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에 쪽방 대책은 없다
[홈리스추모제 기고②] 코로나19 속의 쪽방주민들
[편집자 주] 12월 21일은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입니다. 2020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14일부터 21일 동짓날까지를 ‘홈리스 추모주간’으로 정하고, 거리와 쪽방, 고시원 등지에서 살다 떠난 홈리스를 추모합니다. 또한, 추모를 넘어 사회적으로 예견된 죽음을 더는 용인하지 말 것을 사회에 촉구합니다. 특히나 올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삶의 벼랑에 내몰린 홈리스의 삶을 알리고, 홈리스의 인권과 복지지원 개선을 촉구하는 여섯 편의 글을 기고합니다. 이 글은 2020 홈리스추모제 연속 기고로 비마이너,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지난 2월 코로나19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주민들은 더욱 움츠러들었고 쪽방촌은 적막감마저 돌았다. 코로나19는 쪽방촌에 있던 관심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인근의 종교 단체에서 진행되던 도시락 나눔은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끊겨 중단되었고, 쪽방상담소를 통해 지급되던 물품들도 뜸해졌다. 이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부터 ‘불우한 이웃’을 챙기기 위한 마스크와 도시락을 다시 나눠주기 시작하더니 얼마 후 개인위생에 필요한 물품은 흔해져 버렸다.
-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 ‘고립’
코로나19가 확산될수록 언론에서는 제약이 많은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얘기한다. 이를테면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고립된 생활의 불편함 말이다. 하지만 쪽방은 이미 오래전부터 누군가는 스스로, 또 다른 누군가는 무언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들로 고립되어 있었다.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에 대한 관심은 민간 차원의 후원이 전부인 듯했고, 이 상황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주거나 기초생활수급 제도의 문제는 아무 해결이 되지 않았다. 원래 고립되어 있었기에 언론에서 말하는 ‘고립’이란 단어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러나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감염 확산과 함께 동자동사랑방의 활동 또한 많은 제약이 생겼다. 매주 있던 무료법률 상담과 주민들의 좁은 주거환경을 개선 시킬 수 있는, 쪽방에 선반 달아주는 사업을 할 수 없었고, 동자동 주민들에게 천 원에 점심을 제공해 드렸던 식도락도 코로나19로 잠시 문을 닫아야 했다. 무엇보다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는 제약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코로나19가 일상이 되면서 우리의 활동은 달라져야 했다. 더는 실내에서 식사를 할 수 없어 식도락은 도시락으로 대체해 나눠드리는 방식으로 운영을 변경했고, 선반 제작은 주민분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잠잠해지는 시기를 보아 작업해드렸다. 명의도용을 비롯한 크고 작은 법적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에게 필요한 법률상담 또한 영상통화를 이용해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때 동자동쪽방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그렇게 동자동도 아슬아슬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 공동화장실·공동주방 쓰는 쪽방에서 ‘자가격리’하라니?
추석 무렵이었다. 쪽방촌에도 우려했던 상황이 닥쳤다. 우리 쪽방촌 주민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다.
검사를 받은 주민들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를 통보받았지만, 공동화장실과 공동취사장을 사용해야 하며 주거가 밀집되어 있는 쪽방은 애초부터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담당자들은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무시한 것인지 격리에 필요한 아무 지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자가격리 통보를 받은 주민들은 필요한 것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이런 모습은 이 상황을 지켜봐야 했던 다른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불안이 되었다.
우리는 ‘감염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만이라도 자가격리할 수 있는 곳을 지원해 달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밀접접촉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용산구청은 철저한 감독하에 원칙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답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문제를 제기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밀접접촉자가 아니라는 것, 원칙대로 대처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원칙이라는 것이 쪽방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나 하는 얘기인지, 불 보듯 뻔한 위험을 두고도 어쩌면 이렇게 대응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쪽방의 열악한 주거환경, 게다가 쪽방주민 대부분이 기저질환을 앓고 있어 코로나19에 감염된다면 그 위험은 클 수밖에 없는 게 명확한 현실임에도 쪽방주민들은 이렇게 또 소외되었다.
- 코로나19로 공공병원 이용 어려워진 쪽방 주민들, 의료공백에 처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심각한 문제 중 또 다른 하나는 의료공백이다. 쪽방 주민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의료급여1종 지원을 받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비에 대한 많은 지원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민간병원에 비해 과잉진료 부담이 적은 공공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서 주민들은 입원 중 병원을 옮겨야 했고, 치료를 위한 입원이 어려워졌다. 오랜 기간 치료받으며 형성했던 의료진과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병원에 적응해야 한다는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아프더라도 다니던 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수 없으니 아픈 것을 참게 되었다. 받아 준다는 응급실에 가더라도 기존의 진료 기록이 없으니 검사를 다시 받으며 치료가 늦어지고, 비급여로 검사비 지원이 안 될까 봐 두려워해야 한다.
의료공백 문제는 쪽방 주민뿐만 아니라, 지정된 공공병원에서만 치료받을 수 있는 거리홈리스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코로나19 백신이 절실하듯,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는 공공의료, 공공병원이 책임져야 하는 의료공백에 대한 대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 여름엔 폭염에 들끓고 겨울엔 얼어버리는 쪽방
코로나19 속에 또다시 추위가 오고 있다. 한여름 쪽방은 40도의 폭염으로 들끓었고 한겨울 쪽방은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 추위를 달래야 한다.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는 이들은 그나마 운이 좋다며 안위해야 할 판이다.
매년 주거급여가 오르면 건물주들은 그에 맞춰 방세를 올린다. 주민들은 주거급여를 받기 전 십몇만 원의 방세를 지불할 때와 주거급여를 받아 27만 원의 방세를 내는 지금을 비교했을 때 주거환경이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한다.
2020년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은 마스크와 함께 자유롭지 못한 생활, 일상적인 것을 누리지 못하는 불행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쪽방 주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상적인 것들과는 무관하게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방에서 아픈 몸으로 고립되어 살아왔다. 코로나19로 쪽방 주민들의 걱정은 커졌지만 여전히 그들을 위한 대책은 없고, 더 이상 낡을 일 없이 멈춘 듯한 쪽방촌의 시간에 주민들의 시름은 늘어만 간다.
* 필자 소개 _ 박승민. '2020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에 함께하고 있는 ‘동자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