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과 취업의 쳇바퀴, 불안정한 일자리 정책
당사자가 말하는 노숙인복지법 제정 10년 ④ 삿가이
[편집자 주]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노숙인복지법)’ 제정 10년을 맞아, 노숙인복지법을 평가하는 토론회가 지난 5일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비마이너는 노숙인복지법 평가하는 데 있어 당사자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이날 발표된 홈리스 당사자의 증언을 동의받고 게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만 44세 남성입니다.
2009년 봄 때에 노숙 생활을 하게 되어 서울역에 있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숙대입구에 있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와 충정로에 있는 구세군종합지원센터를 이용하였습니다. 영등포역 인근에 있는 보현의집과 햇살보금자리센터도 알게 되어 주간쉼터와 야간 잠자리를 이용하였습니다. 4월경 보현의집으로 입소 과정에서 영등포구 보건소에서 방사선과 폐결핵검사에서 폐결핵 의심 판정이 나왔고, 서울시립서북병원에 1개월 입원하여 치료한 후 음성의 전염성이 없는 결핵으로 판정돼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담당 주치의가 퇴원 후에도 약물 복용과 통원 치료는 계속해야 된다고 하여 보현의집과 다시서기센터를 이용하면서 다시서기센터 보건담당 직원분과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결핵 약을 복용하고 있음을 말씀드렸더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보라 하여 신청하였습니다. 수급 신청해서 일반 수급자가 돼 고시원 생활을 하며 노숙으로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입원과 약물 복용을 합해 총 10개월 간의 치료로 폐결핵은 완치되었습니다.
그 후 인지어스라는 회사가 위탁하는 희망리본사업에 1년 6개월간 참여했습니다. 이 사업은 이력서를 가지고 취업활동을 하여 기업에서 면접 요청이 오면 방문 면접을 통해 입사하도록 돕는 사업이었습니다. 희망리본에 참여하며 실업에서 벗어나려고 나름 노력해 보았습니다. 희망리본 운영회사에서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저는 저대로 이력서를 넣어서 이력서 넣은 곳만 50군데 정도 됩니다. 그중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은 20군데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그곳들도 막상 가보면 최근 경력 공백이 너무 긴 게 발목을 잡았습니다. 면접을 보는 기업의 대표자들은 채용을 거부하며 어떤 때는 충고, 어떤 때는 비난조로 이야기했습니다. ‘장기간 입사한 경력이 없다’, ‘청년이 아니다’, ‘미혼인 사람은 무단결근이 많아 회사에 피해를 입힌다’와 같은 말들을 자주 들었습니다. 한번은 이력서에 자활사업 참여 경험을 경력으로 넣으라는 희망리본사업 담당 직원의 권유로 그렇게 써서 면접을 봤습니다. 그랬더니 고용주는 ‘자활이 무슨 경력이냐?’, ‘젊은 사람이 왜 그런 걸 했느냐’며 부정적인 답변만 들었습니다. 결국 2013년 12월, 사회복지를 통한 자립의 길은 없다고 판단하고 기초수급자가 된 지 4년 2개월 만에 수급권을 자진 반납하고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다시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건설 경기가 나빠 일감이 줄어 다시 7년 3개월 만에, 기초생활조건부 수급을 받으면서 지역자활센터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제가 들어갈 수 있는 사업단이 없어 2개월의 게이트웨이 과정 교육만 받고 종료되어 국민취업지원제도로 연계되었습니다. 구청의 취업지원상담사 겸 자활참여 담당자는 ‘보건복지부의 지역자활사업 제도가 개정되어 게이트웨이 이후에는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참여하거나 수급을 포기하거나 선택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수급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올해 5월부터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사업단은 사실상 현재로서는 대부분 참여하기 어렵고 사업단에 배치되는 분들의 확률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는 지역자활센터 실무자의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자활센터에서 게이트웨이 교육을 받다 보면, 1~2주 내에 실무자와 상담을 하게 되는데 상담내용은 사업단 배치에 대한 내용보다는 교육 참여 기간 내 취업 계획을 세우고 취업을 하라는 요구와 목표가 뚜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청 담당도 ‘우리 구가 서울에서 수급자가 두 번째로 많다’며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추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격증 교육을 받고, 지금은 이력서를 작성해서 기업에 제출하고 있습니다. 다시 약 10년 전의 저로 돌아갔습니다. 제도 역시 그때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노숙인시설생활, 기초생활수급생활, 자활근로, 취업지원제도 등 국가가 지원해 주는 복지제도는 모두 받아 보았고, 탈빈곤의 목적으로 시행되는 고용복지 제도는 저같이 혼자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좋은 제도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많이 부족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고용시장은 불안정하고 일자리도 제한적이어서 고용주의 눈높이가 높아 저 같은 사람은 눈에 안 들어옵니다. 그리고 실업자들의 연령대도 다양한데 ‘취업하라’, ‘일용직이라도 다녀라’라고 정부와 지자체가 구직자에게만 떠넘기는 일방적인 요구를 하면 어떻게 실업자를 없앨까요?
고용을 통해 노숙을 벗어나는 과정은 험난하고 온갖 수치와 모욕과 무시를 당하면서도 취업에 실패한 결과는 그냥 취업 못 한 본인 책임으로만 남습니다. 노숙인시설은 수급자가 되면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하고, 자활과 고용지원제도는 참여자가 취업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받을 생각도 없는 일반기업으로 내보내려고 안달입니다. 출산·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뿐 아니라 남성도 저와 같이 장기적인 노숙생활과 실직상태에 놓이면 경력단절 상태가 되는데 이런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구직자의 현실을 고려해서 충분히 기다려주는 일자리 대책을 만들어주시고, 구직자의 눈높이도 고려해서 부정적인 시선보다는 긍정적으로 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