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막무가내 체포… 경찰청 ‘사과 못 시킨다, 이것도 인권’
피해장애인, 사건 이후 트라우마로 집에 갇혀 지내 경찰은 사실상 사과 거절… ‘사과 강요는 경찰 인권침해’ 피해자 아버지 “경찰이 요구 수용할 때까지 싸울 것”
경찰이 발달장애인을 부당하게 뒷수갑을 채워 체포하며 인권을 침해한 지 6개월이 됐지만 아직 사과는커녕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에 피해자 가족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는 4일 오전 11시 서울시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을 규탄하며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직후 이뤄진 경찰청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경찰은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 부모에게 ‘해당 경찰관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이 또한 경찰의 인권’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또다시 공분을 사고 있다.
- 안산 와동파출소 ‘장애인인지 모르고 그랬다. 장애인에게 목걸이 채웠어야’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발달장애인 고 아무개 씨(24세)는 지난 5월 11일, 집 앞에서 혼잣말을 하던 중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에게 체포당했다. 당시 고 씨는 외출한 어머니와 누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행인이 ‘외국인 남성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오해하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고 씨에게 외국인 등록증을 요구했지만 음성언어로 소통하기 어려운 고 씨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경찰은 고 씨를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생각하고, 흉기를 소지했거나 현장에서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뒷수갑을 채워 경찰차에 밀어 넣는 등 강경하게 체포했다.
안산 와동파출소로 인치된 고 씨는 경찰의 강압적 행동에 당황하며 펄쩍 뛰고,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등 불안을 표출했지만 경찰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고 씨는 파출소 안에서도 뒷수갑을 찬 채 결박돼 있어야 했다.
파출소에 도착한 고 씨의 어머니가 경찰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경찰은 ‘장애인 아들을 목걸이도 없이 밖에 내보내면 어떻게 하느냐’며 장애인 차별 발언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와동파출소 소장은 피해자 아버지 고현환 씨에게 ‘당신 딸이 그렇게 신고했다고 생각해 봐라. 그러면 당신은 수갑을 안 채울 건가.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은가. 이런 식의 체포 방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며 화를 내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현환 씨는 “아들이 풀려난 다음 날, 와동파출소에 다시 가서 책임자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한 경찰관이 ‘어제 근무했던 분들이 오늘은 근무하지 않는다’며 아내와 나의 출입을 막았다. 아내가 경찰관 얼굴을 알아보고 ‘어제 제 아들 체포하신 분이 이분이다’라고 지목하니 파출소 문을 열어줬다. 너무 억울했지만 진정하고 면담에 참여했다. 그러나 경찰은 잘못한 게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고현환 씨와 부모연대, 장추련은 지난 7월 22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이민수 안산 단원경찰서장, 와동파출소 경찰관, 김창룡 경찰청장을 상대로 장애인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 경찰공무원이 법령상 의무 위반하는 건 징계사유
고현환 씨는 기자회견에서 경찰청을 향해 울분을 토했다. 고 씨는 “아들은 그날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경찰차만 봐도 도망가고 집 밖에 나가려 하질 않는다. 아들은 원래 집에 있다가 답답하면 밖에 혼자 나가서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바람 쐬고 집에 오곤 했지만 이젠 그러지 못한다. 경찰은 이거 어떻게 보상할 건가.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강력히 요구한다. 요구가 수용될 때까지 경찰과 싸울 것”이라고 강경하게 성토했다.
김수정 부모연대 서울지부 대표는 “경찰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줄 알았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말도 안 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발달장애인,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고도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전국의 경찰이 인권교육을 받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나동환 장추련 변호사는 “뒷수갑은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사용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피의자가 도주, 자해, 폭행 등 위험행동을 하지 않으면 뒷수갑을 채울 수 없다. 그러나 경찰은 의사확인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피해자를 무리하게 범인으로 몰아서 헌법상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 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이용해 불이익을 준 장애인 차별행위로도 볼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나 변호사는 “공무원이 법령상 의무를 위반하는 것은 징계사유가 된다. 그러므로 경찰청은 헌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경찰관에게 주의나 경고를 조치하는 게 아니라 정직 또는 징계 처분해야 한다. 재발방지를 위해 전국 경찰관을 대상으로 발달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실시하고 현장 대응 매뉴얼 또한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경찰청, 사과 요구 사실상 거절… 이유는 ‘사과 강요는 경찰 인권침해’
기자회견 직후 경찰청 관계자와 피해자 부모, 장애계가 면담을 가졌으나 경찰청은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요구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부모가 사과를 요구하자 경찰청은 ‘해당 경찰관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이 또한 경찰의 인권이며 경찰 인권침해를 할 순 없다’라며 ‘경찰청에 들어온 문제제기를 경기남부경찰청에 전달하겠다’는 소극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해당 경찰관 징계나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대해서는 ‘인권위 결정이 나오면 그때 대책을 세우겠다. 인권위 결과는 최대한 수용하는 쪽으로 하겠다’라고 밝혔다.
면담에 참석한 나동환 변호사는 “경찰청 측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경찰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이란 걸 알았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다’였다. 고의가 없었다는 취지로 거듭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권 인식 수준이 매우 낮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 고현환 씨는 4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면담 이후 마음이 많이 상했다. 얻은 건 하나도 없다. 아들은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자기가 필요한 것을 매일 노트에 적어 엄마한테 사 달라고 부탁한다. 원래는 아들 혼자 했던 일들”이라며 “경찰이 우리 가족을 업신여겼다. 당장 아들이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텐데, 경찰은 뾰족한 대답도 없고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