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해고, ‘부당하다’ 판결
신장장애로 부당해고 당한 강성운 씨, 복직 길 열리나 서울행정법원, ‘중앙노동위의 해고 합당 판결 잘못됐다’ 중앙노동위 아닌, 코리아와이드포항 항소 가능성 커
장애를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했던 강성운 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이겼다. 중앙노동위가 내린 ‘당사자의 장애가 버스안전 운행에 부적합하고, 따라서 채용거부는 합당하다’는 판단이 잘못됐다는 결정이다. 2년간의 싸움 끝에 부당해고라는 결정을 이끌어낸 강 씨는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14일 서울행정법원 제12부(홍순욱 부장판사)는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인 강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는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법원의 판결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강성운 씨는 ㈜코리아와이드포항 시내버스 운전사로 입사했으나, 신장장애를 이유로 부당해고 당했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에 강 씨는 지난해 6월 서울행정법원에 부당해고를 용인한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 서울행정법원, ‘중앙노동위의 해고 합당 판결’ 잘못됐다
강 씨는 지난 2019년 2월 ㈜코리아와이드포항의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입사했다. ㈜코리아와이드포항은 포항지역에 단 하나밖에 없는 시내버스 사업자로, 현재 400여 명의 운전기사가 일하고 있는 대형 운수업체다. 그런데 입사 4개월 후 사측은 돌연 강 씨에게 “(신장)장애인이니까 나가세요”라며 객관적 사유도 없이 채용취소를 통보했다. 서면도 아닌 구두 통보였다. 이에 강 씨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경북지방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자 복직 처리했다. 그러나 복직 4일 만에 ‘만성신부전과 정기적인 혈액투석은 시내버스 기사로 업무를 수행하기 부적합하다’며 내용증명을 보냈고, 같은 해 5월 10일 강 씨를 2차로 해고했다.
강 씨는 ㈜코리아와이드포항 입사 전 이미 관광버스 기사로 오랫동안 일했다. 현재도 일용직 관광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다. 혈액투석 일정은 미리 고지되는 배차계획에 따라 조정했고, 따라서 운전기사로 일하며 어떠한 업무적 차질도 없었다. 강 씨는 “업무강도로 치면 관광버스 운전이 훨씬 어렵다. 그에 비해 시내버스는 배차 시간도 정해져 있어서 일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강 씨는 경북지방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다시 제기했다. 중앙노동위에 재심신청까지 이뤄졌으나 모두 기각됐다. 중앙노동위는 ‘당사자의 장애가 버스안전 운행에 부적합하고, 따라서 채용거부는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행정법원은 오늘, 중앙노동위의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 “장애인차별금지법 입법 취지 확인한 판결”
원고 측 변호사들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를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원고 소송대리인 곽예람 법무법인 오월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고용관계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만약에 장애를 이유로 한 게 아니거나 혹은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측에서 증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라며 “이번 판결은 이러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입법 취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장애를 이유로 채용거절이나 부당해고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이어 “신장장애인처럼 내부장애로 인해 장애라는 인식이 떨어져 더욱 은밀하게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오늘 판결로 신장장애인을 비롯한 내부장애인 차별에 대한 문제인식을 제시한 진일보한 판결이다”라고 강조했다.
원고 소송대리인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장애가 아니라 차별이 문제다. 이 당연한 명제가 장애인노동자에게는 아직도 울분을 토하며 사회에서 법정에서 토해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라며 “사측에서는 차별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더욱 은밀하고 공고하게 장애인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벌어지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송을 제기한 원고의 용기에 응원의 마음을 보탠다”고 말했다.
- 중앙노동위 아닌, 코리아와이드포항 항소 가능성 커
원고 측 변호사와 강 씨는 피고인 중앙노동위원장이 아닌 사측에서의 항소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코리아와이드포항은 피고보조참가인이다. 강 씨에 따르면 재판과 기자회견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측은 소송제기 후 줄곧 강 씨를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소송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강 씨는 “부당해고와 장애차별적 발언에 대해 사과하면 소송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법원까지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라며 “현재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관광버스 회사에까지 나를 채용하지 말라고 압박했다”고 토로했다.
사측은 강 씨에게 줄곧 노골적인 차별발언을 해왔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라고 발뺌해왔다. 강 씨는 “재판·소송 과정에서 회사에서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을 해줘 감사하다”라며 “버스업계의 잘못된 관행(부당해고)이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승헌 장추련 활동가는 “버스회사는 법의 판결을 엄중히 받아 1심을 수용하길 바란다”라며 “항소 시에는 더 많은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맞서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