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쪽방 소유주 “아름다운 민간개발”하겠다… 가능할까?
지난달 건물주·국민의힘 간담회 이후 동자동 쪽방주민 간담회 열려 쪽방주민 “공공개발 환영, 민간개발 못 믿는다” 정의당 “공공주택사업 확실히 챙기겠다”
지난달 14일, 동자동쪽방촌 토지·건물 소유주들이 국민의힘과 간담회를 열고 공공개발을 반대하고 나선 가운데, 쪽방주민이 공공개발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간담회를 열었다.
12일 오전 10시,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쪽방주민은 “주거권 빼앗기고 쫓겨나는 게 민간개발이다. 차질없이 공공주택사업을 시행하라”라고 촉구했다.
- 소유주 측 “따뜻하고 아름다운 민간개발 하겠다”?
지난 2월 5일, 정부의 동자동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되자마자 소유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쪽방건물이 서울역 근처 상업지구, 이른바 ‘황금 노른자땅’, ‘금싸라기땅’으로 불리는 곳에 있어서 공공개발이 아니라 민간개발을 할 경우 막대한 투기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유주들은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 지어라’, ‘제2의 용산참사 피바람 각오하라’ 등의 대형 현수막을 쪽방건물 곳곳에 붙여 가며 공공개발에 반대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현수막 내용이 변했다. 소유주 측은 ‘쪽방주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민간개발’을 내세우고 있다.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은 “현수막 내용이 변한 이후 건물주가 찾아와 민간개발하는 데 협조해 달라고 했다. ‘절충하자’, ‘상생하자’, ‘상호양보하자’라는 말을 한다”고 말했다.
소유주 측은 지난달 국민의힘과 연 간담회에서 ‘따뜻한 고밀민간개발’을 하겠다고 밝혔다. “민간개발로 쪽방촌분들에게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제공할 수 있다”, “공공주택특별법의 순환형 개발방식을 민간개발에서도 할 수 있다”, “쪽방주민에게 정부가 짓는 공공주택보다 2~3평 더 넓은 공공주택을 제공하겠다” 등을 주장했다.
- 쪽방주민 “주거권 빼앗기고 쫓겨난다는 게 민간개발 교훈”
소유주 측의 주장대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민간개발’은 가능할까? 그간 소유주 측이 쪽방주민에게 해온 일과 민간개발의 근거가 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전면철거 방식의 관행을 고려하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쪽방주민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소유주 측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소유주 측은 민간개발해서 쪽방주민에게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제공하겠다고 말하지만, 지금의 쪽방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으로 정비한 적이 거의 없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쪽방주민은 “건물에 비가 새서 방을 세 번 옮겼다. 그렇게 옮겨 다녔는데 다 비가 새는 상황이었다. 건물주한테 말했더니 ‘싫으면 이사 가지 왜 여기 있나’하는 말을 들었다. 나도 비 안 세는 집에 살고 싶지만 이사 갈 돈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호 이사장도 “주민은 별도의 화장실, 주방이 없고 심지어 창문도 없는 방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았다. 건물주는 월세 따박따박 받으면서도 건물에 투자를 하지 않아 방음도 안 되고, 보일러도 안 되는 곳이 많다. 얘기해도 시정되지 않아 그냥 사는 형편이다”라며 “건물주는 이제 와서 요구하는 게 뭐냐고 묻더라. 우리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계속 말해왔다”고 성토했다.
게다가 동자동쪽방촌 주민은 민간개발에 의한 강제퇴거를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인근에 있는 양동쪽방촌이 민간개발 되면서 쪽방주민이 속수무책으로 쫓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호 이사장은 “그간 민간개발로 인해 세 들어 산 주민이 어떻게 됐는지 똑똑히 봤다. 주거권 빼앗기고 쫓겨난다는 게 민간개발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건물주들은 용적률 700%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주장하는데 우리 주민을 위해 공공주택을 지을 수 있을까? 절대 안 믿는다”고 말했다.
- 전면철거 관행, 공공주택 비율 낮은 도시정비법… “공익사업 민간에 못 맡겨”
쪽방주민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민간개발은 그간 개발구역 전체를 동시에 전면철거하며 진행돼 왔다. 빠르게 개발을 완료해야 이익을 거두는 시점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에 원주민도 최대한 빨리 내쫓아야 한다. 공공개발은 이와 다르다. 순차적으로 철거하는 순환방식을 택한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공공주택을 짓는 동안 원주민은 임시주거에 거주한다. 공공주택이 완공되면 모든 주민이 한꺼번에 입주한다.
또한 민간개발의 근거가 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아래 도시정비법)을 보면 넓은 공공주택을 지어주겠다는 소유주 측의 주장도 믿기가 힘들다.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개발구역 내에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는 공공주택의 비율이 10~20%다. 서울시는 최소 15%라고 규정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민간개발은 분양을 통해 사업성을 확보하는 구조다. 과거 서울시 민간개발에서 공공임대주택을 15% 이상 지은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공공주택특별법에서는 공공주택 비율이 35% 이상이다. 동자동쪽방촌 공공개발 계획에서는 51.9%(1,250호)를 공공주택으로 제공하겠다고 발표된 상태다. 현재 쪽방주민은 개발구역 인근의 양동쪽방촌 주민과 고시원거주인까지 공공주택 입주민으로 포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발표된 1,250호도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 소유주 측은 어떤 방법으로 공공주택을 지어 쪽방주민에게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제공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결과적으로 민간에 공익사업을 맡기는 건 큰 한계가 있다. 이번 동자동쪽방촌 공공개발은 가난한 원주민을 남겨두지 않았던 민간개발을 성찰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김정호 이사장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랫동안 활동가와 쪽방주민이 공공주도 개발을 주장해 왔다. 이번 공공개발은 그에 대한 답이다. 쪽방에서 힘겹게 사는 주민 대다수는 이번 공공개발을 환영한다. 차질없이 진행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오늘 간담회에는 정의당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심상정 의원은 “건물주는 공공주택을 생색내기로 일부 공급하면서 용적률 700%를 얻어낸 다음 대량 민간분양으로 투기 불쏘시개를 제공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으려 한다”며 “동자동 주민 여러분이 두 발 뻗고 주무실 수 있도록 저와 정의당이 공공주택사업 확실히 챙기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