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여성 홈리스의 존재

당사자가 말하는 노숙인복지법 제정 10년 ② 로즈마리

2021-10-13     로즈마리

[편집자 주]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노숙인복지법)’ 제정 10년을 맞아, 노숙인복지법을 평가하는 토론회가 지난 5일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비마이너는 노숙인복지법 평가하는 데 있어 당사자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이날 발표된 홈리스 당사자의 증언을 동의받고 게재합니다.

여성 홈리스는 가명을 쓰거나, 코로나 이전에도 마스크나 야구모자로 얼굴을 가려 알기도 힘듭니다. 같이 응급 구호방에서 자던 이도, 마트나 터미널같이 다른 곳에서 만나면 ‘자기는 노숙자가 아니다’라며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갑니다. 여성 홈리스로 지내는 것을 인생 가운데서 삭제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적장애, 정신질환, 트라우마가 있어 빗장을 잠그고 전혀 교류를 하지 않지만, 또 어떤 이들은 보통 사람이 상식적으로 하는 자기방어를 하지 못한 채 당하고 망가지는 일이 많습니다. 여성 홈리스는 남성 홈리스와 달리 경계, 긴장하며 또 상처를 받지 않으려 잔뜩 움츠리기도 합니다. 이미 집안에서 폭력을 당하거나 결혼해서 가정 폭력을 당한 사람들도 많아서 또 당하고 싶지 않으니 자기를 방어하는 것입니다.

지난 7일 열린 토론회에서 로즈마리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유튜브 캡처

여성 홈리스들은 길에서 살면 여러 가지로 당할 일이 막으니 가림막 삼을 겸, 짐을 맡길 겸 남성들에게 의존하기도 합니다. 남성 홈리스도 그렇지만 여성 홈리스는 마땅히 머물러 있을 데가 없으니 정신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도 자주 합니다. 저랑 같이 쉼터에 있던 한 지적장애 여성 홈리스는 서울역에 온 영주시 소재 요양병원 차를 타고 가려 해 제가 말리기도 했는데 그 이후에는 1~2년 동안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김포에 있는 요양병원에 갔다고 합니다. 여성 홈리스들은 사람하고는 안 친하고 화장실하고 친합니다. 안심하고 어디 갈 데가 없으니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문 잠그고 몇 시간 있다 나오는 일이 많습니다. 

저도 어떤 남자가 계속 쫓아다니고 그러면 마트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 있다가 갔겠구나 싶으면 나오는 일들이 있습니다. 3~4일 전, 밤 11시경 서울역 광장에서 젊은 여성 홈리스에게 한 남자가 작정을 하고 왔는지 바나나 등 먹을 것을 보이며 계속 얘기를 걸고, 그 여성 홈리스는 가라고 했지만 계속 귀찮게 굴었습니다. 옆에 있던 남자 노인 홈리스가 여성 편을 들고 큰소리를 내고 그 여성 홈리스가 지하 화장실로 가 숨으니 그 남자는 남성 홈리스한테 “평생 길에서나 살다 죽어라”하고 갔습니다. 예전 영등포역 안에서 잘 때는 지나가는 한 남자가 제 맞은편에서 자고 있는 한 여성 홈리스를 깨우더니 돈 6만 원을 눈앞에다 대고 흔들지를 않나, 또 어떤 사람은 야한 잡지를 꺼내서 보여주며 괴롭힙니다. 늘 보이는 데서 널브러져 자니 여성 홈리스를 싸구려 상품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명도 괜찮고 특징을 잘 기록하는 방법도 좋으니 여성 거리 홈리스, 여기저기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 여성 홈리스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뭉뚱그리지 말고 개별적으로 복지지원을 잘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질환에 따라 병원 연계해 꾸준히 치료해 낫게 해 주고, 의사가 현장에 와 진료나 심리상담을 지속적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보살핌과 관심을 갖고 늘 돌봄으로 지원해야 하고 복지사 확충할 예산도 늘려 노숙에서 빠져나가 지역사회 일원으로 서기까지 지원해야 합니다. 자꾸 병원이나 시설에 가지 않고 혼자 살 수 있도록 기술교육, 정신과 진료, 심리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인문학, 정서적 지원, 성인지 교육 등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 다치지 않으려 숨어있는 여성 홈리스를 찾아 그들도 사람다운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여성 홈리스 전용 노숙인 종합지원센터가 교통 좋은, 근접하기 좋은 곳에 만들어져서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게 해야 합니다. 거울도 보게 해야 합니다. 여성 홈리스들은 손거울도 안 보고 살아 자기 모습을 잘 모릅니다. 저도 언젠가 거울을 보고 ‘내가 이렇게 생겼었나’ 싶어 깜짝 놀랐습니다. 

25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시설 폐쇄를 알리는 서울역 희망지원센터. 사진 홈리스행동

여성 홈리스들은 짐이 많아 자리를 이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밥을 먹기도 힘듭니다. ‘식당에 가서 일하면 이백은 버는데 여자들이 왜 와서 밥을 먹느냐’는 차별적인 말을 하는 이들도 꼭 있어 얼굴이 두껍지 않으면 급식소에도 갈 수 없습니다. 여성들이 쉬는 ‘일·문화카페’라는 곳이 있을 때는 여자들끼리만 먹으니 아주 편했습니다. 그렇게 여자들끼리 먹는 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역 광장에서 사는 분들은 희망지원센터를 주로 이용했는데 코로나 검사 확인증을 요구하니 화장실 이용도 문제입니다. 파출소 화장실도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이곳도 코로나 때문에 이용을 못 하게 하고 있습니다. 서울역 대합실까지 가기에는 다리가 불편하거나 멀리 움직이면 물건이 없어질까 염려돼 위생팩이나 종이컵으로 대충 볼일을 보는 이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울역 광장에 공중화장실이라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외국인 여성 홈리스들은 더더욱 힘듭니다. 제가 아는 할머니는 죽지 못해 산다고 합니다. 자기는 불법체류자라 아무것도 안 된다며 붙잡혀 중국 갈까 봐 겁이 나 식사도 제대로 못 먹고 폐지를 주우며 길에서 삽니다. 아플 때는 한 편의점에서 주는 소화제로 견딘다고 합니다. 재난지원금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분들은 죽음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잘 파악을 해서, 한국에 어느 정도 머문 사람이라면 지원을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주거는 인권이라 했나요? 주거는 의사입니다. 주거는 힐링입니다. 대상이 되는 여성 홈리스, 정신질환, 지적장애인, 인격·성격 장애인, 알코올 의존자가 지원주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더 예산을 늘리고 더 많은 이가 인간답게 살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건강히 살려면 주거가 필수입니다. 같이 더불어 살도록 관심과 지속된 지원이 필요합니다. 사회나 정부, 우리 모두가 다시 그들이 설 수 있도록 지지대가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여성 홈리스들이 폭력과 여러 질병에 노출된 채 더 낮은, 낮은음자리표로 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