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부랑인 강제 수용시설 영보자애원, 진상규명 될까?

강제입소 당한 88%, 40년 전 그날의 기억 선명해 미용실 갔다가 행방불명, 병든 상태로 20년 만에 나타난 엄마   “위법한 훈령에 따른 시설 수용, 진상조사·피해 구제해야” 

2021-11-15     이가연 기자
1985년 영보자애원이 개원했다. 사진 서울사진아카이브

최근 제2의 형제복지원으로 알려진 ‘영보자애원’에 대한 강제입소 의혹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 이에 장애계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서울시립영보자애원(아래 영보자애원)은 천주교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유지재단이 운영하는 여성 노숙인요양시설로, 1985년 개원해 2021년 9월 기준 총 331명의 입소자가 살고 있다. 이 중 장애등록된 입소자는 총 267명이며, 정신·지적 장애가 있는 입소자(정신장애 117명, 지적장애 135명)가 대부분이다. 법인은 지난 2005년 기존 시설을 영보자애원, 정신요양시설, 요양원 총 3개의 시설로 분화시켰으며, 현재는 법인 산하 총 8개의 시설이 관리되고 있다.  

1985년 염보현 서울시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보자애원 개원식이 열렸다. 철망 뒤로 하얀색 건물 앞에 같은 옷을 입은 여성 거주인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서 있다. 사진 서울사진아카이브

영보자애원의 강제입소정황이 포착된 것은 2017년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노숙인 생활시설 인권실태 정기조사’에서다. 당시 서울시는 민간조사원 20명과 함께 시설조사에 나갔다가, 자진입소한 거주인 12% 외에 88%가 강제입소 및 경찰에 의해 입소된 것을 확인했다. 

당시 민간조사원들은 이러한 조사 결과를 기록으로 남겼지만, 서울시 여성정책담당관은 ‘주요 인권침해 사례 특이사항 없음’으로 보건복지부에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2017년 노숙인생활시설 인권실태 정기조사’ 결과. 주요 인권침해 사례에 '특이사항 없음' 이라고 적혀있다. 

지난 2019년 11월 5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행정사무 감사 당시, 영보자애원장이 출석해 직접 거주인의 입소경위를 밝히기도 했다. 당시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등 국제 행사를 앞두고 ‘길거리 정화’에 나선 정부가 거리의 여성들을 붙잡아 대방동 부녀보호소로 보냈으며, 혐오시설의 도심 밖 이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용인시의 영보자애원으로 이들을 전원시켰다.

영보자애원은 최근 서울시의회에서도 공론화되었지만, 여전히 서울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2일, 서울시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서윤기 서울시의원 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에 민간조사원들이 강제입소 정황을 기록했지만, 서울시가 묵인하고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의하며, 향후 피해자 지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 강제입소 당한 88%, 40년 전 그날의 기억은 선명해

이처럼 영보자애원에 대한 거듭되는 문제제기에도 책임의 주체인 서울시와 정부는 그때마다 묵묵부답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15일 오후 2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영보자애원 공동대응팀이 진화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진화위에 영보자애원 강제입소자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2017년 당시 노숙인 생활시설 인권실태 전수조사에 민간조사원으로 참여했던 박병섭 씨는 영보자애원을 조사하며 느낀 충격을 전했다. 

박 씨는 “당시 조사를 하며 입소계기를 묻자, 거주인들은 40년 이상 지난 일도 명확하게 진술했다. 어떤 사람은 친언니가 서울로 놀러오라고 해서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려 하다가 느닷없이 여러 명의 남자들이 잡아갔다고 기억하고 있었다”며 “인터뷰가 끝나고 너무 답답했다. 지난 3년 간 형제복지원 사건이 언론에 나올 때마다 자괴감에 시달렸으며, 수많은 유사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 있는데 왜 아무도 거론하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올해 진화위를 통한 피해자 조사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건을 알리게 됐다”고 밝혔다. 

영보자애원 전경. 사진 서울사진아카이브

- 미용실 갔다가 ‘행방불명’, 20년 만에 나타났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현재 고인이 된 강제입소 피해자의 유족이 나와 발언했다. 유족 김 아무개 씨의 어머니 이 아무개 씨는 1983년 7월 인천, 미용실에 간다고 외출한 뒤 행방불명되었다. 당시 이 씨는 약 30세의 나이로 경계선 지능장애와 청각장애가 있었다. 

가족들은 이 씨가 수 년 동안 연락이 없어 죽은 줄 알았으나 지난 2007년 5월, 영보자애원으로부터 이 씨가 생존해 있다는 편지를 받았다. 이 씨는 20년 만에 가족들을 만났지만, 온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감정표현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 씨에게는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시설에서는 장애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시설 퇴소 후 뒤늦게 장애등록을 했다. 그러나 이 씨는 3년간 병치레를 한 뒤 2010년, 배변·배뇨를 하지 못해 사망했다. 

이 씨의 유족은 영보자애원에 뒤늦게 이 씨의 생존을 알린 이유를 물었지만, 의아한 점들만 가득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어머니를 찾아준 영보자애원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형제복지원 사건과 너무 흡사하고, 왜 20년이 지나서야 다 병든 상태로 어머니를 찾아 보낸 것인지 의구심이 많이 든다”라며 “최근 직접 영보자애원을 찾아갔다. 시설 측에 어머니에 대한 신상기록을 요구했지만 처음에는 제공하지 않으려다 재요청 끝에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신상기록에 따르면 이 씨는 1983년 7월 실종된 뒤 동부기술원이라는 곳에 갔다가(1983년 9월 17일), 청량리 정신병원에 입원(1983년 12월 6일)했으며, 이후 다시 같은 병원에 재입원했다(1986년 2월 28일). 그리고 1986년 3월 7일부터 2007년 5월 26일까지 영보자애원에서 지냈다. 영보자애원에서 공개한 신상기록에는 가족과 형제들이 살던 집 주소까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 씨는 “2007년에 연락하기 전, 가족의 주소와 정보가 있었는데도 가족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점이 굉장히 궁금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어 이 씨는 “추정컨대, 청력이 약해 조금 의사소통이 어려운 어머님을 누군가 강제로 납치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어머님이 왜 그렇게 살다 갔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처음 실종됐을 때부터 영보자애원에서 지낸 기간까지 어떻게 지내셨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어머니 뿐 아니라 지금 영보자애원에 계시는 분들도 지역사회로 나와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영보자애원에 시설조사를 나갔던 제보자 박병섭 씨, 영보자애원 강제입소 피해자의 유족 김 아무개 씨, 염형국 변호사가 진화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러 가고 있다. 사진 이가연

- “위법한 훈령에 따른 시설 수용, 진상조사·피해 구제해야” 

2기 진화위의 진실규명 범위는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를 파괴해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정하고 있다. 영보자애원에 입소된 사람들은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지침처리(내무부훈령 제410호)’, 및 ‘부랑인 선도시설운영규정(보사부훈령 제523호)’을 근거로 수용되었으나, 이 훈령들은 모두 위법이다.  

특히 형제복지원 존립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 410호의 경우, 지난 2018년 3월 검찰개혁위원회(아래 개혁위)가 ‘위헌·위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당시 개혁위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위임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 전혀 없다. 결국 경찰과 행정기관이 이 훈령에 기본권 제한에 관한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했다. 또한 훈령에서 언급하는 행위가 모호해 집행자의 자의적 판단기준에 맡길 수밖에 없어서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한다”고 보았다. 이를 근거로 개혁위는 당시 형제복지원 사건 확정판결에 대한 비상상고 신청을 검찰총장에 권고했다. 

따라서 영보자애원 또한 내무부 훈령 410호에 근거해 사람들을 수용했다면, 이는 형제복지원과 유사한 수준으로 인권침해 및 위법성이 매우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영보자애원은 현재진행형이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헌법에서는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적법절차의 원칙을 두고 있다. 그러나 내무부훈령은 언제 어디에서든 부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시에 시설에 수용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이는 법의 근거가 없는 위법한 훈령”이라면서 “2기 진화위는 공권력에 의한 불법적 인신구속행위를 조사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곳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준하는 조사와 피해 구제를 이어서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오후 2시, 영보자애원 공동대응팀이 진화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진화위에 영보자애원 강제입소자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