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세종시에 찾아간 이유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고시 발표 않는 국토부에 “신속히 추진하라” 국토부 “정부 독단 진행 사업 아냐… 주민 의견 더 들을 것”

2021-10-13     이가연 기자
동자동공공주택사업 추진주민모임 등은 13일 오전 11시,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 주간을 맞아 세종시 국토부 청사 앞에서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요구했다. 동자동 주민들이 국토교통부 앞에서 알록달록한 우산에 적힌 '공공개발  환영한다' 구호를 모아 보이고 있다. 사진 이가연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세종시에 있는 국토부를 직접 찾아가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지난 2월 5일, 정부는 전국 최대 규모의 쪽방촌인 서울역(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을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총 건설호수 2410호 중 공공임대는 1250호이며, 이 중 쪽방 주민에게는 1000호가, 사업지구 내 쪽방 이외의 세입자에게는 250호가 공급될 예정이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정부의 결정에 환영의 입장을 표했지만, 일부 건물 소유주들이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소유주 대책위원회는 지난 8월 26일 국토교통부(아래 국토부)를 찾아가 삭발식을 하며 항의 시위를 했으며, 대선을 앞두고 보수 정치세력까지 이들의 주장에 합세하는 상황이다.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하려면 12월까지 지구지정 확정 고시가 발표되어야 하지만, 국토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쪽방 주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동자동공공주택사업 추진주민모임 등은 13일 오전 11시,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 주간을 맞아 세종시 국토부 청사 앞에서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요구했다.

동자동 주민들은 ‘임대주택 확대하라’, ‘공공개발 환영한다’, ‘적정면적 제공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형형색색의 우산을 들고 세종시 국토부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이후 행진을 이어나갔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 추진주민모임 등은 국토부에 △쪽방 주민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TF에 쪽방촌 주민대표의 참여 보장 △개발 계획에 동자동 주민 자치 조직 공간 포함 △충분한 물량 공급을 통한 동자동 인근의 쪽방 주민 포함 △적극적인 쪽방촌 주거 문제 해결 등의 내용을 담은 요구안을 전달했다.

한 동자동 주민이 각종 구호가 적혀있는 우산들 사이로 뒷짐을 지고 있고, 왼편으로 "내가 사는 동자동 내가 살아갈 동자동"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사진 이가연

- 귀퉁이에 도랑 있는 쪽방… 내 맘대로 화장실 가고 싶다

동자동 주민들은 현재의 주거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설명하며, 공공주택사업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호태 동자동 주민의 방 네 귀퉁이에는 도랑이 있다. 여름에 물이 자꾸 새서 집주인에게 방수공사를 요구했지만, 결국 수리해주지 않아 도랑을 사방에 파놓을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쪽방은 스무 가구가 화장실 한두 개를 나눠 써야 하고, 샤워실이 없는 곳도 있다. 겨울에는 추워서 오돌오돌 떨며 자야 하고, 여름에는 비가 새서 방이 한강이 되어버린다.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어서 까딱하면 모두 불타 죽을 수 있다”라고 걱정했다. 

이어 김 씨는 “지난 2월, 국토부가 공공임대주택을 개발한다고 발표해서 믿고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부동산 업자들이 건물 소유주들과 함께 날뛰고 있다. 국토부가 동자동 공공개발 사업을 빨리 확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자동 주민인 양 아무개 씨는 여성으로서 불편한 점을 토로했다. 양 씨는 “쪽방에 있으면 남자들이랑 화장실도 같이 써야 해서 불편하다. 화장실에 들어가도 쥐가 왔다 갔다 해서 이사를 갔지만 마찬가지였다”라며 “공공주택에 입주하게 된다면 화장실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싶다. 지금은 여러 사람이 부엌을 같이 쓰기 때문에 음식을 편하게 조리하지 못하는데, 새로운 주택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해서 먹고 싶다”고 밝혔다.

- 쪽방만한 공공임대주택 “왜 맨날 쪽방 주민이어야 하나”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동자동 공공임대주택의 크기는 고작 18㎡(5.44평) 이하다. 실제 화장실까지 합치면 현재 쪽방의 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빨래를 널기도 비좁고, 세탁기를 들이기도 힘들다. 빨래를 하려면 공동 빨래방으로 가야 할 수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주민에게는 방 안에서 이동하고 활동지원사까지 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면적이지만, 장애인 주민을 고려한 평형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처럼 주민들은 최소 면적이 아닌 적정 면적을 제공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지난 9월 6일 열린 동자동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국토부는 주거 면적 확대 가능성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호태 주민은 “그동안 좁은 곳에서 살았다고 해서 또 쪽방에 살 필요는 없지 않나. 정부에서 공공임대주택을 만들어주면 적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왜 우리는 맨날 쪽방 주민만 되어야 하는가”라고 지적하며 “큰 집으로 가게 되면 살림이 생기지만, 살림을 둘 만한 공간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20㎡(약 6평)가 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백광헌 주민은 “쪽방에 사는 십몇 년 동안 내 방에 누구를 들여본 적이 없다. 한 명이 있기도 어려운 공간이라 그렇다.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해 내 방에 쉴 장소가 생기면 손님을 초대해 커피라도 한잔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동회 이사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편에 '공공주택확대'라고 적혀있는 우산이 보인다. 사진 이가연

- 함께 장례 치르는 동자동 주민, 주민 자치 공간 포함해야

동자동 주민들은 공공개발이 완료된 후에도 주민 자치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무실과 주민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동자동에는 주민들의 자치 조직인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가 있다. 지난 2007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자동 주민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은 “그동안 주민들은 아침에 나와 함께 동네를 청소하고, 어버이날이나 추석에는 적은 돈을 모아 주민 노래자랑 행사를 하면서 같이 협력하며 지내고 있다”라며 “동자동에서는 해마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다. 그런데 자칭 주민이라고 하는 건물 소유주들은 사람이 죽으면 방세 받는 것부터 걱정하고, 빈방을 누가 치우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면 주민들이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치르고, 그 냄새 나는 방을 다 치우곤 했다. 진짜 주민은 바로 우리들이다”라고 말했다. 

- 국토부 “정부 독단 진행 사업 아냐… 주민 의견 더 들을 것”

국토부는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공공택지조사과 관계자는 13일,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구지정 고시 발표일은 미정이다”라며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예민한 사안들이 많다. 주민들의 의견과 토지를 수용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라서 (이해관계자들과) 여러 번 더 만날 예정이다”라고 답했다. 

공공임대주택 크기에 대해서는 “18㎡는 전용면적이고 실제 공급면적은 30㎡ 수준이다. 본인 또한 현재 그런 크기의 집에서 살고 있다. 1인이 생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답했다. 장애인 주민의 경우 “건축 설계 시 복도와 현관, 엘리베이터의 접근성 확보를 고려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업을 선정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사업 확정에 대해 불안감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난 2월 5일에 발표를 한 사안이며, 정부가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서울시와 용산구가 함께 협의를 통해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다”라면서도 “소유주의 의견을 듣고 검토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집회에 참석한 동자동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