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편의시설 의무설치 ‘면적 기준’ 강화? 예외 규정 여전해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개정, 편의시설 의무설치 바닥면적 기준 ‘강화’ 장애계, “일괄적 예외 규정 마련, 장애인등편의법 취지 안 맞아” 비판
정부가 편의점, 식당 등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설치 기준을 강화했다. 그러나 ‘일괄적 예외’ 규정을 여전히 유지해 장애계는 “장애인등편의법 취지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개정, 편의시설 의무설치 바닥면적 기준 ‘강화’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는 7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7월 19일까지 입법 예고했다.
복지부는 “그동안 일정 규모 이상만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휠체어 이용 장애인 등의 소규모 공중이용시설 접근이 불가능함에 따른 장애계의 지속적인 개선요구를 반영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장애계는 장애인등편의법이 정작 장애인을 합법적으로 차별하는 법률이라고 지적해왔다. 장애인등편의법에서는 건축물에 경사로와 점자 표기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의무로 설치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동법 시행령에 따르면 시행일 이전에 지어진 건물과 바닥면적 300㎡(약 90평) 이하인 건물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2018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생활편의시설 중 98.8%가 바닥면적이 300㎡ 미만이다. 결국, 장애인 생활편의시설은 100곳 중 한두 곳에만 설치 의무가 있다.
이에 지난 4월 13일, 생활편의시설 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장애인등편의법 및 시행령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해당 법률의 ‘면적 기준’이 장애인을 합법적으로 차별하고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복지부는 면적 기준을 폐지하는 대신,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의 면적 기준을 강화했다. 이번 개정안은 오는 2022년 1월부터 신축·증축(별동 증축)·개축(전부 개축)·재축되는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적용된다.
슈퍼마켓·일용품 소매점은 바닥면적 기준이 현행 30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변경된다.
또한 현재 바닥면적 300㎡ 이상 휴게음식점·제과점에만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서 의무설치 되어야 했지만, 개정안에서는 50㎡ 이상 300㎡ 미만의 휴게음식점·제과점에도 의무화된다.
이용원·미용원의 현행 바닥면적 50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강화되고, 목욕장은 현행 500㎡ 이상에서 300㎡ 이상으로 조정된다.
의원·치과의원·한의원·조산소(산후조리원 포함)의 기준은 현행 500㎡ 이상에서 100㎡ 이상으로, 일반음식점은 현행 30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강화한다.
장애계, “일괄적 예외 규정 마련, 장애인등편의법 취지 안 맞아” 비판
복지부는 바닥면적 기준을 폐지하지 않고 예외를 두는 이유를 “소상공인 보호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개정안의 바닥면적 기준 50㎡는 약 15평으로 규모가 작지 않다. 면적이 좁아도 약국처럼 매출이 높은 곳도 많다. 즉, 일괄적인 면적 기준보다 소상공인의 조건에 맞는 편의시설 설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시설 접근권은 기본적인 권리인데, 일괄적인 예외 규정을 두면서 누군가를 의무에서 제외해 주고 있다. 이런 경우는 한국에만 있다”며 “복지부는 편의시설 지원책 없이 기준만 강화하고, 장애인의 권리가 확보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는 진정한 법의 취지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복지부의 이번 개정안은 지난 2017년 말, 국가인권위원회가 편의시설 의무설치 면적 기준을 50㎡로 개정할 것을 권고한 내용을 뒤늦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김 사무국장은 “복지부는 시민사회단체가 위헌소송을 제기하자, 몇 년 전 인권위가 권고한 기준을 이제야 부랴부랴 반영했다. 20년이나 된 법의 내용을 바꾸면서 제대로 된 검토도 하지 않았다”라며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과장은 지난 4월, 한 토론회 자리에서 면적 기준 폐지에 대해 ‘장애인에게는 권리지만, 시민에게는 규제’라며 권리제한이 당연하듯 발언했다. 이번 개정안은 장애인을 시민이 아닌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