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언어로 포장한 인종 프로파일링

[이슈페이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특별기고] 성별 감별 낙태 금지: 미국 프렌다 법안의 실제적 효과

2021-02-16     최다인

19세기 말까지 미국에서 낙태는 여성이 진통을 느끼기 이전까지 허용되곤 했다. 역사학자 레슬리 레간에 따르면, 1820년부터 1830년까지 낙태를 불법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의 주요 근거는 임신을 중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독성 물질이 오용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었다.[1] 19세기 중순부터 의사들은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인 권위를 확보하려고 낙태 불법화 운동에 앞장섰다. 산파와 동종요법을 사용하는 의료 제공자들을 제약하고 이들의 권위를 훼손했다. 증가하는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1868년, 낙태 불법화 운동의 선두에 있었던 호래이쇼 소토러는 “백인 개신교도 현지인의 아이들은 줄고 있는데, 백인 아닌 천주교 이민자 아이들은 많아지고 있으니 미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라며 원통해 했다.[2] 이민자나 외부인에 대한 두려움은 낙태를 종교적, 도덕성 문제로 치환했고, 결국 19세기 말 미국에서 낙태는 불법화되었다.

하지만 불법화가 모든 임신중지 행위를 막을 수는 없었고, ‘치료적 낙태’는 주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백인 중산층 이상 계급에서 접근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여성에 대한 순결 이데올로기 등 보수적 성적 규범들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몇몇 주들은 1970년부터 낙태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대법원이 여성을 지속하거나 지속하지 않을 권리는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프라이버시 권리 아래에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1973년 ‘Roe v Wade’ 판결은 미국 전체에서 낙태를 합법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는 그 후 계속 종교 세력, 보수 세력에게 공격받았고 프라이버시라는 틀에서 미국 주와 연방 정부의 공적 기금이 개인의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들이 통과되며 소득이 낮은 여성들은 낙태 합법화 이후에도 실질적으로 임신중지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특히 2007년에 연방 대법원의 판사 구성이 크게 변화하였으며, 부분적 출생 낙태 금지 법안(Partial Birth Abortion Ban Act)은 여성이 13주 후에 임신을 중단하는 것을 불법화했다. 그 후부터 낙태를 더욱더 불법화하려는 법안들이 계속해서 시도되며 미국에서 임신을 중지할 권리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3]

노란 바탕에 프렌다 법안을 의미하는 'PRENDA'가 쓰여 있다. 이미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제공

출산 이전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취지에서 제정된 프렌다 법안(PRENDA: Prenatal Nondiscrimination Act)은 2007년부터 매년 미국 의회 회기에 발의되었고, 2013~2014년에는 가장 많은 주가 발의한 법안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4] 프렌다 법안의 제안서에는 제일 먼저 “태아를 성별과 인종으로 차별하는 것을 금하는 목표”로 한다고 밝힌다.[5] 법안에는 “여성은 미국 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며 남성과 같은 인권과 시민 평등권이 있다”라고 쓰여 있지만, 사실상 이 법안의 목표는 임신중지의 접근성을 제한하는 것이다. 법안에는 “인권”, “시민의 평등권” 등은 여성과 시민권 운동에 쓰여 왔던 언어가 담겨 있지만, 모순적이게도 남녀 동일 임금이나 보편적인 의료 보험 접근권을 반대한다. 임신중지 범죄화를 위한 법을 추진하는 국회의원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이다.[6]

프렌다 법안은 성별과 인종에 대한 출산 전 감별이 있었거나, 감별이 있었다고 의심되는 경우에는 의사의 임신중지 시술을 불법화하는 법안이다. 법안은 여성과 시민 인권으로 포장하고 차별을 숨기며, 동양 여성들과 흑인 여성들이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프렌다 법안 아래에서 의사가 특정 성별이나 인종을 선호해서 환자가 낙태하는 것을 알면 시술을 진행할 수 없다. 만약 이를 위반한다면 환자 쪽에서 소송할 수 있고, 의사는 금고형부터 10년 이하의 징역형까지도 선고받을 수 있다.[7] 따라서 의사는 환자에게 낙태 동기에 대해서 질의할 법적 의무가 발생하며, 조금이라도 성별이나 인종에 대한 감별이 의심되면 임신중지를 의료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심”이라는 지점이다. 증거가 없어도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의사도 처벌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은 인종에 대한 프로파일링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문화적으로 아시아인들은 남자아이를 선호하고, 흑인 여성의 경우 자기 인종을 재생산하지 못하도록 억압을 받기 때문에 흑인 아이를 낙태하고자 한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것은 해당 집단들이 겪어온 사회적 억압의 결과이자 여성들이 경험한 아픔의 역사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억압과 아픔의 역사가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고, 해당 집단에 의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로 이용당하고 있다.[8] 이미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역사적으로 의료 시스템의 차별을 받아왔고, 의사에 대한 그들의 신뢰도도 낮기 때문에 의료 접근성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9] 나파프(NAPAWF: National Asian Pacific American Women’s Forum)의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인 이민자들의 경우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병원을 어려워하는 일이 많고, 의사에게 임신중지 동기를 심문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는 프렌다 법안에 따라 법적으로 심문을 받기 시작하면 의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프렌다 법안은 아시아 여성들과 흑인 여성들이 병원을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초래한다.[10]

프렌다 법안을 지지하는 국회의원들은 중국, 인도, 한국 이민자 가족이 남아를 선호한다는 경제학자 더글라스 에더런드 등의 연구를 인용해, 프렌다 법안이 여성의 인권을 지킨다고 포장한다.[11] 애리조나 주의 한 상원의원은 프렌다 법안을 지지하며 동양 이민자 여성이 자신들의 퇴보하는 전통을 미국에 가져와 미국의 자유의 기반을 약화시킨다고 하였다.[12] 이 의원의 성명이 보여주는 것처럼 프렌다 법안은 이민자 여성이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지 않는, 또는 그럴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관점에서 시작된다. 중국, 인도, 그리고 한국 이민자 가정이 아들을 선호한다는 결과를 보여준 에드런드의 연구는 벌써 20년이 지난 2000년도의 인구 조사에 바탕을 둔다. 시카고 대학교, 나파프,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의대에서 같이 쓴 2014년의 연구는 2007~2011년 미국 지역사회 설문을 사용해서 중국, 인도 그리고 한국 이민자 가정이 백인 가정보다 여자아이를 더 많이 낳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3]

굿마커 정책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낙태의 범죄화는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을 지속시킨다고 한다.[14] 법학자 도로시 로버츠가 보여준 것처럼, 유전적 스크리닝을 통해 만약 태아에게 병이 있음을 확인하고도 출산이나 임신의 지속을 감행하는 여성에 대해 미국 사회는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15] 프렌다 법안이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아니라는 것은 이런 모순 안에서 드러난다. 정자를 고르는 것과 유전 착상 전 진단을 받는 것은 합법화되어 있으며, 심지어 권장되기까지 한다. 인간의 가치는 성별, 인종, 질병, 장애와 같은 사회적 요소들로 판단되고, 법은 차별적인 출산과 죽음을 계속 장려한다. 이런 맥락에서 프렌다 법안은 여성 운동과 인권의 언어를 빌려 동양 여성들과 흑인 여성들의 몸을 통제하고, 평등법 아래 이들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제한하려는 시도이다. 재생산 정의 운동 학자 로레타 로스가 말한 것처럼, 인종, 성별, 섹슈얼리티, 능력 등이 재생산 정치의 형태를 만들며, 이를 간과하는 것은 특히 저소득층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낙태 접근성을 제한하는 길이 될 수 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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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eslie J. Reagon, When Abortion Was a Crime: Women, Medicine, and Law in the United States, 1867-1973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9.
[2] ibid, 12
[3] Planned Parenthood Federation of America Inc., Roe V. Wade: Its History and Impact (New York: Planned Parenthood Federation of America, 2014). Last modified January 2014, 1-3.
https://www.plannedparenthood.org/files/3013/9611/5870/Abortion_Roe_History.pdf
[4] NAPAWF, Defeating Sex-Selective Abortion Bans: Advocacy Toolkit (Washington, DC: NAPAWF, 2015). Accessed December 20, 2020,
https://static1.squarespace.com/static/5ad64e52ec4eb7f94e7bd82d/t/5d2c9f41b52c12000174da92/1563205455067/defeating-ssab-advocacy-toolkit.pdf, 4.
[5] U.S. Congress, House, Prenatal Nondiscrimination Act (PRENDA) of 2017, H.R. 147, 115th Congress, 1st Session, introduced in House January 3, 2017
https://www.congress.gov/bill/115th-congress/house-bill/147/text?r=28&s=1.
[6] NAPAWF, Defeating Sex-Selective Abortion Bans, 8.
[7] NAPAWF, Sex-Selective Abortion Ban Fact Sheet (Washington, DC: NAPAWF, 2020). Last modified August 6, 2020,
https://static1.squarespace.com/static/5ad64e52ec4eb7f94e7bd82d/t/5f2d67293c57ab090234ed66/1596811049786/Sex+Selective+Abortion+Bans+Factsheet+August+2020.pdf.
[8] Guttmacher Institute, Evidence You Can Use: Banning Abortions in Cases of Race or Sex Selection or Fetal Anomaly (New York: Guttmacher Institute, 2020). Accessed December 20, 2020
https://www.guttmacher.org/evidence-you-can-use/banning-abortions-cases-race-or-sex-selection-or-fetal-anomaly.
[9] Dorothy Roberts, Fatal Invention: How Science, Politics, and Big Business Re-create Race in the Twenty-first Century (New York: New Press, 2012), 53-56.
[10] NAPAWF, Defeating Sex-Selective Abortion Bans, 5.
[11] Brian Citro et al., Replacing Myths with Facts: Sex-Selective Abortion Laws in the United State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International Human Rights Clinic, NAPAWF, ANSIRH, 2014)
https://static1.squarespace.com/static/5ad64e52ec4eb7f94e7bd82d/t/5d2ca0d5cd54a90001b97595/1563205847373/replacing-myths-with-facts.pdf, 15.
[12] NAPAWF, Defeating Sex-Selective Abortion Bans, 4.
[13] Brian Citro et al., Replacing Myths with Facts, 18-19.
[14] Guttmacher Institute, Evidence You Can Use.
[15] Roberts, Fatal Invention, 220-222.
[16] Loretta Ross and Rickie Solinger, Reproductive Justice: An Introductio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62.

* 필자 소개 _ 최다인 연구활동가

* 비마이너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이 글을 게재합니다. 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