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 신청 과정은 무기력이 학습되는 과정이었다
기초법 20년,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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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 시행 20년을 맞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평가하는 토론회가 17일,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의 주관으로 열렸습니다. 비마이너는 ‘기초법 20년을 평가하는 데 있어 수급자들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지점에 동의하며, 이날 발표된 수급 당사자들의 글을 당사자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 기초법 20년,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 ① 저는 ‘조건부 수급자’ 김성기입니다 ▶ ② 수급 신청 과정은 무기력이 학습되는 과정이었다 |
스물한 살, 첫 수급을 신청했다. 청소년기 시설을 거쳐 자라온 환경 탓에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학업을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하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지 멀쩡하면 수급자가 되기 어렵다는 말을 받고, 부양의무자와 관계 단절된 증빙서류를 위해 발 벗고 뛰어다녔다. 퇴소한 지 8년도 더 지난 시설을 찾아가 서류를 발급받아야 하는 사유를 읊고, 구청에 찾아가서도 읍소했다. 조건부수급이 책정됐고 60만 원 이내의 근로를 하거나, 자활근로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피 말렸던 세 달여의 기다림. 이따위 처지를 가족에게 알리고, 그럼에도 아무도 찾지 않는 처지는 더 원망스러웠다. 4시간 자며 모은 저축으로 공용 화장실의 쪽방을 벗어났듯이 모든 건 내 책임일 뿐이었다.
잠깐의 청년수급을 떨치고 도피하듯 스물두 살에 결혼했다. 주민센터에서 수급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썼지만 이내 수급의 연장선을 다시 타게 되었다. 시설수급이 책정되고, 주민센터를 다시 찾았다. 전 배우자에게 있던 주소지를 옮길 곳이 없어 지인네 집으로 옮기고서야,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등본열람금지를 신청했다. 몇몇 민원인들이 있는 사이에도, 아이 하품하는 소리가 다 들릴 만큼 조용했다. 아기띠를 하고 서 있는 나를 주민센터 가운데 두고 직원들끼리 우왕좌왕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가정폭력 피해자, 진단서, 신고내역서를 여러 차례 외치니, 민원인들이 곁눈질로 아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칭얼대는 아이와 그들 눈길 사이로 수치스러움과 동시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법정한부모 선정의 3달이 지나서야, 모자원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시설에서 퇴소 처리 후, 수급권을 재신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재신청하는데 관계단절 사유서 작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의 부양의무자까지 늘었으니 써야 하는 종이가 여러 장이다. 왜, 언제부터, 어떻게 단절되었는지 성실히 적었다. 곁눈질로 직원이 “간곡히 선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으라는 말과 함께 “취직해야 하는 거 아시죠?”라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읍소하는 것이었다.
그간 가정보육수당 20만 원으로 아이의 보험을 계속 유지해오던 중, 아이는 폐렴으로 첫 입원을 하게 됐다. 병실이 없어 1인실을 사용하다가 옮기니 병원비만 50만 원이 나왔다. 생계비이자 전 재산인 60만 원을 병원에 다 납부하고, 모자원에 진료영수증을 제출했더니 10만 원을 줬다. 모텔을 전전하던 상황에서도 아이의 보험을 유지했다. 이후로도 아이는 두 번을 더 입원했다. 와중에 허리디스크로 다리가 저렸지만, 내 진료는 받기 어려웠다. 의료비를 위해 신용카드를 만드니 그제야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게 되었으나 빚을 걱정해야 하는 이상한 논리가 되어버렸다.
작년 여름, 엘에이치(LH) 공고에서 법정한부모로 6세 미만의 자녀만 신청 가능, 또는 1순위라고 한 걸 보았다. 당시 아이 나이 4세로 선정이 됐지만, 보증금 마련이 어려워 오백만 원을 무이자로 상환하는 사업을 신청하고 버팀목전세자금대출도 껴서 이천 만 원의 보증금을 마련했다. 그렇게 월 임대료 44만 원과 보증금 상환 9만 원으로 총 주거유지비용만 매달 53만 원이다. 안정적인 주택을, 집다운 집을 얻었지만 주거급여를 받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주거급여와 법정한부모를 유지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받지 않는 근로를 찾아야 했다. 이사하기도 전에 신청해놓은 보육기관의 대기 순번은 결국 도래하지 않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처지와 관계없이 무조건적인 근로능력 판단으로 인해 수급비가 중단되지 않을까 하루가 초조했다. 결국 자리가 있는 사립유치원에 아이를 보내야 했는데 보육비만 30만 원이었다. 저소득층 유아학비 1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법정한부모만 가능하다고 했다.
안정적인 근로조건의 뉴딜일자리를 찾았지만 마음 놓을 수 없었다. 근로시간 조정 가능, 200만 원 즈음의 임금, 2년 계약직이라지만 수급의 선 밖으로 밀려나는 건 안전장치도 없이 번지점프 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사지 멀쩡함을 수치스러움이 아닌, ‘일할 수 있는 자’라는 갈등과 갈증은 ‘일단 생계형 빚은 없으니까’ 도전하게 만들었다.
2020년 3월, 한 달여를 근무했다. 첫 월급이 손에 쥐어지기도 전에 소득신고로 주거급여가 탈락됐다. 결국 근로시간을 조정하여 주거급여 재신청을 앞두고 있던 즈음, 아이 아빠가 통장으로 50만 원을 보내왔다. ‘양육비’라는 것을 생애 처음 받아봤는데, 사적이전소득이란 것 때문에 또 탈락이란다. 1시간 단축한 근로계약서를 재작성했지만 20만 원의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170만 원가량 남는다. 주거유지비용 53만 원에 공과금 10만 원을 포함하면 총 63만 원의 주거비가 든다. 유아학비 탈락으로 인한 30만 원의 보육비, 아이 보험 6만 원, 통신비 10만 원, 식비와 생필품비 포함 40만 원, 교통비 8만 원, 회사 식비 3만 원…. 그렇게 하고 남은 10만 원의 비상금이 매월 나의 재산이다.
당사자로서 기초보장제도가 개선되길 간절히 바라며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첫째, 시설에서 지내 온 입소사실확인서 자체가 부양의무자가 부양 의무를 하지 않은 관계단절사유임을 보여주는 정확한 증빙서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주 구체적인 단절사유서를 수기로 작성하고, 우편까지 보내 관계단절을 확인하는 절차는 불필요하고도 당사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절차다. 반복적으로 낙인감이 되는 발언과 가난과 불쌍함을 몸소 증명하고, 읍소해야 하는 수급 절차는 수직적인 관계로, 무기력이 학습되는 과정이란 것을 매우 여러 차례 느꼈다.
둘째, 시설 수급에서 한부모로 책정된 후 모자원으로 이주했을 때, 다시 일반수급을 재신청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이 어려웠다. 그로 인해 긴급복지를 신청했지만 이후 수급비가 일부 삭감되어 지급되었는데, 나는 이런 내용을 안내받지 못했다.
셋째, 수급을 받더라도 비급여로 인해 의료비가 상당히 부담된다. 갑작스러운 의료비로 가정까지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장기적인 질병 외에도 의료수급이 아니더라도 진료받을 수 있도록 수급자 전용 ‘우체국 만 원의 행복 보험’이 잘 활용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주거급여도 개선되길 바란다. 나는 엘에이치매입임대주택에 살지만, 주거급여를 받아도 15만 원 이상을 더 보태야 이자와 월세 납부가 가능하다. 나처럼 한부모가구는 일을 해도 서울살이엔 주거비가 늘 부담이다. 근로소득공제의 근본적인 선정기준이 올라갔으면 한다. 서울시에서는 한시적이지만 청년월세지원을 중위소득 120% 기준으로 보고 있다고 하니, 고려해주시길 바란다.
다섯째, 단계적 탈수급을 도모해야 한다. 탈빈곤 없는 탈수급은 빈곤의 형태만 교묘히 달라질 뿐이다. 가구 특성에 따라서 취약한 부분은 보충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으면 한다. 이행급여와 같은 방법으로 안전망이 있으면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산형성과 자립을 위해 꿈나래통장과 같은 방법이 잘 활용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보제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복지제도가 있다는 것을 널리 쉽게 알리는 것은 사람을 돕는 기본이다. 권리 보장의 책임을 갖는 공무원들이 세심히 살피며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권리를 보장받고 요구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으면 한다. 선 밖으로 밀려난 그들과, 제가 건강한 시민으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