가 기대하는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의사는 통증에 대한 내 호소에 따라 약의 용량을 점점 더 높여주었는데, 통증이 심할 때는 그 약으로도 통증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은 하루 중 다섯 시간 정도 통증을 줄여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체중은 줄어들었고, 얼굴은 눈에 띄게 부었다. 통증으로 인한 불면을 호소하자 의사는 추가로 수면제를 지어주었다. 스테로이드제를 최대치로 쓰면서 얼굴 부종과 소화불량 등의 부작용에 시달렸다. 류머티즘은 내 몸의 면역체계가 내 몸을 공격하는 면역질환의 일종이어서,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했다. 내가 복용하는 면역억제제는 항암제의 일종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항암제인 그 약을 먹기 시작하자 두통과 구역감이 생겼다. 자주 목도 말라왔다. 수면제는 가끔 기억을 앗아갔다. 수면제를 먹은 직후의 기억들이 자주 소멸되었다. 나는 약의 작용과 부작용을 설명하는 사이트들에 자주 접속했다. 그리고 진료 때마다 약의 부작용에 대해 의사에게 반복적으로 물었다. 의사는 그럴 때마다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 부인했다. 그렇다면 내가 겪은 것들은 다 무엇이냐고, 의사에게 따져 물었지만 의사는 보고된 부작용은 아니지만 정 힘들면 약을 다른 약으로 바꿔주겠다는 말을 하면서 또 다른 약의 보고된 부작용을 하나하나 읊어주었다. 나는 약을 바꾸지 않았다.

입원치료는 입원비 등 발생하는 비용이 감당되지 않아 내게는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사진 픽사베이

류머티즘 관절염은 장애진단이 가능한 질병이다. 또한 진료비의 부담이 높고 장기간 치료가 요구되는 질병이어서 건강보험 급여 본인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산정특례’라는 제도에 해당되는 질병이기도 하다. 산정특례자가 되면, 치료비의 10%만 내고도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류머티즘 관절염에 대한 이 나라의 진단법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진단법은 미국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류머티즘 인자를 중심으로 양성과 음성으로 나눈다. 류머티즘 인자가 있는 양성 환자들은 전체의 80%이며, 나머지 20%는 인자가 없는 음성 환자들이다. 그러나 양성과 음성 모두 병의 증상이나 진행 과정, 속도 등은 동일하다. 그럼에도 양성 환자들은 산정특례 대상자로서 의료비를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지만, 음성 환자들은 해당사항이 없다. 담당의사는 이와 같은 진단법이 잘못되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런데도 왜 바뀌지 않느냐고 너무 부당하다고 이야기했더니 의사는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머티즘 학회에서는 십여 년 전부터 이와 같은 진단법을 바꾸려 하고 있지만, 시스템이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기다리면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들은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말도 안 되는 진단 기준과 지원체제는 바뀌지 않았다. 질병은 한 가지인데 의료계의 일방적인 기준으로 인해 국가가 이 질병에 대해 인지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나는 반복된 성폭력으로 인한 스트레스 경험이 질병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믿는다. 류머티즘 환우 카페에도 극심한 스트레스 경험 이후 발병했다는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읽었다. 질병 당시 나는 성폭력과 데이트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고, 이후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2년여간 겪었다. 하지만 류머티즘은 공식적으로 원인이 불명확한 질병이다. 나는 질병의 원인을 추측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진술을 접했지만, 정작 의료계의 이 질병의 ‘원인 없음’에 여성들의 경험에 대한 진술은 없다.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그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 경험이 여성들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여성 질환자가 남성 질환자의 세 배이다. 면역질환이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여성이 겪는 차별이나 폭력 등의 경험을 중심으로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내 몸과 내 질병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내 경험이 의료계 안에 언어가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해석되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내 신체에 생긴 질병을 규정하고, 그 질병의 치료과정까지 통제하는 것 모두 의료기관이 맡는다. 환자의 위치에 놓이자 나의 경험이나 고통이 매뉴얼 바깥에 있는 것이라며 모두 무시되었다. 내가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는 것들임에도 그랬다. 따라서 질병이 생긴 나의 몸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의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정보와 권력의 불균형 때문이다. 왜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몸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하는가. 질병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질병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 자신에게 통제권이 주어질 수는 없는가. 이에 대한 고민을 우리는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 소개

혜정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