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서사 말하기가 ‘질병권 운동’이 될 수 있을까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2020-11-18     다리아
책상 위에 펜을 잡고 있는 손과 종이가 놓여 있는 모습. 사진 픽사베이.

- 내 경험에 사회적 의미가 있을까

지난날을 돌아본다는 건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지난 경험을 글로 정리하는 동안 경험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른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물음표를 던지고, 의심하기도 한다.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질병 서사를 쓰기로 했을 때,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내 경험을 쓰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고를 써서 모임에 공유하면 다같이 합평했다. 내 글을 두고는 경험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드러내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매번 받고는 했다. 이런 반응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의아했다. 내 경험은 그저 내 것에서 끝났다고 여겼지, 내가 겪은 일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알았다. 경험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 첫 글은 난소낭종 수술 경험과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관한 글이었다. 10여 년 전 난소에 있는 혹을 없애는 수술을 할 때, 나보다는 내가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주변의 반응 그리고 결혼 뒤 출산의 압박에 관해 썼다. 나는 이런 경험을 내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나아가면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것은 이 사회의 관점이고, 가부장적 시선이 담긴 문제다. 10대 때부터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아 애국하라’는 말을 들었고, 결혼한 뒤부터 ‘아이가 있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정부는 저출생 정책으로 가임기 여성 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만들었다. 글을 쓰면서 이런 사실들을 떠올렸고, 처음으로 내 경험을 사회적 맥락과 연결해 의미화했다.

그러나 첫 글 이후에도 내 경험을 사회적 맥락 안에 녹여내고 타인과의 관계에까지 의미를 확장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웠다. 내 질병 서사를 사회와 연결하고, 의미화하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읽고, 사유해야 한다. 그러나 공부도, 사유도 부족했다. 마감에 맞추면서도 글은 늘 아쉬웠다.

- 질병에 대한 수치와 원망, 내 몫이 아닌 감정들

그럼에도 진전은 있었다.

질병과 노동에 관한 글을 쓰려고 나의 노동환경을 돌이켜보다 장거리 출퇴근이 떠올랐다. 10년 넘게 매일 길에서 3~4시간을 쓰면서도, 이전에는 장거리 출퇴근이 건강에 영향을 크게 미쳤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늘 잠이 부족했고, 퇴근하고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니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각에 저녁밥을 먹어야 했으며, 운동할 수도, 몸을 돌볼 여유도 없었다. 늘 피곤한 것이 집과 회사가 멀기 때문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았지만, 이를 내 안에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개념화하지는 못했다. 사람들 사이에 껴있느라 움직일 수도 없는 지하철 안에서, 서울에 살지 못하는 내 처지와 내 가난을 원망하고 우울해하곤 했다.

장거리 출퇴근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 짐작은 너무나 사실이었다. 글을 준비하면서 장거리 출퇴근이 수명을 줄이고,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높이고, 삶의 질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들을 찾았다. 사실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이 그 증거고 사례니까. 게다가 통근 시간이 길수록 소득이 적다는 통계도 있다. 나는 더 이상 장거리 출퇴근의 원인을 나의 가난 탓으로 돌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 대부분의 고통이 그렇듯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검은 배경에 여러 색의 사람 모양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치질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왜 치질을 수치스러워할까’에 관한 고민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치질 연고를 사는 것조차 왜 그렇게 어려울까. 부끄러워하는 것은 나인데도 나조차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대부분 사람이 치질을 드러내서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 인식이 이러니 나도 모르게 치질은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학습되었을까.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의심한다. 질병 서사를 쓰지 않았다면, 치질을 포함한 어떤 질병들을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인식하는 것에 관해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에서 글을 찾아 읽었다. 치질에 걸리지 않기 위한 관리법과 수치심을 극복하고 병원에 가라는 조언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나는 치질을 수치스럽게 여길 이유는 없으며 그러니 수치심을 극복할 필요도 없다는 답을 듣고 싶었다. 질병 그리고 아픈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너무도 절실함을 깨달았다.

- 나는 더 이상 내 몸을 비난하지 않는다

자신의 질병 서사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16년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의 시민교실에서 열렸던 “질병과 함께 춤을” 워크숍에 참여했었다. 그때 질병의 개인적 책임만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삭제시키는 ‘질병의 개인화’를 지적하는 내용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내 질병 서사를 돌아보기 전까지는 내 경험을 개인적인 것으로만 여겼다. 질병 서사를 정리하면서야 비로소 내 경험을 사회적으로 의미화하게 되었다. 비록 충분한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는 이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조한진희 작가는 우리 사회에 아픈 몸으로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자주 강조한다. 이는 질병권(疾病權) 운동의 핵심이다. 조한진희 작가는 “건강 중심 사회에서는 아픈 몸을 건강을 위한 임시 상태로만 보며, 최선을 다해 건강해져야 한다는 의무만을 부과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반해 질병권은 아플 권리를 의미하는 개념으로서, “질병을 온전히 겪을 수 있도록 시간과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에 더해 “우리 사회 건강의 기준을 의심해야 하고, 단일한 표준의 몸은 없으며 n개의 몸이 표준이 되어야 하며, 아픈 몸이 우리 사회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381쪽). 그는 우리 사회를 ‘건강중심사회’이자 ‘건강강박사회’라고 규정하며, ‘건강할 권리’에서 ‘잘 아플 권리’로 중심이 바뀌고, 질병권을 보편화하기 위한 운동의 시작이 바로 아픈 이들의 서사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를 바꾸는 운동은 소명을 가진 이들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내게 운동은 퍽 거창한 이미지다. 내 질병 경험을 드러내고, 의미화하는 것이 질병권 운동이 될 수 있을까? 내 질병 서사를 쓰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이 작업이 세상과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경험을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치유하는 개인적 차원으로만 여겼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하는 일은 특별하고 멋진 일이지만,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주제넘은 일 같았다.

아픈 몸으로 일을 하고, 일상을 사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면서 변한 것은 나 자신이다. 건강하지 못한 몸을 비난하지 않는다. 나의 노동과 건강에 얽힌 사회적 맥락을 읽으려고 한다. 건강해야 한다는 압박을 성찰한다. 이런 영향일까. 남편도 달라졌다.

- 우리 집까지 스며든 작은 변화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책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를 읽다가 내가 외음부통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외음부통이라는 질병이 있는지 몰랐다. 성교통이 심해서 성생활에 곤욕을 겪고 있었다. 책에 나온 것처럼 대부분 섹스를 할 때 통증이 있으면 심리 문제일 것이라고 여긴다. 섹스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거나 윤활제를 써보라고 조언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 또한 심리 문제인 줄 알고 상담을 받아야 하나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남편에게는 늘 미안함과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아내가 아파서 성생활을 하지 못하자 아내를 떠나는 남편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렇게 결혼 생활 내내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안고 살다가 ‘외음부통’이라는 진짜 질병을 알게 되니, 날아갈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남편에게 외음부통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핸드폰으로 외음부통을 검색했다. 그는 외음부통의 진단과 치료에 관해 잠시 읽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픈 몸들의 질병 서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본 것이 생각나서, 나에게 질병에 관한 이런저런 조언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아서 아프다고 여기고, 그래서 나으려면 이것 먹어봐라, 저거 해라, 라고 조언한다. 남편은 아픈 사람을 대하는 이런 흔한 태도가 질병을 안고 사는 이들이 부딪히는 문제 가운데 하나임을 깨달았다. 그는 그저 내 마음이 가벼워진 것이 중요하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에게서 시작된 변화가 우리 집 거실까지 왔다.

제니퍼 브레아는 다큐멘터리 「UNREST」(2017년)를 만들어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고, 이 질병이 의료계와 사회에서 어떻게 소외되었는지 밝혔다. 그 자신도 만성피로증후군을 앓고 있다. 그는 말한다.

“아프기 전에 읽었던 책이나 봤던 모든 영화는 아프게 되면 치료법을 찾거나 찾다가 죽는다고 했어요. 늘 승리하거나 비극으로 끝난다고 했죠. 그러나 그건 제 이야기가 아니에요. 적어도 아직까지는요. …난 낫고 싶고 내일 눈을 뜨면 건강해지고 싶어요. 하지만 제 삶의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전 아직도 여기 있잖아요. 전 아직도 여기에 있어요.(I am still here.)”

질병 서사를 쓰고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아픈 몸으로 살고 있다는 외침이다. 내 경험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픈 몸들의 다양한 서사를 드러내고 의미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변화가 있다는 뜻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질병 경험을 드러내는 순간, 그리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순간 그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 아픈 몸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그 자체로 질병권 운동이다. 이 작고 느린 움직임에 함께 할 수 있어 벅차다.

* 글쓴이 소개 _ 다리아.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