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세균 열사 영결식] 노량진수산시장 밀어낸 자본이 목숨도 거둬갔다
4일 사망한 노량진수산시장 상인 나세균, 9일 발인 야구장 된 ‘구 시장’ 자리서 노제 열려… “생전 되찾고 싶던 곳” 서울시청 점거 시도했으나 경찰 강경 진압 구 시장 상인들 “나세균 대신해 투쟁 승리하겠다” 서울시 “상인들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해… 굳이 또 면담을?”
수협의 잘못된 현대화 사업에 맞서 투쟁하다 지난 4일 사망한 고 나세균 열사가 9일 오전 영면에 들었다. 이날 오전 8시 발인 후 9시부터는 구 노량진수산시장 자리에서 노제가 진행됐다.
운구차를 포함한 민주노점상전국연합(아래 민주노련) 차량 스무 대가 구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서울시청에 도착했다. 11시 영결식 전, 구 시장 상인과 활동가 50여 명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시청 안으로 진입하려 했지만 경찰병력이 강경하게 진압해 상인이 쓰러지고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구 노량진수산시장 나세균 열사 빈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영결식에서 “나세균 동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서울시를 상대로 강경하게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이후 서울시 도시농업과에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구 시장 상인분들이 맨날 같은 얘기만 하셔서 사실상 면담에 실익이 있나 싶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 야구장이 된 구 시장, 영정이 된 나세균
“기자님, 세균이가 가려니까 많이 슬픈가 봐요. 기자님도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나는 오늘 암것도 안 하면 좋겄어. 어찌 보내요, 어찌…”
9일 아침 8시 30분, 비가 쏟아졌다. 육교 위 농성장에서 만난 상인은 노제도, 영결식도 안 하고 싶다고 했다. 9시가 다 돼가자 곧 운구차가 도착할 거란 연락이 왔다. 상인은 내려가기 싫은 마음을 안고 내려갔다. 작별하기 싫지만 잘 보내줘야 한다는 마음도 컸다.
까맣고 긴 운구차에는 하얀 글씨로 ‘나세균 열사’라고 적혀 있었다. 유가족과 영정이 된 나세균이 운구차에서 내렸다. 나세균의 영정은 한상범 민주노련 노량진수산시장 공동지역장이 품에 안았다. 한상범 지역장 품에 안긴 나세균은 야구장이 된 옛 노량진수산시장 자리에 섰다. 나세균이 20년을 일한 곳이었다. 그렇게 노제가 시작됐다.
윤헌주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나세균 동지가 여기서 다시 장사하는 꿈을 결국 못 이루고 갑니다. 애통합니다. 수협이 이까짓 야구장 만드느라 우리 상인들 내쫓은 거, 나세균 동지도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라며 비통해했다.
수협은 공사비 약 30억 원을 들여 구 시장 자리에 야구장과 축구장을 지었다. 올해 2월에는 야구장, 축구장을 동작구청에 무상임대해 주는 대신 연간 100억 원의 세금을 3년간 면제받기로 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3년 후 이 스포츠 시설은 허물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구 시장 부지를 빈 땅으로 둘 경우 아무 수익도 못 내고 세금만 내야 할 처지에 처하자, 무리해서 스포츠 시설을 지어 구청에 무료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세금 면제 혜택을 받는 ‘꼼수’를 쓴 것이다.
차량 운구행렬은 구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시청으로 향했다. 나세균은 영정이 되어서도 구 시장 자리를 밟아보지 못했다. 야구장이 된 시장 주변만을 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 “세균아, 가야겄냐” 장승처럼 운구차 지키고 서 있던 상인들
오전 10시, 차량 운구행렬이 시청 앞에 들어섰다. 나세균이 ‘엄마들’이라 부르던 고령의 상인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이들은 운구차를 보자마자 곡을 했다. “아이고, 세균아.”
상인들은 운구차 앞에 계속 서 있었다. 장승처럼 서서 운구차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다들 시장에서 40~50년 서서 일한 사람들이라 허리도 무릎도 성치 않다. 영결식 전까지 앉아서 쉬시란 권유에도 운구차 곁에 서서 울고만 있었다. “세균이가 영영 가는데 앉아야 뭐 허냐.” 나세균이 숨진 4일부터 엿새째 곡을 해서 목이 다 쉬었다. 그래도 울었다.
몇 상인들은 시민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시민분향소는 지난 6일 세워졌는데, 나세균 영정 앞이 그새 가득 찼다. 과자, 빵, 말린 오징어, 술 등 나세균을 추모하는 이들의 마음들이 쌓여 있었다.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온 조문객 한 명은 분향소에 들어오기 전부터 울고 있었다. 나세균의 영정을 보자마자 주저앉았다. 시민분향소를 지키던 상인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같이 울었다.
시민분향소에서는 연신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불쌍허다, 인생이여. 어이웁고 처량허다.” 시청 앞 사거리와 광장까지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시민분향소 앞에 걸린 현수막에는 ‘수협과 서울시를 규탄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지만 나와보는 서울시 공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오전 10시 30분, 나세균을 잃은 이들은 시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 시청 진입 시도에 경찰 수십 명 강경 진압… 상인들 “반드시 승리할 것”
상인들은 서울시에게서 무슨 말이라도 들어야 했다. 잘못된 현대화사업에 저항하다 트라우마로 사람이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나와보지 않는 서울시 공무원을 만나야 했다. 경찰은 이미 시청 정문 앞을 ‘서울특별시’라고 적힌 노란 펜스로 막고 있었다.
상인들 수십 명이 뛰어가 펜스를 걷어내자, 방패로 무장한 경찰병력이 긴급하게 투입됐다. 고령의 상인들은 바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두 명의 상인이 쓰러져 119 구급대가 왔다. 어떤 상인은 손가락을 다쳐 피를 흘렸다. 옆에 있던 상인이 입고 있던 우비를 찢어 다친 손가락에 칭칭 감아 응급처치를 했다. 쓰러지건, 손가락이 다치건 상인들은 다 쉰 목소리로 말했다. “오세훈은 나세균을 살려내라!” “우리 세균이 이렇게는 못 보낸다!”
30여 분의 대치 후 11시부터 영결식이 시작됐다. 조사를 낭독한 이들은 나세균 죽음의 원인을 지적하고, 나세균 대신 끝까지 투쟁해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죽였습니다. 서울시가 죽였습니다. 수협이, 동작구청이 죽였습니다. 지난 7년간 나세균 동지는 이렇게 천천히 죽어갔습니다. (최영찬 민주노련 위원장)
수협에 억대 연봉 받는 자가 수백 명입니다. 상인을 두드려 패고 육교 위로 내쫓는 동안 억대 연봉자는 4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이 기막힌 부조리가 나세균을 죽였습니다. 수협은 현대화사업으로 유통 선진화를 이루겠다고 했지만 도매수익보다 임대수익이 더 높은 현실입니다. 수협은 부동산 탐욕과 상인의 생존을 맞바꿨습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개발과 현대화라는 허울 좋은 말들 아래 살인자의 손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런 죽음을 더는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게 우리의 추모가 돼야 합니다. 돈이 사람 위에 있는 세상을 뒤집겠습니다. 삶의 저편에 선 동지와 이편에 선 우리가 같이 꿈꾸던 세상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회장)
평생을 일궈 온 시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우리는 부자들의 돈놀음으로 여전히 괴로움 속에 있습니다. 더는 희생이 없어야 합니다. 투쟁의 승리만이 나세균 동지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정의로운 투쟁 안에서 끝까지 함께 합시다. (황푸하 옥바라지선교센터 목사)
세균아. 너는 참 거짓말할 줄도 모르고, 욕도 할 줄 모르고, 책임감도 강했지. ‘형님, 낚시 한 번 하실까요’해서 알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갈 줄 알았냐. 이럴 줄 알았으면 말 한마디 더 해 줄걸. 세균아, 여기는 이제 걱정하지 말아라. 수협 같은 나쁜 새끼들 없는 데서 편히 쉬어라. (한상범 민주노련 노량진수산시장 공동지역장)
- “세균아, 잘 가라”… 상인들 면담 요청에 서울시 ‘소극적’
오후 12시 30분, 영결식이 끝나고 이젠 정말 나세균을 보내야 할 때가 됐다. 나세균의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이다. 운구차가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장승처럼 서 있던 ‘엄마’ 상인들이 이제는 운구차를 배웅하러 왔다.
나세균을 쓰다듬듯 운구차를 쓰다듬고 만졌다. 세균이 못 보낸다고 바닥을 뒹굴며 울던 상인들은 이제 “잘 가라”고 인사했다. 투쟁의 현장에서 늘 함께 듣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처럼 산 자의 몫이 있다. 나세균을 보내고 이제 그 몫을 다해야 한다.
이들은 먼저 서울시에 책임을 묻기로 했다. 서울시 도시농업과 국장급 면담을 요청했다. 윤두리 서울시 도매시장관리팀 주무관은 9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면담을 안 한 게 아니다. 면담해도 상인분들은 맨날 같은 얘기만 한다. 면담을 하는 게 사실상 실익이 있나 싶다”라며 “돌아가신 건 안타깝지만 그와 별개로 서울시가 현실적으로 도울 수 있는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아래 농안법)에는 서울시가 노량진수산시장의 개설자이자 관리자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윤 주무관은 “서울시의 책임은 ‘도매’까지다. 수협과 상인들이 사적으로 임대차계약 맺은 것에 대해 서울시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지난 2002년, 수협에 노량진수산시장의 관리 권한을 넘겨준다는 계약서를 쓴 바 있다. 윤헌주 위원장은 “서울시가 관리 권한을 수협에 넘겨준 것 자체가 농안법 위반”이라며 “농안법에 따르면 서울시는 시장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방기해 놓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만 말한다”고 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