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확실히 추진할 것”
연내 지구지정 고시 예정돼 있었으나 소유주 반발로 자꾸 미뤄져 쪽방 주민, 공공개발 무산될까 불안감 증폭 국토부 “민간개발 길 열렸다는 언론 보도 사실 아냐”
연내 진행됐어야 할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지구지정 고시가 소유주의 반발로 인해 자꾸 미뤄지는 가운데 언론은 연일 민간개발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기사를 쓰고 있다. 공공개발이 무산될 수도 있을 거라는 동자동 쪽방 주민의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 모임(아래 동자동공공주택주민모임) 등은 29일 오전 10시 30분, 한국토지주택공사(아래 LH) 수도권주택공급특별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부와 서울시에 조속한 지구지정을 촉구했다.
사업시행자인 국토교통부(아래 국토부)는 “공공개발을 확실히 추진할 것”이라며 “중앙도시계획위원회(아래 중도위)를 12월 중에 개최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또한 국토부는 연내 지구지정 고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 지구지정 고시 이뤄져야 공공개발 확정
‘지구지정 고시’는 개발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할 건지 정해 공표하는 일을 뜻한다. 지난 2월 5일 있었던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추진계획 발표는 말 그대로 ‘계획’만을 의미한다. 지구지정이 고시가 돼야 공공개발이 실질적으로 진행된다는 게 확정되는 거라 볼 수 있다.
동자동 쪽방촌은 다른 쪽방촌 공공개발에 비해 지구지정 고시가 늦은 편이다. 보통 쪽방촌 공공개발 추진계획이 발표되면, 거의 동시에 ‘지구지정을 위한 의견청취 공고’가 올라온다. 영등포 쪽방촌의 경우 2020년 1월 20일에 의견청취 공고가 올라왔고 그해 7월 17일에 지구지정 고시가 이뤄졌다. 대전 쪽방촌은 2020년 4월 22일에 의견청취 공고가, 그해 12월 7일에 지구지정 고시가 됐다.
이처럼 다른 쪽방촌 공공개발은 추진계획이 발표된 지 6~7개월 만에 지구지정이 확정됐지만 동자동 쪽방촌은 약 10개월이 다가오는데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지구지정을 위한 필수절차인 중도위도 개최되지 않았다.
국토부가 쪽방 주민에게 배포한 사업계획 자료를 보면, 올해 하반기에 중도위 심의를 거친 후 국토부 장관이 지구지정을 고시하게 돼 있다. 올해가 거의 끝나가지만 동자동 쪽방촌 계획은 아직 2월에 머물러 있다. 안 그래도 공공개발에 대한 소유주 측의 반발이 극심한데 국토부의 지구지정 고시까지 미뤄지니, 동자동 쪽방 주민 입장에선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쪽방 주민 “공공개발 소식 듣고 꿈 같았는데… 대체 언제?”
LH 앞에 모인 동자동 쪽방 주민은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소유주와 지구지정 고시를 하지 않고 있는 국토부를 향해 강한 불만과 불안감을 표출했다.
김영국 동자동공공주택주민모임 위원장은 “동자동 소유주 중 실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살지도 않는 집과 땅을 사놓고 투기한 게 아니라고 한다”며 “올해 안에 지구지정 고시가 이뤄질 줄 알았다. 우리 주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국토부는 확실하게 입장을 밝혀 달라. 쪽방촌 주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나아가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라”라고 촉구했다.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주민모임 부위원장 또한 “국토부 장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이 모두 모여서 공공개발을 발표하니 ‘아, 이번엔 진짜 (공공개발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 다들 뭐 하는 건가. 우리는 교도소 독방 같은 곳에서 20년을 넘게 벽 한쪽만 보고 산다. 평생 교도소만도 못한 곳에서 살라는 건가. 국토부는 쪽방 주민과 약속한 것을 지켜 달라”라고 성토했다.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은 “정부가 공공개발 한다고 발표해서 진짜 환호했다. 우리 쪽방 주민이 공공주택에 들어가서 편안하고 따뜻한 방에서 살 수 있겠구나 싶어 꿈 같았다. 그런데 소유주는 돈 처발라 가면서 무지막지한 공공개발 반대 현수막을 걸고 빨간 깃발을 가득히 걸더라. 우리는 걔네만큼 처바를 돈이 없지만 세종시에 있는 국토부까지 어렵게 가서 우리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김정호 이사장은 “국토부와 LH에서 우리에게 와서 사업계획 책자를 나눠주고 공공개발 할 거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민간개발이 될 것처럼 자꾸 이상한 기사가 나온다. 어처구니없고 기가 차서 몸이 떨린다. 국토부는 뒤로 딴짓거리를 하는 건가? 민간개발 외치는 소유주에게 왜 자꾸 여지를 주나? 12월 안으로 지구지정 반드시 발표하라”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공공개발 발표 이후 소유주의 ‘나가라’는 말이 더 쉬워졌다고 증언했다. 박 활동가는 “한 쪽방 주민이 13년을 전기장판만 가지고 겨울을 보냈다. 한파를 견디기 힘들어 건물주에게 보일러를 설치해 달라고 했더니 건물주는 바로 나가라고 했다. 어떤 소유주는 보일러 온도 조절 리모컨을 고쳤는데 수리비를 주민에게 n분의 1로 내게 했다. 소유주는 이제 허물어질 집이라 어떤 투자도 하고 싶지 않아 한다”며 공공개발이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 국토부 “민간개발 ‘적극 검토’ 사실 아냐… 공공개발 확실히 추진”
11월 들어 언론은 동자동 쪽방촌이 민간개발 될 수도 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경제지가 앞장서서 보도 중이다. 민간개발의 길이 열렸으며 국토부가 소유주 측의 민간개발 제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인용 출처가 대부분 ‘정비업계’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국토부가 민간개발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식이다. ‘정비업계’는 소유주 측을 의미한다.
소유주 측의 대표 격인 오정자 ‘서울역 동자동 주민대책위원회’ 대책위원장은 29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올해 9월에 노형욱 국토부 장관과 면담했다. 노 장관이 우리가 제출할 민간개발 정비계획안을 검토하기 전까지는 중도위도 열지 않고 지구지정 고시도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다. 계획안을 작성하기 위해 지난 27일에 주민(소유주) 공청회를 열었다”며 국토부가 민간개발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계획안을 작성 중이라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 공공택지조사과 관계자는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을 확실히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29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소유주 측이 노형욱 장관과 면담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분들이 장관님 자택 앞에서 시위해서 장관님이 잠시 그분들 말을 들어준 것이다. 장관님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며 “언론이 소유주 측의 말만 반영하다 보니 기사가 편파적으로 난다. 국토부는 공공개발을 가장 적합한 사업 모델로 보고 있고 중도위 개최와 연내 지구지정 고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민간개발 소문을 일축했다.
더불어 “국토부 이번 사업 목표는 쪽방 주민 모두를 내몰림 없이 순환이주해 공공주택에 모시는 것이다. 그게 최우선이다. 소유주 측을 설득해서 공공개발을 확실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소유주 측이 12월 중순까지 민간개발 정비계획안을 국토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민간개발 정비계획안을 검토하고 중도위를 연 후, 지구지정을 위해 구청·교육청 등 유관 기관의 의견을 듣는 것까지 고려하면 지구지정 고시까지 시일은 더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