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청소년 수다‘집’, 그 다섯 개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연속기고] 청소년 수다‘집’ 

2021-10-18     시연

‘청소년’과 ‘주거’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아래 ‘청주넷’)를 만나기 전 나는 ‘학교에서 교복 입고 대학 가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엄마, 아빠,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잘 지낼 수 있는 집’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원가정 안에서 집 걱정 없이 대학교까지 졸업하며 이른바 “평범하게” 지내 온 지난날들은 나로 하여금 한국사회가 규정한 ‘정상’ 범위 안에 있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나를 가두도록 학습시켰다. 그런 나에게 ‘청소년 주거권’은 참 낯설었다. 

-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들

“청소년에게도 집다운 집을!” 청주넷 활동을 함께하는 지금, 나는 온몸과 마음으로 세상에 외치고 있다. 청주넷은 탈가정/거리 청소년, 청소년 성소수자, 학교 밖 청소년, 성폭력 피해 생존자, 장애 청소년 등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직접 지원하는 현장단체들과 청소년 주거권에 관심이 있는 인권사회단체 활동가, 연구자, 법률가 등이 함께 모여 201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네트워크이다. 

청주넷 활동을 하면서 나는 한국사회 청소년 주거권의 참담한 실태를 마주했다. 각종 폭력이나 방임, 차별을 경험하며 원가정에서 살 수 없거나, 살고 싶지 않은 청소년에게 한국사회는 가정복귀 혹은 시설보호라는 이분화된 선택지만 제시한다. 누구든 폭력의 가해자가 여전히 존재하는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규칙과 제한이 가득한 공동체 생활을 버텨야 하는 시설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어려운 곳은 주거가 될 수 없다. 청소년은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만이 존재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내몰린다. 청소년 주거 정책의 공백을 메꿔 달라고 요구하고 싶어도 이를 제대로 다루는 곳이 없다. 청소년 복지에는 청소년의 주거가 빠져있고, 주거 복지에는 청소년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선택지가 잘못된 것은 애초에 문제를 제대로 출제하려는 곳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2020년 10월 18일, ‘청소년 말하기 워크숍’을 통해 청소년 당사자 활동가를 조직하였다. ‘집다운 집’에는 ‘000이 있다/없다/채운다/만난다/한다/살린다’에 대한 내용을 모둠별로 채우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다

2020년 7월, 청주넷 활동가들은 이 실타래를 청소년 당사자와 함께 풀어가고 싶어서 각 현장에서 만나고 있는 11명의 청소년을 인터뷰했다. 

“저에게 집은 저를 무시하는 한숨들이 가득했고, 이유 없는 신체적 폭력이 일상인 곳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집보다 길거리가 더 안전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집을 나왔었어요.”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쉼터를 가려고 했는데, (주변 지인들이) 다 말리는 거예요. 어떤 사람과 지낼지, 어떻게 지낼지 모른다는 이유로요. 저도 생각해보니 그렇게 밀접한 단체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와는 다른 사람일 테니까요.”

쉼터와 같은 시설을 선택하지 않았을 때, 이처럼 청소년들은 20살 넘은 지인의 명의를 빌려 집을 구하거나, 그런 사람의 집에 얹혀살거나, 나이를 속이고 계약할 수 있는 고시원과 같은 곳에서 살거나, 수많은 폭력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거리에서 살게 된다고 했다. 각자가 얼마나 치열하게 생존하며 버텨왔는지, 그래서 청소년 주거권이 왜 필요한지가 담겨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지난 삶을 부끄럽고 미안하게 만들었다. 인터뷰 녹취록에 수없이 밑줄을 긋고 또 그으며 마음에 담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였다.

“저는 이미 지나온 시간이지만, 분명 그때의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청소년들이 지금도 있을 거예요. 그런 이들에게 나와는 다른 선택지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문장을 읽고서 나는 청소년주거권 활동은 반드시 청소년 활동가와 함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열악한 현실 속에서 청소년주거권 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막막했지만, 그 누구보다 청소년주거권이 간절하고 진심인 청소년 당사자들의 눈빛을 마주하고 나서는 “청소년에게도 집다운 집을 내놔라!”라는 말을 외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24일, ‘청소년 말하기 리허설’에서 청소년 활동가 “쏘쏘”님이 말하기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 청소년 활동가, 수다로 연대하다

인터뷰 이후 청주넷에서는 ‘청소년 말하기 워크숍’을 통해 청주넷 활동을 함께 할 청소년 당사자 활동가를 조직했다. 6명의 청소년 활동가들이 각각 필요한 현장에 흩어져서 청소년주거권의 필요성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의 말하기(강연, 토크쇼, 토론문 등)를 해보기로 했다. 우리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최종점검차 준비한 내용을 청주넷 내부에서 ‘말하기 리허설’ 방식으로 풀어내었다. 

너무나 아쉽게도 우리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말하기 강연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면서 외부 조직과 연결되기 쉽지 않았다. 우리의 말하기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청주넷 내부에서 작은 수다회를 기획했다. 

지난 2021년 여름, 청소년 활동가들과 한자리에 모여 각각 다른 주제가 있는 수다회를 열었다. 청소년주거권과 ‘소소한 일상’, ‘시설’, ‘퀴어한 삶’, ‘청소년 인권’, ‘가족’이라는 흥미로운 5가지 주제를 가지고 나누었던 수다의 내용을 이번 연속기고를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때로는 나의 이야기와 너무 닮아서, 때로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너무 아파서, 때로는 이런 사회가 너무 무기력하고 속상해서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다섯 번의 수다회 시간이었다. 

앞으로 펼쳐질 다섯 번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우리와 연결되어 함께 화내고 울고 웃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나의 삶의 테두리 안에서 마주했던 세상이 전부인 줄만 알았던 내가 청주넷을 만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이 글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같은 감정을 느끼며 우리가 비슷한 마음의 결을 나누고 있다는 연대의 힘은 또 누군가에게 청주넷 활동이 연결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소개

김시연. 청년맞춤제작소in오산(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 운영) 활동가. 다차원적인 불평등 속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과 함께 ‘각자도생’으로 버티는 게 아닌, 서로가 ‘연대’하며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면 우리 모두가 좀 더 좋은 삶을 꿈꿀 수 있다고 믿으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