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법원도 “영화관, 시·청각장애인 관람 편의제공 의무 있다” 판결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영화관람 편의제공 의무 있다” 개방형으로는 동반관람 불가능… 폐쇄형으로 보편성 추구해야

2021-11-25     허현덕 기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25알 11시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승소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했다. 사진 허현덕

법원이 2심에서도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영화상영관들이 시·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을 위한 편의제공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편의제공 영화관의 범위와 상영 횟수 등을 매우 제한했다. 영화관람에서 장애인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판결에도 보편적 영화 향유권 보장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남겼다.   

25일 서울고등법원 제5민사부(설범식, 이준영, 박원철)는 시·청각장애인 4명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 장애인권단체가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을 상대로 청구한 차별구제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장추련 등은 11시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승소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관람권판결이 남긴 과제도 제시했다.  

- 법원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편의제공 의무 있다” 판결

지난 2016년 시·청각장애인 4명은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를 상대로 시각장애인에게는 화면해설을, 청각장애인에게는 한글자막과 FM시스템(난청인들이 활용하는 청각보조기기)을 제공해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원하는 상영시간에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원고들은 지난 2016년 첫 소송을 제기해, 2017년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피고 측은 이에 즉각 항소했고, 결국 3년간의 항소심 끝에 재판부는 다시 한번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300석 이상의 상영관과 복합상영관 내에 300석 이상을 보유한 상영관 1곳에 대해서는 편의제공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피고 측에도 해당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송대리인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가 판결의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소송대리인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6년 동안 피고 측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해왔지만, 재판부는 이들 영화관이 법상의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수범자로서 피고의 비용으로 편의 기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도 명확히 했다”라며 “피고 측은 직영과 위탁을 구분해 위탁 영화관의 경우 편의제공 의무가 없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상영관에서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 횟수를 총 상영 횟수의 3% 이내로 정했다. 이때 배리어프리 형태 중 개방형과 폐쇄형을 피고 측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부가 개방형과 폐쇄형을 혼합해서 어느 정도 재량을 피고측에 부여한 것은 의미 있다”면서도 “폐쇄형의 경우에도 3%라는 제한을 둘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비록 현재 개방형 배리어프리 영화가 0.01%~0.02%에 불과해 3%도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폐쇄형에도 3% 제한을 둔 것은 아쉽다”라고 밝혔다. 

또한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을 개정해 300석 이상의 대형 상영관에만 적용된 기준을 모든 상영관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예지 의원이 제시한 외국의 폐쇄형 상영시스템, 초소형이고 사용이 편리하다. 사진 김예지 의원실 제공

 - 개방형으로는 동반관람 불가능… 폐쇄형으로 보편성 추구해야

편의제공 형태가 개방형이냐 폐쇄형이냐는 매우 중요하다. 영화 동반관람의 가능성 유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개방형은 브라운관에 자막과 화면해설을 추가해 제공하는 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기 어렵다. 현재 제한된 상영관에서 특정 날짜에 제공되는 배리어프리 영화들이 이러한 방식을 띠고 있다. 반면 폐쇄형은 같은 영상을 보되, 시·청각장애인에게는 특수안경이나 수신기 등으로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미 영국, 호주, 미국 등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형태다. 폐쇄형의 경우 장애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고인 시각장애인 박승규 씨를 비롯해 청각장애인 배한주 김포장애인야학 활동가와 강혜인 씨는 영화관은 단순히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닌 가장 손쉽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며, 영화관에서 폐쇄형 방식을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김영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 간사는 “5년 전 호주를 갔을 때 청각장애인 친구와 영화를 함께 봤다. 폐쇄형 기기를 요구했을 때 영화관에서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라며 “당시 영문자막이 제공돼,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었지만, 친구와 함께 재밌게 영화를 봤다”라며 폐쇄형 형태가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시연한 한국형 폐쇄형 상영시스템, 크고 무거운 장비를 어깨에 걸쳐야 한다. 사진 김예지 의원실 제공

한국에서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폐쇄형 기기를 시제품으로 발표했지만, 크고 무거운 장비를 영화 관람 내내 쓰고 있어야 한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폐쇄형 기기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유진희 씨는 “외국에서는 장애인 전용 상영관을 두지 않는다. 이는 장애인의 영화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며 “폐쇄형 기기를 사용하면 자신이 선택한 영화를 선택한 시간에 볼 수 있고, 함께 가고 싶은 사람과 영화를 볼 수 있다. 또 사용도 간단할뿐더러 영화 저작권을 보호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시·청각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에게 영화관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피고인 3대 영화관(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3004개 상영관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장애인석 10석 중 7석은 맨 앞줄에 배치됐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2021년 전국 영화관 장애인 관람석 배치 현황. 장애인 관람석 제일 앞줄 분포율은 CGV 71.7%(1,784석), 롯데시네마 71.7%(1,670석) 메가박스 76.5%(1,067석)로 나타났다. 자료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재구성 강선우 의원실

김주현 서울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은 “뇌병변장애인을 비롯한 휠체어이용자도 영화관 좌석 선택권을 제한 받고 있다. 휠체어이용자는 맨 앞자리 아니면 맨 뒷자리밖에 선택할 수 없다”라며 “또한 활동지원사를 동반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을 위한 좌석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영화관람에서 장애인차별이 확인됐다면 당장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재판부는 차별이지만 천천히 개선해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라며 “이 소송의 결과를 가지고 장애가 있든 없든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계속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