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편견 조장하는 영화 「F20」, 장애계 “KBS는 상영 중단하라”
KBS가 제작한 영화 「F20」, 지난 6일 개봉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부추기는 문제적 내용 29일 TV 방영 예정… 장애계 “모든 수단 가리지 않고 방영 막을 것”
지난 6일에 개봉한 영화 「F20」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연출을 맡은 홍은미 KBS 드라마PD는 지난 30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 배척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반대로 ‘차별과 편견, 배척’을 조장하는 내용이어서 장애계 및 시민사회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장애인운동단체는 20일 오전 10시, 서울시 영등포구 KBS 신관 출입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를 향해 △「F20」의 지상파 방영 등 모든 매체 상영 즉각 중단 △「F20」의 장애인 혐오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 △장애인 혐오 제작물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 정신장애인이 겪는 차별의 피해를 착취해 스릴러로 만든 영화 「F20」
영화 「F20」에는 조현병이 있는 주인공 도훈(김강민 분)과 유찬(유동훈 분)이 등장한다. 도훈 엄마인 애란(장영남 분)과 유찬 엄마 경화(김정영 분)는 조현병을 공부하고 정보를 나누는 등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문제는 “미친놈이 이사 왔다”는 소문이 나면서 시작된다. 경화와 유찬이 애란과 도훈이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유찬의 정신장애가 알려진 것이다. 애란은 도훈의 정신장애마저 이웃이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지낸다. 이웃은 애란이 경화와 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 애란에게 눈치를 주며 경화를 고립시킨다.
그 사이 동네 길고양이가 끔찍하게 살해되는 일이 벌어지고, 이웃은 조현병이 있다고 소문난 유찬을 의심하며 경화와 유찬을 아파트에서 쫓아낼 궁리를 한다. 애란은 혹시나 도훈이 고양이를 죽인 것 아닌가 의심하며 괴로움에 빠진다. 한편으로는 경화가 도훈의 정신장애를 이웃에게 말할까 봐 무서워한다.
홍은미 PD는 아파트 주민의 편견과 배척으로 정신장애인과 그의 가족이 불행을 겪는다는 걸 보여주려 한 듯하다. 그러나 의도는 빗나갔다. 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면 시청자에게는 ‘이웃이 정신장애인이면 피곤한 일이 생긴다’는 감상만 남게 된다. 한 주민이 반상회에서 정신장애인의 범죄 목록을 읊어가며 “이런 사람과 한 아파트에서 어떻게 살 수 있나”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스릴러 장르의 연출을 위해 정신장애인의 모습을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귀신처럼 활용하는 재연 방식 또한 문제적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음침한 분위기를 띠며 ‘누가 길고양이를 죽였나’라는 미스터리를 향해 달려간다. 이때 정신장애인이 급성기일 때의 모습을 공포스럽게 재연하며 ‘정신장애인은 무서운 사람’이라는 편견을 강화한다. 급성기일 때 다양하게 발현되는 정신장애인의 실제 삶은 삭제한 채 오직 영화적 연출만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고 편집한다.
작품명에 활용된 조현병의 질병분류코드 ‘F20’의 ‘F’를 ‘Friend(친구)’로 해석하자는 대사는 시혜적이기까지 하다. ‘장애인은 우리의 친구’라는 뜻을 담은 ‘장애우(友)’라는 표현은 사라진 지 오래됐다. 장애인은 친구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다. 사회적 소수자를 친구로 부르는 것은 이들을 연민하고 하대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영화 「F20」은 KBS가 최초로 시도하는 영화 프로젝트 ‘TV시네마’의 첫 작품이다. KBS가 직접 제작을 맡았고 7억여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출 또한 KBS 드라마 PD가 했다. 지난 6일 극장개봉 후 2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현재 웨이브, B-TV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에서 상영 중이다. 오는 29일 TV 방영을 앞두고 있다.
- 조현병 당사자 분노… “KBS는 왜 우리를 무시하나”
기자회견을 연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조현병이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인 강욱성 씨는 “영화는 조현병 당사자를 범죄자인 것으로 그리며 상품화했다. 묻고 싶다. 영화제작 관계자는 조현병 당사자를 만난 적이 있는가? 이 영화가 TV에서 방영된다면 조현병 당사자와 그의 가족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또한 강 씨는 “안 그래도 조현병에 대한 편견이 만연해 있다. 취직하려 해도 편견 때문에 받아주는 회사가 없다. 운전면허증 취득 시에는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조현병 당사자는 이미 우롱당하고 천대받고 있다. 영화는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조현병 당사자는 언제까지 숨어살아야 하나? 우리도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 영화 제작 관계자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극 중 애란과 경화처럼 조현병이 있는 정신장애인의 보호자 ㄱ 씨가 발언에 나서기도 했다. 익명을 요청한 ㄱ 씨는 “분해서 살 수가 없다. 안 그래도 국가가 지원해 주는 게 없어서 힘든데, 이렇게 힘든 우리를 뭐하러 건드리나? 조현병 당사자나 가족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나? 공영방송인 KBS에서 이런 영화 만들어 우리를 무시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수신료 받아서 그따위로 몇억 들여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가? 정신장애가 죄라는 것밖에 더 되나? 당장 사과하라”라며 분노했다.
조현병 당사자의 가족인 배점태 한국조현병회복협회 심지회 회장은 제작진의 몰이해를 지적했다. 배점태 회장은 “제작진은 사이코패스와 조현병의 차이를 모른다. 조현병에 대한 부정확한 지식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편견을 조장했다. 또한 영화에서 조현병 당사자의 사건·사고 목록을 읊으며 조현병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라며 “표현과 창작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회적 약자를 배척하고 현실을 왜곡한 것에 KBS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 경고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든 현실이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오히려 이를 조장했다.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29일 TV 방영을 막을 것”이라 말했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릴레이 발언 끝에 이도경 KBS 시청자센터 센터장, 황진성 KBS 시청자센터 시청자미디어부 부장 등과 장애계가 면담을 가질 수 있었다. KBS 측은 내부 논의 후 22일 오전까지 장애계에 답변을 주기로 했다. 긍정적 답변이 오지 않으면 장애계는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 진정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