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대표님, ‘장애인 당사자성’이 중요하지 않다고요? / 정창조

박경석-이준석 JTBC 썰전라이브 토론 스튜디오, 무엇이 문제였나?

2022-04-18     정창조
지난 4월 13일 JTBC에서 열린 〈썰전라이브〉 토론 모습. 이날 주제는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 관한 것이었으나, 정작 공간은 휠체어 탄 사람을 고려하지 않았다. 테이블이 수동휠체어를 탄 박경석 대표에게는 무척 높아 불편해 보인다. JTBC 영상 캡처 

-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당사자성?

지난 4월 13일 열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대표와의 JTBC 〈썰전라이브〉 토론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 정책이든 어떤 정책이든 저는 당사자성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든 더 나은 고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열어 놓고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주장은 딱히 낯선 게 아니다. 이 주장은 그가 평소 표방해 온 ‘능력주의’, ‘할당제 반대’ 등의 논리와 정확하게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표의 이러한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그의 인재 선발 기준을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다. 그가 기획한 2021년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 배틀 〈나는 국대다〉에서 우승한 임승호는 얼마 전 대변인 임기를 마치면서 이런 말을 내놓았다. “상대가 다른 방송에서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미리 파악하고 가서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질 때 상대가 당황하게 된다. (…) 상대가 이용할 수 있는 이슈를 배제하고 다른 논리를 사용하는 연습도 방송 토론에서는 유효한 것 같다.” 그는 ‘이준석식 토론 방식’을 자신의 장점으로, 자신의 성공 비결로 공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궤변 능력’에 특화된 이가 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정치를 수행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혹은 사뭇 수능시험을 닮은 PPAT(공직후보자기초자격평가)를 통과한 이들은 정말로 그 시험만 통과한다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당일 〈썰전라이브〉에 박경석 대표의 활동지원사로 동석했고, 생방송 시작 전에 그의 휠체어를 밀고서 토론이 이루어진 테이블로 함께 이동했다. 그리고 그 덕에 그 스튜디오가 얼마나 비장애중심주의적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4월 16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썰전’ 박경석-이준석 ‘테이블 불평등’에 숨겨진 방송사 민낯〉이라는 글에서 이승한이 지적한 박경석-이준석 간 ‘테이블 높이 문제’ 외에도 그 장소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탁월한 토론 능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며, PPAT에서도 만점을 받을 것으로 감히 예상되는 이준석 대표는 해당 장소에서 생방송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문제들에 대한 최소한의 문제의식이라도 가질 수 있었을까? 그가 방송 내내 장애인의 삶의 조건과 정책, 담론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도무지 그랬을 거 같지는 않다.

문제가 된 것은 테이블 높이뿐만이 아니다. 정삼각형 형태의 무대는 무척 좁아 휠체어 탄 사람에게는 위험했다. JTBC 영상 캡처 

- 해당 토론은 장애인에게 적합한 장소에서 이루어졌는가?

당시 스튜디오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토론은 정삼각형 형태의 무대 위에서 이뤄졌고, 방송사 측은 무대 위로 올라가는 간이 경사로를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는 정삼각형 형태로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다. 문제는 토론자에게 지정된 배석 자리에까지 휠체어를 탄 이가 이동하기에는 그 무대 위 통로가 너무 좁았다는 것이다. 그 덕에 박 대표의 휠체어를 밀고 있던 나는 이동 내내 그가 혹여나 무대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를 걱정해야 했다. 그나마 박 대표는 평소 비교적 크기가 작은 수동휠체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해당 장소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었지만, 평균 크기의 전동휠체어 같은 경우에는 그 무대 위에서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혹자들은 공간 문제상 무대가 작게 꾸려질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해당 스튜디오의 전체 크기는 웬만한 대형 강당만 했고, 따라서 무대를 더 크게 구성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설령 공간이 부족하더라도 무대 공간을 추락 위험이 없도록 턱 없이 구성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둘째, 토론 장소에 앉은 후에도 불안은 이어졌다. 박 대표가 처음 그 자리에 배석했을 때, 휠체어 뒷바퀴로부터 무대 턱까지의 거리는 불과 3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 상태 그대로 토론을 진행하다가 몸을 뒤척이거나 자세를 바꾸기 위해 휠체어 위치를 조금이라도 옮기게 될 경우, 그는 곧바로 무대 밑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었다.

토론 시작 전 그 스스로 본인의 다리를 테이블 안쪽으로 최대한 집어넣어 휠체어 뒤쪽 공간이 안정적으로 마련되긴 했지만, 이 역시 박 대표가 비교적 작은 수동휠체어를 이용했기에 가능했다. 만약 박 대표가 평균 크기의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면, 겨우 무대 위로 올라가더라도 상대 토론자 쪽으로 몸을 돌릴 수조차 없었을 것이고, 그 뒤척임 과정에서 무대 밑으로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경석 대표와 이준석 대표가 두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좁은 공간으로 인해 이준석 대표의 왼발은 무대 아래 내려와 있다. 즉, 비교적 크기가 작은 수동휠체어가 움직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성인 남성 한 발 크기 정도에 불과했다. 사진 정창조

셋째, 박 대표가 테이블 앞에 앉자 곧바로 ‘높이’가 문제 되었다. 누가 봐도 테이블은 그에게 너무 높아 보였다. 이준석 대표와 사회자가 자리에 앉자, 비장애인-장애인 간 시선의 차이는 더 심각하게 부각되었다.

당시 JTBC 스텝들도 이에 매우 당황한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장애에 대해 굉장히 무지한 발언을 건네기도 했다. “혹시 더 높은 방석을 깔 수는 없을까요?” “휠체어가 자체적으로 높이를 올릴 수는 없을까요?”

일단 휠체어에 더 높은 방석을 깔려면 박 대표는 잠시 휠체어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이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에게 그 과정은 비장애인이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일이다. 무엇보다 휠체어는 이미 그의 몸에 적합하게 세팅되어 있다. 휠체어 높이를 급히 조정하는 것이 특정 부위가 마비된 장애인 당사자의 몸에 가할 불편과 위험은 장애인 당사자로서의 경험이 없는 이들이 도무지 체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스텝들이 택한 방법은 생방송 시작 1~2분 전에 이 대표의 의자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었다. 즉, 당시 화면에서 비치는 높낮이 차이보다 훨씬 더 큰 상태로 토론이 진행될 수도 있었다(의자가 낮아진 덕에 이 대표도 다소 불편해 보였는데, 그가 실제로 어떻게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넷째, 그 어떤 이슈보다도 많은 장애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임에도, 생방송 과정에서는 수어통역, 문자통역조차 준비되지 않았다. 유튜브 자체 자막 기능으로 엉망으로 옮겨진 내용만을 통해 이 토론을 마주했던 청각장애인들은 토론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 토론의 내용을 궁금해하고 있다.

박경석 대표가 발언하는 모습.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비장애인 중심의 테이블 높이로 박 대표가 무척 불편해 보인다. JTBC 영상 캡처 

- 토론 장소 자체가 ‘당사자성’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겨레 칼럼에서 이승한은 “평소 세트 설계가 비장애인 출연자에게 맞춰져 있었다 하더라도, 휠체어 사용자가 출연하는 회차에 맞춰서 평소와는 다른 크기의 테이블을 준비하기에 빠듯한 시간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은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평소’에, 즉 그 어떤 이슈를 둘러싼 토론이 그곳에서 열린다고 할지라도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그 무대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물며 휠체어는 ‘등록 장애인’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비장애인 출연자가 부상 등 각종 이유로 휠체어를 타고 스튜디오에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JTBC는 〈썰전라이브〉를 “한국 정치계 최고의 ‘썰’들이 출연해 ‘대선 정국’과 화제의 사회 이슈들을 파헤쳐 보는” 프로그램이라 선전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열리는 장소 자체가 이미 장애인을, 휠체어를 탄 이를 ‘최고의 썰’을 풀어낼 자격이 없는 이들로 전락시켜 버렸다. 이는 실제 제작진의 의도와는 상관없다. 장애인에 대한 자격 박탈은 대부분 이렇게 ‘나쁜 의도’ 없이 행해진다. 바로 이준석 대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확언한 ‘당사자성’이 이 사회 공간 곳곳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당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썰전라이브〉 스텝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거나, 해당 업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지금껏 장애인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을 뿐이다. 그리고 평소 장애인들을 마주한 적 자체가 거의 없다 보니, 이러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할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대표는 이 모든 광경을 생방송 직전에 분명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취한 태도라고는 고작해야 의자 높이를 낮춰달라는 스텝들의 요청에 동의한 것뿐이다. 그리고 ‘자신은 장애인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을 그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장소가 갖는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경석 대표와 이준석 대표가 토론하는 모습. JTBC 영상 캡처 

- 이준석이 사용하는 피상적·편파적인 당사자성

“장애인 정책이든 어떤 정책이든 저는 당사자성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듣고 내가 가장 황당했던 것은, 그가 토론 와중에 불리할 때마다 ‘당사자성’에 의존해 자신의 논리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준석 대표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자신은 장애인 당사자보다 능력 있는 이가 장애인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지,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이 양자는 엄밀하게 구별될 수 있는 것인가? 특히 이 대표가 요구하는 능력이란 게 고작 ‘궤변 능력’, ‘PPAT를 통과할 수 있는 능력’ 정도라면, 그 능력을 갖춘 대단한 인재는 과연 장애인 당사자의 말을 들을 수 있긴 할 것인가?

실제 오로지 토론에 이기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던 그가 근거로 든 ‘당사자성’이란 지극히 피상적, 편파적일 뿐이다. 예컨대 그는 당일 ‘무분별한’ 탈시설 정책에 반대한다면서, ‘시설 입소를 희망’하거나 ‘시설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주장한 장애인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의 이름을 빌려 자주 인용하곤 했다. 그러나 시설 입소를 희망하거나, 시설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한 이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구조적 문제는 그의 고민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구조적 문제를 ‘당사자성’이 반영된 주장으로 아무리 짚어줘도 그는 그러한 입장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미 몇 번이고 전장연이 이 대표에게 말했지만 ‘지하철 타기 시위’의 핵심 요구 중 하나는 바로 자립지원과 탈시설 시범사업 예산의 확대다. 그것은 ‘당사자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또 반영될 수도 없는 이 지역사회의 공간들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시설 내 장애인 당사자가 어디서 살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될 수 있다. 이 대표가 그리도 강조했던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의 진정한 의미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에게 진심으로 고하고 싶다.

“이준석 대표님, 왜 이렇게 ‘비문명적인’ 투쟁을 하냐고요? 지금 당신이 ‘문명’이라 부르는 그 장소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배제와 차별 속에서 쌓여 온 곳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그래서 목숨을 잃고 다칠 수 있는 그 공간들을 하나하나 바꿔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당사자들이 가장 절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당신이 ‘문명적’이라 여기는 그 장소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폭로하는 절박한 당사자들의 외침을 좀 들으십시오. 이 말은 순수한 당사자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갈라치기 유리한 당사자성만 선별해서 활용할 것을 권하는 것도 아닙니다. 장애인 당사자성을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고민하는 이들을 ‘정치의 주체’로서 마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키우길 권하는 것입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는 당신이 말하는 것과 달리,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필자 소개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장애인 노동, 장애해방열사들과 관련된 사유와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박종필추모사업회 사무국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간사,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등으로 활동하며, 투쟁하는 장애인의 활동지원노동을 하고 있다.