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고용승계’ 권고도 무시한 채 막 나가는 세종시
고용승계 요구 끝내 무시하고 노조원 응시자격 박탈 고용노동부가 고용승계 권고해도 모르쇠로 일관 되레 “책임 없는 사람들한테 책임지라 하지 말라”고 발언 장애계 및 노조 “고용승계 쟁취할 때까지 싸울 것”
세종시의 ‘보복행정’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세종도시교통공사가 장애인콜택시 ‘누리콜’ 운전원 신규 채용 기준을 장애계와 논의했던 것과 다르게 뒤바꾸면서 기존 운전원 22명 중 11명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세종시 장애인콜택시 공공운영을 촉구했던 누리콜 조합원 7명 중 4명도 실직위기자 11명에 포함되었다. 이 중 1명은 누리콜 지회장이자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인 강태훈 씨다. ‘사실상 보복성 해고’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노조 측에서 고용노동부에 질의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승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세종시청은 “고용노동부의 공식입장이라 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채용공고를 낸 세종도시교통공사에 문의하라”며 책임회피로 일관 중이다. 서진석 세종도시교통공사 사업기획팀장은 며칠째 ‘출장 중’이라며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강태훈 지회장이 운전원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지 5일째인 가운데, 세종시청과 세종도시교통공사를 규탄하는 결의대회가 24일 오후 2시 세종시청 단식농성장 앞에서 열렸다.
- 고용승계 요구하며 투쟁했는데 응시조차 못 하게 돼
장애계가 세종시에 누리콜 공공운영을 요구한 건 작년 9월부터다. 턱없이 부족한 누리콜 대수, 즉시콜 미운영, 운전원 성폭력 문제 등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면서 ‘세종시청이 누리콜을 공공운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간 누리콜은 세종시지체장애인협회가 9년간 민간위탁으로 운영을 독점해 왔다. 세종시는 민간에 운영을 맡긴 채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 장애계의 끈질긴 요구 끝에, 지난 3월 진행된 세종시 특별교통수단 위탁공모에서 세종도시교통공사가 선정되면서 공공운영의 첫걸음을 뗐다.
장애계의 주요한 요구 중 하나는 기존 운전원의 고용이 승계되는 것이다. 민간에서 공공으로 운영주체가 바뀔지라도 기존에 일하던 운전원이 실직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를 요구하는 천막농성이 24일을 기준으로 162일째를 맞았다.
그러나 결국 세종시는 고용승계를 이행하지 않았다. 지난 14일, 세종도시교통공사가 올린 채용공고에 따르면 7개월 근무할 비정규직 운전원을 채용하면서 ‘세종시 관내 택시운전자격 경력 또는 장애인콜택시 운전 경력을 합하여 3년 이상’의 경력기준을 명시해 놨다. 애초 노조와 이야기했던 채용기준은 ‘세종시 관내 택시운전자격 경력 3년 이상 또는 장애인콜택시 운전 경력자’였다. 그러나 공사가 갑자기 기준을 바꾸면서 택시 운전기사 경력 없이 장애인 콜택시 운전 경력만 2년 8개월인 강태훈 대표를 비롯한 노조원 4명은 응시조차 못하게 됐다. 고용승계를 이행하지 않은 걸 넘어서서 응시자격조차 박탈해 버린 것이다.
5일째 단식농성 중인 강태훈 누리콜 지회장은 “처음부터 공공운영과 고용승계를 같이 요구한 것은 이게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리콜이 공공운영돼야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고, 그래야 우리(운전원)의 고용안정도 보장된다. 그런 믿음으로 투쟁을 함께 했다”고 말했다.
김동중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도 “교통약자의 이동권은 노동자의 노동권과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려면 노동자의 안정된 노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종시는 끊임없이 장애인과 노동자를 분리하고 이간질하며 서로 대립하기를 원하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이상무 공공운수노조 지도위원 또한 “이춘희 세종시장과 배준석 세종도시교통공사 사장은 ‘장애인 이야기하는데 왜 노동자 이야기를 하나’라고 말했지만 장애인 차별 철폐와 노동권 보장 요구는 같은 운동이다. 이 시장과 배 사장의 인권 감수성이 바닥인 수준이다”라고 비판했다.
- 고용노동부 “고용안정 방안 모색하라”는데 세종시청 ‘못 들은 척’
불투명하던 고용승계가 결국 없던 일이 되자, 공공운수노조 측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고용노동부에 질의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하는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이 이번 사건에 적용이 되는지 여부를 물어봤다.
일단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은 공공이 업무를 민간에 위탁할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정부가 모집공고 및 선정, 계약체결, 재계약 및 계약해지 등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수탁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가이드라인은 공공이 업무를 민간에 맡길 때 적용된다. 세종시 누리콜은 공공이 업무를 민간에 맡겼다가 다시 공공으로 가져온 사례에 해당한다. 세종시청은 이를 근거 삼아, 민간위탁 시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이므로 공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가이드라인 적용이 제외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경희 고용노동부 공공기관노사관계과 주무관은 “공공에 사무를 위탁했다면 가이드라인 적용이 제외된다. 이 가이드라인은 민간위탁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도시교통공사는 경쟁입찰을 통해 수탁업체로 선정됐다. 이 경우에는 가이드라인 적용이 제외된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며 “노동자의 고용안정 방안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세종시청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받은 답변은 정부의 공식입장이라 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김영섭 세종시청 교통정책과 교통기획담당은 24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국민신문고는 답변을 적은 사람의 개인적 의견이다. 이건 고용노동부의 공식답변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확인결과 김영섭 교통기획담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경희 주무관은 같은 날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답변드린 내용은 고용노동부의 공식입장이 맞다. 국민신문고 답변은 개인적으로 써서 내보내지 않는다. 관련부서에서 검토한 후 답변을 드린다”고 답변했다.
세종시청은 노동부 답변을 오독한 채, 24일 오후 3시경 진행된 장애계 및 노조와의 면담에서마저 ‘노동부 답변을 왜 노조 측이 유리한 대로만 해석을 하느냐’며 고성을 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 장애계 및 공공운수노조 “보복행정에 굴복 안 해, 이길 때까지 투쟁할 것”
고용승계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는 세종시청은 운영주체인 세종도시교통공사에 문의하라며 ‘나 몰라라’하는 중이다. 김영섭 교통기획담당은 단식농성을 하는 강태훈 지회장을 향해서 “단식농성 하는 이유들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여러 기사에 나간 내용이 다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채용공고는 이미 났다. 이 상황에서 세종도시교통공사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시청은 책임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김 교통기획담당은 “채용공고를 시청이 낸 게 아닌데 왜 시청에 따지나. 책임이 없는 사람들한테 책임을 지라고 하면 어떡하나. 시청은 중재만 하는 거라고 이미 설명 다 드렸는데 모르는 것처럼 자꾸 얘기하는 게 의아하다”고 말했다.
중재를 어떻게 할 예정이냐는 물음에는 “중재는 할 수가 없다. 채용공고가 공식적으로 나간 상황에서 시청이 할 수 있는 일은 솔직히 없다”고 대답했다.
장애계와 노조는 결의대회에서 고용승계가 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강태훈 지회장은 “이춘희 시장은 우리가 약자라는 이유로 이렇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바꿔낼 때까지 단식농성을 할 것이다. 누구든 시청에 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잘못된 걸 바꿔야 한다고 말할 때 시청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전면투쟁을 결의했다. 정 부위원장은 “고용승계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위배되는 위법적 행정조치다. 채용공고를 즉각 무효화해야 한다. 치졸한 꼼수행정에 맞서 전면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동중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 또한 “노동자의 분노가 어디까지 가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