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건물주 경향신문에 “경사로 설치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경향신문사 본관, 민주노총 입주한 좌측 출입구에 경사로 없어  장애인이 민주노총 가려면 ‘스파이 작전’하듯 엘리베이터 수차례 갈아타야 11년째 설치 미루다 문제제기 목소리 커지자 “대안 강구하겠다”

2021-04-19     이가연 기자
민주노총은 19일 오전 ‘경사로투쟁단’을 조직해 경향신문사 본관에 경사로 설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가 경향신문사 본관 계단 앞에서 경사로 설치를 요구하며 뽕망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 이가연

경향신문사 사옥에 입주해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이 일명 ‘경사로투쟁단’을 조직해, 건물주인 경향신문사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사무실을 가기 위한 출입구에는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민주노총 가려면? 경향신문사에 양해 구하며 엘리베이터 수차례 갈아타야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경향신문사 본관 출입구는 좌측과 우측으로 나뉘어 있으며, 좌측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입주사가, 우측은 경향신문사가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좌측 출입구에는 세 개의 계단만 있을 뿐 경사로가 없다. 

따라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민주노총 사무실을 방문하려면 경사로가 없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건물 우측에 있는 경향신문사에 양해를 구해 우측 출입구 뒤편에 있는 경사로를 통해 출입해야 한다. 그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좌측과 우측이 연결되는 7층에 내려 좌측으로 이동한 뒤, 다시 좌측 엘리베이터로 갈아타야만 민주노총 사무실로 진입할 수 있다. 

휠체어 이용자이기도 한 문애린 활동가는 해당 건물에 방문할 때마다 항상 어려움을 겪어 민주노총 측에 수차례 문제제기했다고 밝혔다. 

문 활동가는 “민주노총과 연대회의를 하러 종종 방문했는데, 비장애인과 달리 장애인의 경우 한 번에 올라갈 수 없다”라며 “7층에서 내린 뒤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중간 문을 지나야 하는데, 종종 잠겨있어서 경비원 분이 올라와서 카드로 열어야 했다. 또 어떨 때는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풀어달라고 요청하거나 비장애인이 1층까지 내려가서 엘리베이터를 다시 올려보내야 했다. 이 또한 다 안 되는 경우에는 결국 그냥 돌아간 적도 있다. 그 건물을 가려면 마음을 많이 비우고 가야 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건물에 제대로 출입할 수 없는 문제가 거듭 발생하자,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2월 오승재 전 민주노총 법률원 송무부장이 민주노총 사무실 복도에 붙인 내부 대자보. 사진 제공 민주노총

지난 2월, 오승재 전 민주노총 법률원 송무부장은 퇴사 전 경향신문사옥에 있는 민주노총 사무실 복도에 내부 대자보를 붙여 이 사안을 공론화했다. 

그는 대자보를 통해 “민주노총 산하에 장애인노동조합이 있지만, 민주노총은 장애인 의무고용률 미달 사업장이다. 장애인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아 매년 벌금을 내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민주노총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장애인 동지들이 마주해야 하는 문턱이야말로 민주노총의 장애인권감수성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장애인 동지뿐 아니라, 택배, 우편노동자 등이 짐과 수레를 번갈아 들고 옮겨야 한다”라며 민주노총 지도부와 사무총국이 경향신문사 본관 이동권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 민주노총에서는 총무실을 통해 임대인인 경향신문사에 경사로 설치를 공식적으로 요구했지만, 경향신문사에서는 건물 구조상 조치가 불가능하다며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민주노총은 전문가와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경사로 설치 여부를 확인해보자고 제안했지만, 경향신문사는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경향신문, 진보적 언론인데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는 소홀” 뿅망치 퍼포먼스

이에 민주노총에서는 ‘경사로투쟁단’을 조직해 19일 오전 8시 30분, 경향신문사 앞에서 경사로 설치를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대표가 참여해 경사로 없는 계단을 뽕망치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가 뿅망치를 들고 있고, 민주노총 활동가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는 “모든 건물에 대한 접근권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며, 이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과거에도 전장연에서 몇 차례 (경사로 설치를) 건의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시정되지 않았다. 이 건물에 방문할 때는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우회해서 가고 있었는데 이번기회에 확실하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함께 싸우자”라고 말했다. 

진보적 언론으로 알려져 있는 경향신문은 특집기사를 통해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문제를 다룰 정도지만, 정작 경향신문사가 건물주이자 관리 책임이 있는 사옥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에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민주노총이 11년 전 이 건물에 입주했을 때부터 경사로 설치를 요구했다. 그때마다 경향신문사는 ‘동의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방법을 연구하겠다’라고만 답했다. 소위 진보 언론인 경향신문에는 오늘도 차별과 배제를 비판하는 글이 실려있지만, 정작 경향신문사 건물 내 장애인 이동권은 보장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대변인은 “장애인 동지뿐만 아니라, 이 건물을 출입하는 수많은 노동자들도 온몸으로 무거운 택배와 짐을 들어 계단 세 개를 넘고 있다. 모든 노동자들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경사로가 설치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선민 민주노총 총무국장은 “모든 사람의 이동권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데, 왜 장애인은 ‘스파이 작전’하듯이 건물을 드나들어야 하나”라며 “경사로가 해결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입주사가 있는 건물에는 여성장애인 화장실도 없다. 장애인이 없어서 이 건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 건물에는 경사로도 없고, 장애인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장애인이 올 수 없다”라며 앞으로도 건물 내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요구를 할 것을 밝혔다. 

민주노총 ‘경사로투쟁단’이 ‘경향신문사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한편, 그동안 경향신문사는 공문을 통해 경사로를 설치할 수 없다고 공식적인 답변을 내놨으나, 이번 소식을 듣고 대안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향신문사 전략경영팀 관계자는 “처음 실무부서에서 경사로 설치가 안 된다고 한 모양이더라. 민주노총이 집회한다고 하자, 기획실에서 사장에 보고를 한 뒤 대안을 강구하기로 했다”라고 답했다. 이어 11년 전부터 경사로 설치를 요구했는데 이제야 논의가 진척된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견적을 알아본 건 지난주가 처음이다. 최근에 알게 된 문제라 그동안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사무실로 가는 1층 경향신문사 본관 건물 입구에는 경사로 없이 세 개의 계단만 있다.  사진 이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