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중증장애철거민 활동지원사, 결국 검찰송치

활동가들, 유철 구리경찰서장 면담 요청했으나 묵살돼 구리경찰서 “활동가든 활동지원사든 불법행위 했다는 게 중요” 철거민이 버티는 것 자체가 유죄인 현행법 바뀌어야

2021-06-04     하민지 기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구리경찰서 앞에서 활동지원사 이 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거나 우의를 입은 모습. 사진 노들장애인야학

구리인창C구역 중증장애철거민 조상지 씨의 활동지원사 이 아무개 씨가 구속된 지 닷새 만에 결국 검찰에 송치됐다. 시민사회단체는 3일, 구리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철 구리경찰서 서장은 검찰 송치 전 면담에 응하라”라고 요구했으나 묵살됐다.

- 구리경찰서, “활동가든 활동지원사든 중요하지 않다”

시민사회단체는 구리경찰서가 이 씨를 조사하면서 조서에 허위사실을 썼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리경찰서가 작성한 ‘범죄사실의 요지’ 문건을 보면, 담당 형사는 이 씨를 “장애인연합 및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조직에서 활동하던 피의자”라고 표현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씨는 활동가가 아닌 뇌병변장애인이자 철거민인 조상지 씨의 활동지원사다.

시민사회단체는 3일 기자회견이 끝난 후 이 씨를 조사한 형사를 만나 조서에 허위사실을 쓴 것을 책임지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이런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검찰과 법원에 보내라고도 했다.

그러나 담당 형사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는 ‘활동가든 활동지원사든 중요하지 않다. 불법행위를 했다는 게 중요하다. 이 씨가 장애인연합 및 전철연에서 활동한다고 쓴 것에 대해 사과할 필요는 없다. 다툴 게 있으면 법원에서 다퉈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사회단체는 유철 구리경찰서 서장과의 면담 요청서를 제출했으나 구리경찰서는 ‘할 말이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한 채 면담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을 막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구리경찰서 경찰들이 정문 앞에서 활동가들의 진입을 막고 있다. 사진 옥바라지선교센터

- 활동지원사 구속은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몰이해

조상지 씨가 재학 중인 노들장애인야학의 천성호 교장은 “활동지원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니 이런 조서를 쓴 것 같다. 형사는 법원에서 다투라고 했지만 조서를 잘못 쓴 형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소연 전국철거민연합 조직국장 역시 “활동지원사는 구속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활동지원사의 구속은 중증장애인의 인권을 탄압하는 거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구리경찰서는 듣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중증장애인의 생명이 위협받는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조상지 씨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으니, 이 씨를 일단 석방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조 씨의 어머니 이해옥 씨는 1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상지가 호흡곤란 등 굉장히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성일장 여관 건물 옥상에 고립돼 있는 철거민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왼쪽이 조상지 씨의 어머니 이해옥 씨. 이해옥 씨는 성일장을 15년간 운영했다. 사진 하민지

- 철거민이 버티는 것 자체가 유죄인 현행법 바뀌어야

상황이 이런데 구리경찰서는 이 씨의 불법행위만을 제시하며 중증장애인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것을 방치하고 있다.

이 씨에게 적용된 죄목은 업무방해, 특수절도 등이다. 강제철거 중단을 촉구해 인창C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아래 조합)의 개발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죄가 적용됐다. 또한 쇠파이프 3개와 벽돌 2개 등 조합 측 재물을 절취했다며 특수절도죄가 적용됐다.

이 씨는 철거민 당사자인 조상지 씨의 철거투쟁을 지원한 것뿐이다. 조 씨가 철거민이 아니었으면 활동지원사로서 하지 않았을 일이다.

결국은 철거민이 범죄자가 되는 현행법이 문제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한국의 재개발 관련 법은 절차만 중요하게 여긴다. 절차를 지키면 합법이고, 절차를 어긴 채 쫓겨날 수 없다고 버티면 불법이 된다”며 “당장 생존권과 주거권을 빼앗긴 철거민은 버틸 수밖에 없는데 버티는 행위 자체가 불법인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 사무국장은 “버티는 게 불법이 아니라 대책 없이 쫓아내는 강제퇴거 행위가 불법이 돼야 한다”며 현행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일장 여관 건물에 철거민이 내건 현수막. ‘구리C구역 철대위! 단결, 생존권을 보장하라, 투쟁으로 쟁취하자! 투쟁’이라고 적혀 있다. 현수막 아래 외벽에는 빨간색으로 ‘투쟁, 인창조합 깨부수자’라고 쓰여 있다. 사진 하민지

- UN 사회권 규약 가입해 놓고 주거권 보장 않는 한국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2009년, UN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참사의 원인이 한국의 법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의 법이 철거민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아리란가 필레이 위원은 한국 법무부를 향해 “개발을 해도 재정착률이 20%밖에 되지 않는 한국 상황에선 강제퇴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강제퇴거를 막을 수 있는 지침을 입법하거나 입법이 될 때까지 강제퇴거를 연기할 수 있나”라고 물었다. 법무부는 “철거민 보상금 요구는 주거권과 관계없다. 경찰 또한 불법 점거농성을 진압한 거라 강제철거와 관계없다”고 답변했다.

법무부 입장은 철거현장을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한국은 1990년에 UN 사회권 규약에 가입한 나라다. 가입 당사국은 국민에게 주거권, 노동권, 건강권, 교육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12년이 됐지만 한국 국민이 주거권을 침해받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중증장애철거민의 활동지원사까지 구속하고, 중증장애철거민마저 철거현장에 방치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청구해 이 씨의 구속이 합당한지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이후에는 이 씨가 석방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