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D-1, 오세훈에 “차별버스 철폐하라” 장애인들 출근길 버스 점거

서울시,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약속 하지만 올해 저상버스 관련 예산 누락 오세훈 후보 “저상버스 조기도입하겠다” 애매한 공약 장애계 “조기도입 필요 없고 100% 도입 약속 지켜라”

2021-04-06     하민지 기자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버스와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었다. 박 이사장은 오세훈 후보를 향해 차별없는 장애인 이동권을 완전히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사진 하민지
버스와 자신을 쇠사슬로 묶은 박 이사장의 뒷모습. 사진 하민지

4·7 보궐선거를 하루 앞두고 장애계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향해 장애인 이동권 완전 보장을 촉구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는 8일 오전 8시,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 두 대를 점거하고, 오 후보가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수용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버스 타기 직접행동’을 진행했다.

서울시는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에 따르면, 서울시는 2025년까지 서울 시내에 저상버스를 100% 도입해야 한다. 또한 서울시가 세운 ‘제3차 서울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 따르면 올해 서울 시내버스의 75%가 저상버스로 바뀌어야 한다. 작년 기준 서울시 저상버스 도입률은 58%(4,180대)다. 서울시가 목표한 75%를 위해서는 22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2021년 서울시 본예산에 이 예산은 누락됐다.

오 후보는 이에 관해 ‘저상버스 조기도입’이라는 애매한 공약을 내건 상태다. 이 공약은 오 후보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2010년 6·2 지방선거 때도 내건 바 있다. ‘언제까지 몇 퍼센트를 도입하겠다’는 구체성이 떨어지는 공약을 11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들고나온 것이다.

이에 장애계는 오 후보를 향해 “저상버스 조기도입이 아니라 2025년까지 100% 도입 약속을 이행하라”라며 촉구하고 나섰다.

이형숙 공동대표가 '차별버스'를 멈춰 세우고 버스 기사에게 휠체어 이용자인 자신이 버스에 탈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일부 시민은 출근길에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이 대표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 대표 뒤로 비장애인 활동가와 시민, 경찰이 서 있다. 사진 하민지

장애계는 저상버스가 아닌 버스를 ‘차별버스’라고 이름 붙였다. 이형숙 2021 서울시장 보궐선거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정류장으로 ‘차별버스’가 오자, 서울시민을 향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이 버스를 탈 수 없다. 서울시민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호소했다. 한 시민이 “왜 우리의 출근길을 방해하냐”고 따져 묻자 이 공동대표는 “나도 출근하는 길인데 나는 버스 한 번 타려면 30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 공동대표는 버스 앞문에 올라타 점거한 후 “오십 평생 장애인으로 살면서 버스를 제대로 타 본 적이 없다. 더는 서울시를 용서할 수 없다. 이제는 저상버스 100% 도입 약속을 지켜 달라”라고 성토했다.

박 이사장이 점거한 버스에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약속하라’, ‘차별 없는 장애인 이동권 완전 보장! 마을버스 100% 저상버스 도입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버스와 자신의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이 공동대표와 다른 버스를 점거했다. 버스 앞문과 자신의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은 박 이사장은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 권리는 헌법적 권리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 시내버스 절반은 비장애인만 탈 수 있는 ‘차별버스’다. 이 버스는 더는 운행돼선 안 된다. 오 후보가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그대로 이행하겠다고 약속해 달라”라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오 후보의 ‘장애인 LPG 소비세 감면’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박 이사장은 “요금 조금 깎아준다는 건 구시대적인 정책이다. 돈 몇 푼 가지고 우리를 거지새끼로 만들지 말라. 우리가 원하는 건 모두가 평등하게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차별버스 철폐하고 누구나 버스 탈 수 있어야 평등한 사회다. 오 후보는 평등한 서울시를 위해 차별받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점거는 오전 8시에 시작해 9시 30분경 마무리됐다. 장애계는 당선이 유력한 오 후보가 저상버스 100% 도입을 약속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이규식 공동대표, 박경석 이사장, 이형숙 공동대표가 차별버스 앞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