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인수위 첫날’ 장애계 목소리, 경찰에 막히고 갈가리 찢겨

장애계, 윤 집무실 앞 찾아갔으나 경찰 100여 명 가로막아 요구안 수령하는 실무자 한 명도 안 와… 갈기갈기 찢긴 요구안 전장연 “23일까지 약속 없으면 담날부터 출근길 선전전 재개”

2022-03-14     하민지 기자

인수위에서 요구안을 받아 가지 않자, 박경석 이사장이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에게 전달하려 했던 요구안을 찢고, 축하난을 바닥에 던져 부수고 있다. 영상 하민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첫 출근을 맞아, 윤 당선인과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게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을 전달하려 했으나 불발됐다. 윤 당선인 측은 전장연에 ‘요구안을 받아올 실무자가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연은 14일 오전 9시에 윤 당선인의 집무실이 있는 서울시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으나 연수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인도 한복판에서 진행해야 했다. 경찰 100여 명이 울타리와 벽 등을 촘촘하게 세워 연수원 앞까지 갈 수 없었다.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 실무자가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활동가들은 준비해 간 요구안을 찢고 축하선물로 준비한 난을 바닥에 던져 부쉈다. 전장연은 윤 당선인과 안 인수위원장을 향해 “빠른 시일 내에 면담하고 23일까지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책임있는 답변을 달라. 답변이 없을 경우 24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전장연이 인수위 집무실 건물(금감원 연수원) 앞까지 가는 걸 막기 위해 100m 앞에 벽을 설치했다. 사진 이슬하
인수위 집무실 근처 기자회견 현장. 경찰 100여 명이 활동가들을 막고 있다. 사진 이슬하

- 대선 토론회서 장애인권 언급 없었던 안철수·윤석열… “10초도 시간 없나?”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거듭된 전장연의 요구에도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장애인권 관련 언급을 끝내 하지 않았다. 이에 전장연은 지난 3일, 두 사람을 규탄하며 22번째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했다. 당시 요구사항도 ‘인수위 면담 및 23일까지 답변 요청’이었다.

인수위는 현 정부의 조직, 기능, 예산현황 등을 파악하고 새 정부를 준비하기 위해 설치하는 기구다. 현재 전장연은 예산 편성 책임을 방기하는 기획재정부를 규탄하며 혜화역 선전전을 66일째(14일 기준)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장애계는 내년도 이동권·노동권·교육권·탈시설권리 등 장애인권리예산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인수위에도 예산 반영을 촉구했다. 

박경석 이사장이 ‘장애인권리보장을 위한 2023년 예산, 정책요구안’이라 적힌 문서를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지금 내 손에 있는 요구안은 지난 1월, 기재부 복지예산과에 전달된 것이다. 기재부에 설 연휴 전까지 요구안에 대해 답하라고 했더니 ‘관계 부처와 논의하라’고 답변했다. 예산 편성 책임을 지기는커녕 다른 부처 핑계만 댔다”고 비판했다.

박 이사장은 또 “대선 후보들에게 이번만큼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TV 토론회에서 약속해 달라고 매일 지하철 탔지만 윤 당선인과 안 인수위원장만 약속하지 않았다. 오늘(14일)도 요구안을 받으러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 토론회 언급과 요구안 수령은 10초면 된다. 윤 당선인은 장애인을 위해 10초도 못 낸다는 건가? 장애인은 국민이 아닌가?”라며 강력하게 규탄했다.

전장연이 준비해 간 축하난. 난에 묶인 리본에 ‘똑똑똑, 축하드립니다. 장애인권리예산 반영해 주십시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 적혀 있다. 뒤에 있는 현수막엔 ‘윤석열 당선인, 안철수 인수위원장님 축하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전장연 “윤석열 당선인, 요구안 모른 척 마라”

전장연이 윤 당선인 측에 요구안을 전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8일, 전장연은 서울시 종로구 플랫폼74 앞에서 윤 당선인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 요구안을 전달했다. 윤 당선인은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과 악수하고 요구안을 받아갔다. 이준석 대표는 수백 명의 취재진과 지지자 앞에서 박경석 이사장을 향해 “우리는 자주 만나온 사이지 않나”라고 인사를 건네며 박 이사장이 말하는 요구안 내용을 경청했다.

그러나 14일 기자회견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박경석 이사장은 “윤 당선인이 요구안 내용을 모를 리가 없다. 대학로에 왔을 때(지난해 12월 8일, 플랫폼74 앞) 이형숙 회장에게서 받아가지 않았나. 당시 윤 당선인은 비장애인을 ‘정상인’이라 말했다가 이 회장에게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배웠다. 이렇듯 모르면 배우면 되고 잘못하면 수정하면 된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하겠다고 약속해라. 모른 척하지 말고, ‘검토해 보겠다’는 말도 더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석 이사장이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에게 전달하려 했던 요구안을 찢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이사장이 축하난을 바닥을 향해 집어던지고 있다. 사진 하민지

그러나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 요구안을 수령하는 사람은 오지 않았다. 금감원 연수원 앞까지 가려고 해도 경찰 100여 명이 막아서서 요구안을 전달할 길 또한 원천 차단된 상태였다. 이에 박경석 이사장은 요구안을 갈기갈기 찢었다. 윤 당선인과 안 인수위원장에게 주려고 준비한 축하난도 바닥에 던져 부쉈다.

박 이사장은 “요구안 전하러 왔는데 이조차 막아서는 차기정부라면 뭘 기대할 수 있나. 23일까지 어떤 약속도 없으면 24일부터 출근길 지하철을 다시 타겠다. 이는 명백히 윤 당선인과 안 인수위원장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우리(장애인)에게 돌리지 말고 시민에게도 돌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 비겁한 정부는 되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윤 당선인이 장애인권리예산 수립을 외면하는 가운데, 후보 때 낸 장애인 공약도 많은 비판을 받는다. 윤 당선인은 1월 19일 △시외·고속·광역버스에 저상버스 투입, 장애인 콜택시 확대 △주어진 액수 안에서 장애인 스스로 복지서비스를 선택하는 ‘개인예산제’ 도입 △4차산업형 인재 육성 및 장애인 고용 기회 확대 △장애학생의 예술 교육 및 장애예술인 창작 활동 지원 강화 △발달지연·장애 영유아를 위한 국가 지원 강화 등 5개 장애인 공약을 발표했다.

전장연은 1월 21일 성명을 내고 “그간의 시혜적 장애인정책에 대한 성찰도 없고, 예산의 구체성도 없는, 윤석열의 깡통 다섯 개 선물세트”라고 비판했다. 같은 달 25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개인예산제를 강도 높게 규탄했다. 개인예산제는 사회서비스를 현금화하는 것으로 일부 장애계에서 장애인의 소비자주의와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며 도입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복지 공공성이 훼손되고 민간 바우처 시장만 확대될 거란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 사진이 보인다. 그 위에는 당선을 축하하는 난이 산산조각 나 있다. 제일 위쪽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발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