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계 ‘서울교통공사 언론공작 문건’ 한목소리로 규탄
장애인을 적으로 규정한 공사 각계각층에서 성명 발표하며 비판 이어져 여론조작 동조한 언론 향해 자성 촉구하기도
지난 17일 YTN의 보도로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 문건’의 존재가 알려진 뒤 파장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각계각층에서 성명을 발표하며 공사를 규탄하고 있다.
YTN 보도에 따르면, 공사 홍보실 언론팀은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라는 제목의 문건을 만들어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장애인을 싸울 상대로 규정한 문건에는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고자 언론공작을 펼친 정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문건에 따르면 공사는 비마이너를 비롯한 진보 매체들 역시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공사는 사과문에서 이번 사태를 직원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며 ‘꼬리 자르기’에만 급급했다.
- 각계각층에서 공사 비판 터져 나와
시민사회계는 일제히 성명을 내고 공사를 규탄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은 “공사가 작성한 내부 문건이 과연 21세기 이 시대에 가당키나 한 일인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서울시와 공사에 대한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노총은 “(문건에 드러난) 공사의 대응 매뉴얼은 창조컨설팅 등을 활용해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이에 기초해 민주노조 파괴가 공공연히 자행되던 시기의 그것과 차이가 없어 우리 노동자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에 연대를 표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아래 한국장총)은 “공사 측이 발표한 사과문은 절대 진심 어린 사과라고 볼 수 없다”면서 “공사가 상습적으로 행한 장애인 차별 사건만 봐도 (공사가)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장총에 따르면,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휠체어 바퀴가 빠지는 사고를 겪은 장애인들은 지난 2019년 7월 공사를 상대로 장애인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이 ‘공사의 차별행위에 대한 정당한 사유(과도한 비용 부담 등)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하자, 소송에서 승리한 공사는 장애인들에게 소송 비용 전액을 부담하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공사는 이번 문건에서 지하철 시위 중 단차 사이에 휠체어 바퀴가 빠진 사진을 기자들에게 뿌리며 ‘장애인들이 고의적으로 열차 운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언론공작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사태에 기업과인권네트워크는 “‘2021년 서울교통공사 인권경영 추진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공사는) 2018년 인권경영을 도입해 2021년 마침내 인권경영을 내실화했다고 한다. 장애인들의 ‘디테일한’ 실점을 찾아내고 물고 늘어지며 여론전을 펼치는 것이 진정 공사가 말하는 인권경영 내실화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 ‘받아쓰기’ 일관하는 언론 질타하기도
언론계도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아래 언론노조)은 공사가 공공기관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은 다하지 않고, 언론을 공작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분노했다.
언론노조는 “공사 언론팀이 작성한 문서는 공공교통체계가 갖는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언론을 갈라치기와 공작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저열한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면서 “사회적 약자를 제압의 대상으로 여겨 그들을 이길 여론을 만들겠다는 천박한 문구에서 우리는 공공의 영역까지 만연한 혐오와 차별의 뿌리를 확인한다”고 성토했다.
언론에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공사의 여론조작 시도가 가능했던 건 이에 동조하는 언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공사가 ‘장애인 시위 때문에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지 못하고 있다는 시민도 있다’는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하자, 언론은 ‘할머니 임종 사건’을 앞다퉈 자극적으로 기사화했다.
이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아래 언론연대)는 18일 논평에서 “우리는 공사의 전략이 일부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시민의 불편을 부각한) 기사들이 저격한 건 누구인가. 해당 매체들은 이제라도 사과하고 관련 기사를 정정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또한 언론연대는 이번 사태가 일어날 수 있게 만든 한국언론의 고질적 병폐를 지적했다. 언론연대는 “우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발표를 단순 ‘받아쓰기’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걸 경험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언론매체들의 단순 받아쓰기 관행은 여실히 드러났다”고 개탄했다.
한편 노동당, 정의당 서울시당 등 진보정당도 성명을 발표해 이번 사태를 공사와 서울시가 책임질 것을 촉구했다. 노동당은 “공사가 올해에만 655억의 국고보조금을 받으며 장애인 혐오를 조장하는 동안, 장애인은 이동할 수 없어 교육받을 수 없었고 노동의 기회조차 없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며 “김상범 공사 사장은 ‘꼬리 자르기’에 불과한 구차한 사과문 뒤에 숨지 말고, 즉각 공개 사과하고 사퇴하라. 공사의 실질적 사장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21년째 유예돼왔던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권 보장을 위해 나서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