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활동지원 허용보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가족 활동지원 허용, 국가의 돌봄 책임 전가

2021-10-14     김광백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문제를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우선 나의 이 글이 지금도 어렵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장애인 가족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기 바란다. 이 글은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허용으로 장애인 가족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행정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을’들의 갈등이 아닌 정부와의 투쟁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대안들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의 표현이기도 하다.

발달장애인 가족 등 평소 활동지원사 연결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을 중심으로 가족의 활동지원 참여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노인장기요양의 경우 가족에 의한 서비스가 허용되는 경우가 있기에 이런 요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애인의 지역사회의 참여나, 자립생활을 강조하는 이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활동지원 제도의 근본 취지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나 역시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허용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난 2018년 5월 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가족의 ‘활동보조 전면 허용’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비마이너 DB

우선 활동지원서비스의 목적부터 살펴보자.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제1조는 크게 세 가지로 서비스의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첫 번째가 당사자의 자립생활 지원, 두 번째가 가족의 돌봄 부담 경감, 세 번째가 당사자의 삶의 질 향상이다.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문제는 이 같은 목적에 비추어 판단될 필요가 있다. 나는 가족의 활동지원 참여가 근본적으로 이 세 가지 목적 모두와 부합하지 않지만, 가장 먼저 ‘가족의 돌봄 부담 경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허용은 장애인의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시 가족의 책임으로 되돌릴 위험이 있다. 이 부분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활동지원사 매칭(연결)이 되지 않는 이용인에 대한 근본적 대안 마련을 요구하자, “가족 중에서 활동지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인정해 공백을 줄이겠다”고 대답했다. 질문의 취지는 가족들의 부담 경감인데, 돌아온 답변은 가족들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이었다.

장애 관련 사회서비스는 활동지원 말고도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이 허용될 경우, 이후 만들어질 서비스들에서도 가족에게 이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처리될 위험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돌봄은 이제까지 가족들의 몫이었다. 아이를 양육하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사회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만 떠맡겨진 영역이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와 투쟁 속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최소한의 사회적 역할이 인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족의 활동지원 참여는 가족의 역량과 온정에 장애인이 다시 속박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 가족을 통해 이루어지는 활동지원은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이라는 목적도 충족시키기 어렵다. 최근 장애인 복지의 화두는 탈시설과 자립생활이다. 탈시설과 자립생활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의 표현이고, 활동지원제도는 이의 구체적인 실현 수단이다. 그런데 가족이 당사자의 활동지원을 수행했을 때 자립생활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해 온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예컨대 어떤 발달장애인 가족은 자녀의 자립생활이 어려운 이유로 신변처리와 의사소통 등 일상생활 역량의 부족을 토로하셨다. 하지만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장애인 개인의 능력이 아닌, 그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을 통해서 결정된다. 가족의 활동지원 참여는 사회적 환경의 변화보다는 가족들의 헌신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경향성은 당사자의 자립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장애인 가족의 고립화마저 가져올 위험성이 존재한다.

셋째,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허용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라는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엄연히 공적인 제도이며, 그 핵심은 공공성에 존재한다. 그동안 민간에게 맡겨지거나 위탁된 사회서비스에서 나타난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애인운동 진영뿐만 아니라, 어린이, 노인 등 돌봄 영역에서는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를 요구해 왔다. 그러한 노력 속에서 2021년 9월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다. 서울, 대구, 인천 등에서는 2019년부터 사회서비스원이 시범 운영 중에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허용이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존 민간 영역에서 활동지원사 연결이 어려운 이들(행동상의 어려움, 의료적 지원의 필요, 활동지원 시간이 너무 적은 이들 등)의 경우에는 사회서비스원의 종합재가센터가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 사회서비스원은 민간과 달리 생활임금을 적용할 뿐만 아니라(인천의 경우 시급이 1500원가량 더 많다), 상대적으로 고용의 안정성이 높아 서비스 질의 향상을 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묻고 요구해야 한다. 나에게 권리도 있고 부여된 바우처 시간도 있는데, 왜 그 권리가 실현되지 않는가? 그 권리의 실현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적어도 지금과 같은 가족에 의한 지원이라는 편법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 국가와 공공의 책임을 강화할 때만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필자 소개_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인천장애인교육권연대에서 활동을 하는 김광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